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당시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020년 8월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무릎 꿇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종인이 또 국민의힘에 훈수를 뒀다. 이진숙 의원 같은 사람의 말을 듣고 가면 국민의힘이 민심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지난 13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명’ 포럼에 대해서도 46년 동안 온갖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제 와서 무엇을 또 재조명하느냐는 취지로 말했다. 참 기가 찬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역사 문제는 더 이상 건드리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역사는 유통기한이 있는 상품이 아니다. 임진왜란은 400년도 더 지났고 청일전쟁은 130년도 더 지났지만 지금도 연구한다.
자료가 새로 발견되기도 하고, 기존 연구의 오류가 드러나기도 하며, 같은 자료도 다른 질문을 던지면 새로운 해석이 나온다. 46년 동안 많은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제 그만 연구하자는 발상이라면 역사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
5·18도 예외일 수 없다. 대한민국은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공식 평가하고 있다. 그 평가를 인정하는 것과 사건을 구성하는 모든 사실관계의 연구가 끝났다고 선언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군의 지휘체계, 시민군의 형성과 무장 과정, 개별 사망 사건, 당시 정부와 언론의 발표, 증언과 기록의 신뢰성은 계속 연구할 수 있다. 민주화운동이라는 법적·정치적 평가가 역사 연구의 마침표가 될 수는 없다.
따라서 포럼에서 문제가 있는 발언이 나왔다면 그 발언을 정확히 집어 비판하면 된다. 이영훈의 ‘광주에서 있었던 열흘간의 소요 사태’라는 표현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다고 판단한다면 자료를 제시해 논박하면 된다.
주동식의 발언이 부당하다면 그것 역시 사실과 논리로 따지면 된다. 학술 토론은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이다. 발표 내용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과 “왜 지금 이런 포럼을 여느냐”고 문제 삼는 것은 성격이 다르다.
김종인이 이진숙의 ‘표현의 자유’ 주장을 두고 “별개의 문제”라고 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런 경우에 표현의 자유가 문제가 된다. 누구나 좋아하는 말에는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지 않다.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8월13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5·18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미일보
듣기 싫고 불편하며 다수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주장까지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말할 수 있어야 표현의 자유가 의미를 갖는다. 허위사실이나 명예훼손에 해당하면 법에 따라 책임을 물으면 된다. 정치적 금기를 만들어 토론 자체를 피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더 볼썽사나운 것은 이진숙을 두고 “이슈를 만들어 자기를 부각하려는 사람”이라고 한 대목이다. 주장에 대한 반박이 아니라 사람의 동기를 제멋대로 추측한 것이다. 이진숙의 행동이 잘못됐다면 무엇이 어떻게 잘못됐는지를 따져야 한다. 포럼을 연 목적이 자기 부각이라고 단정하는 순간 토론은 사라지고 인물평만 남는다. 정치 원로의 비판치고는 참 싸구려다.
여기서 김종인의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김종인은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만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했다. 2020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된 뒤에는 광주 5·18민주묘지를 찾아 무릎을 꿇고 자신의 과거를 사과했다. 국보위 참여를 어떻게 설명하고 책임질지는 김종인의 몫이다. 광주에서 사과한 것 역시 그의 정치적 선택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래서 묻고 싶다. 자신의 과거 때문에 갖게 된 정치적 부담을 왜 오늘의 보수정당까지 짊어져야 하나. 국보위에 들어간 사람은 김종인이지 이진숙이 아니다. 40년 뒤 광주에서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판단한 사람 역시 김종인이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지면 된다. 그것을 후배 정치인들이 따라야 할 규범으로 확대할 이유는 없다.
이 대목에서 제목 그대로 말하고 싶다. 당신이 무릎 꿇었다고 보수 전체가 기어야 하나.
국민의힘은 오랫동안 비슷한 방식으로 정치를 해왔다. 논란이 터지면 내용부터 따지기보다 여론의 파장을 계산하고, 시민단체가 항의하면 당사자를 압박하며, 언론이 ‘극우 논란’이라고 쓰면 거리를 두는 방식이다.
그 밑에는 하나의 계산이 깔려 있다. 이렇게 해야 중도로 외연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 진영에게 욕을 덜 먹는 것과 새로운 유권자의 지지를 얻는 것은 전혀 같은 일이 아니다.
정당이 선거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모든 원칙을 득표 계산에 종속시키는 데 있다. 오늘은 역사 문제에서 물러서고, 내일은 표현의 자유에서 물러서고, 모레는 또 다른 논쟁에서 물러선다면 나중에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정당인지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정치에서 중도는 자기 생각이 없는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민심이라는 말도 함부로 독점해서는 안 된다. 5·18에 대한 국가적 평가를 받아들이면서도 추가적인 자료 공개와 연구가 필요하다고 보는 국민이 있을 수 있다. 어떤 발표자의 주장에는 강하게 반대하면서도 그 사람에게 발언할 기회는 주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민주주의의 장점은 이런 견해 차이를 없애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부딪치게 만들어 검증하는 데 있다.
국민의힘의 위기도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이진숙 한 사람이 너무 강경해서 문제가 아니라 정당 스스로 어떤 문제까지 양보할 수 있고 무엇만큼은 지킬 것인지 기준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민주당의 공격, 언론의 논조, 시민단체의 반발에 따라 태도가 달라진다면 유권자는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도대체 이 당은 무엇을 믿는 정당인가?
보수정당이라고 해서 이진숙이나 포럼 발표자들의 말을 무조건 감싸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틀렸으면 더 세게 비판하면 된다. 허위가 있다면 밝혀내고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지게 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사람에 따라 기준을 바꾸지 않는 것이다. 자기편에게도 상대편에게도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정당의 신뢰를 만드는 길이다.
김종인의 이번 발언에서 필자가 가장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그는 5·18포럼에서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틀렸는지를 따지기보다 그런 논의를 하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에 정치적으로 손해라고 경고한다. 이것은 역사에 대한 태도라기보다 선거 기술자의 사고에 가깝다. 표 계산은 정치에서 필요하지만 그것이 모든 판단의 출발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
김종인은 오랫동안 한국 정치에서 살아남았다. 여러 정당을 넘나들며 선거를 치렀고 위기에 빠진 정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을 여러 차례 맡았다. 정치판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오래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언제나 옳았다는 뜻은 아니다. 노련함이 철학을 대신할 수도 없다.
이제 국민의힘도 김종인의 정치공학에서 졸업할 때가 됐다. 잘못된 주장은 논박하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은 검증하면 된다. 욕을 먹는다고 연구를 피하고 표가 떨어질까 두렵다고 토론을 막는 정당이라면 보수를 자처할 이유도 없다.
김종인이 광주에서 무릎을 꿇은 것은 김종인의 선택이었다. 그 선택의 옳고 그름까지 여기서 따질 생각은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말하고 싶다. 자신의 과거에서 생긴 부담을 보수 전체의 족쇄로 만들지는 마시라.
당신이 무릎 꿇었다고 보수까지 기어야 할 이유는 없다.

◆ 松山(송산) 정광제
시사 칼럼니스트이자 시인, 역사·철학 연구자. 이승만학당 이사와 철학포럼 리케이온 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자유주의작가회의 사무총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시집 ‘하다못해 가슴에라도’외 3권이 있으며 공역 ‘후크고지의 영웅들’과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 ‘문학의 세계와 사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