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선로 폐석을 공중에 매달아 움직이는 조각으로 만들었다. [사진=임요희 기자]
인구 대비 미술작가가 가장 많은 도시로 명성이 자자한 경기도 양평. 수십 개의 갤러리가 자리한 양평에서도 지평면 이재효갤러리는 ‘핫플’로 통한다.
최근 BTS의 RM이 인스타그램에 이곳을 방문하고 인증사진을 올리면서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RM 덕에 갤러리 방문객이 부쩍 늘긴 했지만 사실 이재효 작가는 국내외 미술관과 유명 호텔에서 앞다퉈 작품을 소장하는 초대형 작가다.
호텔 로비는 대중과 호흡하기 좋은 공간
국내에서는 서울 W호텔을 시작으로 여의도 콘래드 호텔, 서울 메리어트 호텔, 스위스 인터콘티넨탈 호텔, 63빌딩에서 작품을 볼 수 있으며, 해외의 경우 미국 라스베거스 MGM 호텔, 대만 그랜드 하얏트 호텔, 미국 존슨 미술관, 이탈리아 아르테 셀라 조각 공원, 두바이 부르즈칼리파 일대에 그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못으로 연결한 나무 구는 이재효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사진=임요희 기자]
이재효 갤러리 내 카페에서. [사진=임요희 기자]
이재효 작가는 미술관보다 호텔 로비를 전시 공간으로 더 선호한다. 미술관 소장품은 긴 시간 수장고에 머물러야 하는 반면, 호텔 로비 작품은 언제나 대중과 마주하며 끊임없이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평 이재효갤러리 2000평 부지, 5개 전시실에는 총 1000여 점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그중 상당수는 뜨락에서 만날 수 있는 옥외 전시물이다. 그가 옥외 작업에 공을 들이는 것도 예술이 좁은 공간에 고립되어 있기보다, 열린 공간에서 쉽게 발견되고 향유되는 ‘살아있는 예술’을 지향하기 때문이리라.
이재효 작가는 대학시절부터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했지만 10년 넘게 남대문과 고속터미널 등지에 작은 조각품을 납품하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파는 물건’과 ‘예술 작품’을 분리해 ‘삶’과 ‘업’의 조화를 꾀한 것이다.
그가 “주문 전화를 받으면 기분은 좋은데 마음은 답답하던 생활”을 청산하게 된 것은 1998년 오사카 트리엔날레에서 대상을 거머쥔 후다. 상금이 1억2000원이었는데 당시 국내 공모전 상금이 기껏해야 1000만 원 정도 할 때였다.
1억 원이 넘는 상금 덕에 그는 일약 대스타 자리에 올랐다. 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그런 상금을 받았냐며 많은 사람이 궁금해 했다. 세계 곳곳에서 지명 공모 제안이 많이 들어왔다. 15만 원짜리 조각품을 만들던 저잣거리 조각가가 억대 작가 반열에 들게 된 것이다. 물론 그것은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다. 그는 끊임없이 탐구했고 쉴 새 없이 작업에 몰두했다.
그가 깎고 다듬는 대상은 나무나 쇠, 돌 같은 자연물이다. 돌을 철사로 묶어 공중에 매다는가 하면 쇠로 연결한 나무를 둥글게 깎거나, 나무에 연결된 쇠못을 매끈하게 다듬는다. 쇠를 붙이는 용접 작업과 돌을 갈아내는 그라인더 작업, 나무를 자르는 제단 작업이 일상이다. ‘노가다’도 이런 ‘노가다’가 없다.
그런가 하면 부지 안쪽, 깊숙한 곳에 자리한 5전시실에는 드로잉 작품이 나열돼 있어, 작가가 아이디어를 얻는 과정과 그만의 상상력의 세계를 엿볼 수 있도록 했다. 청소년이나 작가 지망생이라면 큰 도움이 될 만한 공간이다.
이재효의 작품을 보면 ‘조각은 공학이고 건축이고 회화’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의 작품에는 공간을 짓는 건축적 요소에 물리적 구조를 고려한 공학적 고려와 빛과 색채를 다루는 회화적 요소가 융합돼 있다.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모든 것
이재효 작가는 부산 동래고등학교 미술부에 들어간 것을 계기로 홍대 조소과에 진학해 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표면적으로 40년째 하고 있는 일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태생과 동시에 시작된 일이기도 하다.
이재효 작가
이재효 갤러리는 자연 속에 깃들어 있다. [사진=임요희 기자]
그의 부친은 기와 짓는 일을 했다. 그 덕에 작가는 어려서부터 흙을 만지고 놀 기회가 많았다. 어쩌면 흙이 지닌 무한한 변형 잠재성이 그를 지금의 그를 만든 건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나무도 돌도 쇠도 나무도 모두 흙이다.
나뭇잎을 꿰어 커튼월을 만드는가 하면 돌돌 말아 평면 작품을 완성하기도 한다. 또 나무를 얽어 구체를 만들고, 3차원의 못을 구부리고 갈아 2차원의 시각 작품으로 구성하기도 한다.
나무와 빈 구멍이 지은 구체. 이 구체가 대체 무엇을 의미하냐고 묻자 작가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만들고 싶었다”고 대답한다. 우문현답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은 다시 말해 ‘무엇이든 다’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만든 구체는 공[球]처럼 보이지만 행성이기도 하고 우주이기도 하다. 공(空) 그 자체일 수도 있다. “도는 말하면 도가 아니다(도가도 비상도, 道可道 非常道)”라는 말처럼 그것을 ‘무엇’으로 규정하는 순간 그것의 의미는 미끄러져 그것이 아닌 것이 되고 마는 것처럼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모든 것이다.
그래서 이재효갤러리에서 우리가 할 것은 그냥 보는 것이다. 머리를 비우기에 이렇게 좋은 곳이 또 있으랴.
임요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