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펜은 칼보다 강하다.”
영국 작가 에드워드 불워리턴이 1839년 희곡 ‘리슐리외’에서 한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멋있어서 오히려 의심스럽다. 눈앞에서 칼 든 사람이 달려오는데 원고지 들고 맞설 사람은 없다. 권총 앞에서 사설 한 편 읽어준다고 총알이 멈추지도 않는다. 현실의 폭력 앞에서 펜은 놀라울 정도로 무력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칼을 가진 사람들이 자꾸 펜을 무서워한다. 독재자가 권력을 잡으면 작가부터 잡아간다. 신문을 닫고 책을 금서로 만들고 출판사를 뒤진다. 글 몇 줄 쓴 사람을 감옥에 보내고, 외국에서 책이 들어오는 것까지 막는다. 총과 탱크와 감옥을 가진 사람들이 종이 몇 장을 그렇게 두려워한다. 정말 펜이 아무 힘도 없다면 굳이 그럴 이유가 없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칼은 사람의 행동을 멈추게 할 수 있지만 생각까지 명령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입 닥쳐”라고 할 수는 있어도 “나를 존경해”라고 명령할 수는 없다. 사람을 감옥에 넣을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이 감옥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까지 통제하기는 어렵다. 권력이 마지막까지 갖고 싶어 하는 것이 바로 사람의 머릿속이다.
그래서 권력은 칼만으로 오래 버티지 않는다. 반드시 자기편의 펜을 만든다. 신문을 만들고 교과서를 쓰고 구호를 만들고 역사를 다시 설명한다. 어제의 악당을 오늘의 영웅으로 만들고, 어제의 영웅을 오늘의 악당으로 만든다. 사람을 잡아가는 것은 경찰이 하지만, 왜 그 사람을 잡아가도 되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글이다.
여기서 이야기가 재미있어진다. 펜과 칼은 사실 서로 싸우는 물건만은 아니다. 칼이 펜을 이용하고, 펜이 칼을 부르기도 한다. 정치적 학살 앞에는 대개 사람을 죽여도 괜찮다는 설명이 먼저 있었다. 저들은 반역자다, 해충이다, 민족의 적이다. 사람을 죽이기 전에 그 사람을 죽여도 되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펜은 칼보다 강하다” 이 말보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칼보다 먼저 움직이는 것이 펜이다. 사람을 살리는 펜도 있고 사람을 죽이게 만드는 펜도 있다.
그래서 글 쓰는 사람의 책임이 무겁다. 칼을 들지 않았다고 언제나 결백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칼을 든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그 칼을 들어도 된다고 믿게 만드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 松山(송산) 정광제
시사 칼럼니스트이자 시인, 역사·철학 연구자. 이승만학당 이사와 철학포럼 리케이온 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자유주의작가회의 사무총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시집 ‘하다못해 가슴에라도’외 3권이 있으며 공역 ‘후크고지의 영웅들’과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 ‘문학의 세계와 사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