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추경 시정연설 하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과 6.3 지방선거에 사용될 모의 투표지 사진 합성.
이재명 대통령이 3월 31일 26조2000억원 규모의 ‘중동전쟁 위기 극복’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한 데 이어 4월 2일 국회 시정연설에 직접 나섰다.
그는 이번 추경을 “국민의 삶을 지켜줄 방파제”라고 했고, 현 상황을 “민생경제 전시 상황”이라고 불렀다. 또 “빚 없는 추경”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추경은 원래 수사로 포장하는 제도가 아니다. 숫자와 우선순위, 대상과 범위로 설명해야 할 재정 행위다. 이번 추경은 그 출발부터 달랐다. 예산보다 위기의 언어가 먼저였고, 정책보다 정치의 말이 앞에 섰다.
사실관계는 냉정하게 봐야 한다.
이번 중동 전쟁은 2월 28일 시작됐고, 이 대통령은 3월 12일 신속한 추경 편성을 지시했다. 문제는 전쟁 이후 대응이라는 외피 아래, 전쟁 충격을 정밀하게 다루는 예산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체감되는 사업을 폭넓게 끼워 넣은 추경이 설계됐다는 점이다.
편성 내용을 보면 더욱 분명하다.
정부는 고유가 부담 완화 10조1000억원, 민생 안정 2조8000억원, 산업 피해 최소화 및 공급망 안정 2조6000억원, 지방재정 보강 9조7000억원, 국채 상환 1조원으로 짰다고 밝혔다. 여기에 소득 하위 70% 대상 최대 60만원 지원금, 지역화폐 방식의 소비 지원, 청년 창업과 일자리 사업까지 함께 담았다.
전쟁 대응 추경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실제 구조는 다르다. 유가 대응과 소비 진작, 청년 정책과 체감 지원이 한데 섞인 정치형 패키지에 가깝다.
핵심은 단순하다.
진짜 전쟁 충격 대응 추경이라면 국제유가 급등과 공급망 불안으로 직접 타격을 받는 업종과 계층을 먼저 날카롭게 겨눴어야 한다. 물류, 원자재, 수입단가 상승, 에너지 의존 업종의 부담 완화가 앞에 섰어야 했다.
그런데 이재명은 시정연설에서 “방파제”를 말하고 “도약의 발판”을 말했고, 예산안은 그 말에 맞춰 외연을 넓혔다. 위기 대응이 먼저가 아니라 위기 수사가 먼저였고, 재정의 정밀성보다 정치의 체감성이 앞섰다.
이것은 비상 재정이 아니라 정치 재정의 문법이다.
법적으로도 따져볼 지점은 분명하다.
국가재정법 제89조 제1항 제2호의 취지는 경기침체, 대량실업, 남북관계 변화, 경제협력과 같은 대내외 여건의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 추경을 편성할 수 있도록 한다. 이번 사안은 중동전쟁이 만든 유가·환율·공급망 충격에 대응하는 성격이 강하다.
그렇다면 제도가 열어놓은 문도 어디까지나 외부 충격에 대한 대응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역화폐형 소비 지원과 청년 사업, 각종 생활 체감형 사업까지 한꺼번에 실었다. 비상구로 나가야 할 추경이 정권 편의 출입문으로 바뀌는 순간, 재정 원칙은 무너진다.
문재인 정부의 기억이 겹쳐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 국면을 거치며 총 10차례, 154조1000억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한 것으로 집계된다. 위기는 실제였지만 그 과정에서 추경은 예외적 수단이 아니라 상시적 통치 도구처럼 굳어졌다.
한번 길이 나면 정권은 위기만 생기면 추경부터 꺼내 든다. 본예산의 엄격함은 약해지고, 재정 운용은 계획이 아니라 반응으로 바뀐다. 국정 운영은 점점 ‘예산의 정치화’가 아니라 ‘정치의 예산화’로 기운다.
윤석열 정부가 보여준 방향은 그 반대편에 있었다. 추경 편성은 단 한차례 뿐이다. 평가가 어떻든 적어도 본예산의 틀 안에서 총지출 증가율을 관리하고 재정 기강을 세우겠다는 신호는 분명했다.
반면 지금 이재명 정부는 위기를 말하고, 위기의 수위를 키우고, 그 위에 광범위한 체감형 지출을 얹는 방식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빚 없는 추경”이라는 말도 본질을 바꾸지는 못한다. 국채를 새로 찍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어디까지 돈을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 초과세수가 생겼다고 해서 정치적 과잉 편성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추경은 쉬운 제도가 아니다.
본예산 편성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추경을 꺼내 들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예산 예측 능력과 재정 철학에 대한 의문이 따른다. 더구나 대외 충격을 명분으로 들고나와 지역화폐와 청년 사업, 생활 체감형 지원을 한꺼번에 묶어 내놓는 방식이 반복된다면, 본예산은 계획이 아니라 예고편으로 전락한다.
국가가 나서서 불안을 말하고, 다음에는 추경을 말하고, 마지막에는 성과를 말하게 된다면 추경은 더 이상 비상 수단이 아니다. 권력이 위기를 관리하는 수단이 아니라, 위기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기술이 된다.
국가는 위기 앞에서 냉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는 위기를 관리하기보다 위기를 정치에 활용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전쟁 충격을 말하면서 지역화폐와 체감 지원을 넓게 얹고, 시정연설에서는 “방파제”와 “전시 상황”을 앞세워 추경의 정치적 명분을 키웠다.
이것이 반복되면 추경은 더 이상 비상한 재정수단이 아니다. 정권이 위기를 설명하고, 불안을 키우고, 돈을 풀며 지지율을 관리하는 정치기술로 굳어진다.
문재인이 코로나로 그 문을 열었다면, 이재명은 중동전쟁을 빌려 그 문을 더 넓게 열고 있다. 재정이 정치에 끌려가는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돈풀기 수사가 아니라,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재정의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