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내려진 레닌 동상. 1991년 12월 소련 해체로 세계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였다.
1991년 12월 소련이 해체되자 세계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였다. 1945년 이후 국제정치를 규정해 온 냉전 질서는 사실상 막을 내렸고,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던 양극 체제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가 동유럽 공산권의 몰락을 상징했다면, 소련의 해체는 국제 공산주의 체제의 중심축이 무너진 사건이었다.
이 충격은 대한민국에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국내 언론은 연일 소련 해체를 머리기사로 다루었고, 대학과 연구기관에서는 사회주의 체제의 한계를 분석하는 토론회와 학술회의가 이어졌다.
많은 정치학자와 경제학자는 계획경제의 비효율성과 일당독재 체제의 구조적 문제를 주요 원인으로 분석하였다. 소련 해체는 더 이상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주의 체제 전반을 다시 평가해야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의 운동권은 하나의 목소리만을 낸 것은 아니었다. 일부는 동유럽과 소련의 붕괴를 계기로 기존 사회주의 이론을 재검토하거나 민주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등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였다.
반면 일부 친북 성향 세력은 소련의 붕괴를 사회주의 자체의 실패로 보기보다 소련 공산당 지도부의 노선 변경이나 개혁 실패, 또는 미국과 서방의 압박 등에서 원인을 찾으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러한 반응은 당시 운동권 내부에서도 다양한 논쟁을 낳았다.
이 시기 북한은 소련 붕괴를 사회주의의 실패로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련 지도부가 혁명 원칙을 버렸기 때문에 국가가 무너졌다는 논리를 제시하며, 자신들의 체제는 여전히 정당하다는 입장을 유지하였다. 이후 북한은 ‘우리식 사회주의’를 더욱 강조하며 체제 결속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소련 붕괴 후 북한은 ‘우리식 사회주의’를 더욱 강조하며 체제 결속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사진=AP]
역사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 이념에 대한 호불호가 아니라 반복되는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이다. 동독,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에 이어 소련까지 무너졌다면, 연구자는 먼저 이들 국가 사이의 공통점을 살펴보게 된다.
계획경제의 비효율, 정치적 자유의 제한, 권력 집중, 언론 통제, 경제 침체는 여러 나라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비교 연구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공통 요소를 검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연구 절차이다.
반대로 각각의 사례를 모두 예외적인 사건으로만 설명한다면 공통된 구조를 이해하기 어렵다. 모든 실패를 외부 압력이나 특정 지도자의 개인적 실수로만 환원할 경우, 체제 자체에 대한 검토는 뒤로 밀리게 된다. 이러한 설명 방식은 역사적 사실을 하나의 틀 안에서 해석하려는 시도일 수 있지만, 동시에 체제의 구조적 문제를 충분히 분석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받아 왔다.
1991년은 한국 운동권에도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이후 학생운동 내부에서는 노선 변화와 조직 개편이 이어졌고, 일부는 현실 정치에 참여하거나 다른 이념적 방향을 선택했다. 반면 일부는 기존 세계관을 유지한 채 북한 체제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경향을 이어 갔다. 같은 역사적 사건을 두고도 전혀 다른 결론이 나온 것이다.
반공주의는 특정 국가에 대한 적대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국가 권력이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정치 권력이 경쟁과 비판을 허용하지 않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역사에서 배우려는 태도에 가깝다. 소련의 해체는 그러한 역사적 사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사건이었다.
1991년 소련의 해체는 단순히 한 나라가 사라진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20세기 공산주의 실험 전체를 다시 평가하게 만든 세계사적 전환점이었다. 그럼에도 이념을 현실보다 앞세우는 사람들에게는 실패의 원인을 체제 내부보다 외부에서 찾으려는 유혹이 계속 남았다. 냉전은 끝났지만, 냉전의 사고방식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는 이후 한국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소련 해체 후에도 일부 운동권은 공산주의의 본질적 문제를 직시하기보다 ‘개혁의 미완성’ ‘외세의 음모’ ‘자본주의의 공격’ 같은 프레임으로 현실을 재해석하려 했다.
1990년대 초반 대학가와 노동현장, 시민단체 안에서 이러한 논의가 이어지면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객관적 성찰보다는 이념적 충성심이 더 우선시되는 문화가 일부에서 강화되었다.
결국 1991년 소련 해체는 대한민국 종북좌파 80년사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국제 공산주의의 종주국이 무너진 현실 앞에서 운동권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현실을 인정하고 민주주의의 틀 안으로 들어오는 길, 아니면 기존 노선을 고수하며 새로운 ‘우리식’ 해석을 만들어 내는 길. 많은 이들이 후자를 선택함으로써, 사회주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이후에도 한국 정치와 사회의 한 축으로 남게 되었다.
이 선택은 단순한 이념적 고집이 아니었다. 그것은 실패한 체제의 교훈을 외면하고, 여전히 ‘혁명’의 가능성을 믿는 세계관을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제도 정치가 확대된 상황에서도, 일부 운동권은 거리와 이념적 순수성을 더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소련 해체는 이러한 분화의 촉매가 되었고, 종북좌파의 특징적인 ‘현실 외면’과 ‘외부 탓’ 논리가 더욱 선명해진 시기였다.
역사는 실패에서 배우는 법이다. 그러나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면 교훈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다. 1991년 소련의 해체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에게도, 이념적 신념을 현실에 맞추는 성찰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사건으로 남아 있다.

◆ 松山(송산) 정광제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