1993년 5월18일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전두환·노태우 체포 결사대 출정식. [사진=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993년은 민주노총 역사에서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가장 위험한 해였다.
1987년이 노동 현장의 분노가 터져 나온 해였고 1990년이 전노협이라는 강성 현장조직이 만들어진 해였다면, 1993년은 그 조직이 스스로 노조의 외피를 벗고 정치세력으로 몸을 바꾸기 시작한 해였다. 바로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 전노대 출범이다.
민주노총은 보통 1995년 창립으로 기록되지만, 정치조직으로서의 본체는 이미 1993년에 완성됐다. 전노대는 노동조합 연합체가 아니라 민주노총 창립 준비위원회이자 좌파 정치세력 사전 본부였다.
전노대는 1993년 6월19일 공식 출범했다. 전노협을 중심으로 업종·지역별 민주노조 대표들이 결집한 전국 조직이었다. 겉으로는 “민주노조 대표자 협의기구”였다. 말만 보면 현장 대표들이 모여 공동 대응을 논의하는 실무협의체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역할은 달랐다. 전노대는 단순 협의체가 아니라 ‘독자 노총 건설’을 공개 목표로 내건 정치 조직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독자 노총은 단지 한국노총과 다른 새 노총이 아니었다. 노동운동을 하나의 정치 세력으로 재편하는 전국 본부를 뜻했다.
전노대 출범 이후 노동운동 내부 언어는 눈에 띄게 바뀐다. 1987년에는 임금, 단협, 산재, 노조 민주화가 중심이었고, 1990년에도 적어도 표면에서는 현장 투쟁이 우선이었다.
그런데 1993년 전노대 시기부터는 “정치세력화” “민중권력” “계급적 진출” “노동자 정치” 같은 말이 노골적으로 앞에 나온다. 노동자의 월급과 안전보다 노동자의 정치 조직화가 더 중요한 과제로 올라온 것이다. 노동조합이 조합원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이 더 큰 정치 프로젝트를 위해 존재하는 식으로 우선순위가 뒤집히기 시작했다.
이 시기 전노대 핵심 간부들은 더 이상 숨기지 않았다. 노동운동은 경제투쟁만으로 끝나면 안 되고, 정치권력까지 가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왔다. 표면적으로는 그럴듯했다. 노동자도 정치적 대표가 필요하다는 말 자체는 반박하기 어렵다. 문제는 방식이었다.
노동자의 권익을 제도 안에서 대변할 대표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노조 조직 전체를 좌파 정치세력의 하부 동원망으로 바꾸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정치에 목소리를 낼 수는 있다. 그러나 전노대는 목소리를 내는 수준을 넘었다. 노조를 통째로 정치기지로 바꾸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노동 현장은 더 노골적으로 운동권의 정치학교가 됐다. 공장 야학은 노동법 교육보다 계급교육 비중이 커졌고, 노조 간부 교육은 단체교섭 기술보다 정치노선 교육이 더 중요해졌다. 조합원은 노동자이기 전에 ‘계급 주체’로 불리기 시작했다. 공장 안의 현실 문제, 이를테면 교대제, 산재 보상, 하청 착취, 임금체계 개편 같은 문제는 여전히 중요했지만, 그것은 점점 더 상부 정치투쟁의 재료가 되어 갔다. 현장 문제는 해결 대상이 아니라 동원 명분이 되어 갔다.
전노대 시기부터 한국 노동운동에는 아주 해로운 공식이 굳어진다. 현장 불만을 키운다. 그것을 집단 분노로 묶는다. 그 분노를 정치 구호로 끌어 올린다. 그리고 정권 비판과 체제 비판으로 확장한다. 이 방식은 노조 지도부에는 매우 효율적이었다. 현장 갈등이 클수록 정치 동원은 쉬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합원 입장에서는 손해가 컸다. 조합비는 더 걷혔고, 파업은 길어졌고, 현장 피로는 쌓였지만, 정작 삶은 얼마나 나아졌는지 애매한 경우가 많았다. 지도부는 정치적으로 커졌고, 조합원은 더 자주 거리로 불려 나왔다.
전노대는 민주노총의 산파가 아니었다. 민주노총의 성격을 미리 결정해 버린 설계도였다. 이 설계도 안에서 노동조합은 더 이상 노동조건 개선 조직이 아니었다. 좌파 정치세력의 병참기지, 거리 동원기지, 정당 예비조직으로 재배치됐다.
민주노총이 훗날 민주노동당으로 이어지고, 촛불과 총파업과 장외정치의 핵심 동원조직이 된 이유도 여기서 이미 결정돼 있었다.
1993년 전노대는 민주노총 창립의 전 단계가 아니었다. 민주노총이 왜 노동조합보다 정치조직처럼 움직이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완성된 원형이었다. 노동자를 위한 노조가 아니라 노동자를 끌고 가는 정치조직. 그 틀이 이때 완성됐다.

◆ 松山(송산)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신화가 된 조선’과 ‘다다미 위의 인문학’을 펴냈다. 현재 자유주의 문화운동의 연구와 실천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松山은 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