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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松山] ‘문학의 세계와 사상’ ⑪분노의 저장
  • 松山 작가
  • 등록 2026-04-26 19:3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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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제작된 영화 ‘몬테크리스토 백작(The Count of Monte Cristo)’.

사람은 보통 “나는 그 일을 기억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일이 아니라 그때 느꼈던 느낌을 더 오래 기억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혼난 일을 떠올릴 때,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도 “기분이 나빴다” “억울했다”는 느낌은 또렷하게 남아 있다.

 

이게 중요한 이유가 있다. 사람은 나중에 어떤 일을 판단할 때,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 느낌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감정 기억의 지속성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바뀐다. 처음에는 사건이 자세하게 떠오른다. 누가 있었고,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떻게 흘러갔는지 비교적 또렷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이런 세부 내용은 점점 사라진다. 대신 아주 짧은 문장만 남는다. “나는 무시당했다.” “나는 손해를 봤다.” “나는 억울했다.”

 

이런 문장 하나가 기억의 핵심이 된다. 문제는 이 한 줄짜리 기억이 이후의 판단을 계속 이끈다는 점이다. 문학은 이 점을 아주 잘 이용한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보면,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는 아무 이유 없이 감옥에 갇힌다. 독자는 그 과정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이 사람은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옥에 들어간 과정의 세부는 덜 중요해진다. 대신 “배신당했다”는 인식이 강하게 남는다.

 

그래서 나중에 그가 복수를 시작해도, 독자는 그 행동을 쉽게 이해하게 된다. 심지어 어느 정도는 응원하기도 한다. 이건 독자가 논리적으로 판단한 결과가 아니다. 이미 마음속에 “이 사람은 피해자다”라는 느낌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햄릿에서도 비슷하다. 햄릿은 아버지가 죽은 이유를 유령에게서 듣는다.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런데 독자는 그 말을 들은 뒤, 이미 “아버지는 억울하게 죽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후 햄릿의 행동은 이 생각을 중심으로 이해된다.

 

이처럼 문학은 독자의 머리에 정보를 넣는 것이 아니라, 먼저 느낌을 넣는다. 그리고 그 느낌이 나중에 판단의 기준이 된다.

 

논리는 사라지고 감각만 남을 때

 

사람이 어떤 일을 판단할 때는 보통 “나는 생각해서 결론을 내렸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가지고 있던 느낌이 먼저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 상태가 되면 논리는 힘을 잃는다. 왜냐하면 결론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 결론을 바꾸기보다, 오히려 지키려고 한다. 그래서 새로운 정보를 받아도 판단을 바꾸지 않는다. 대신 그 정보를 자기 생각에 맞게 해석한다. 문학은 이 과정도 잘 활용한다.

 

오셀로에서 오셀로는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고 의심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이아고라는 인물이 계속해서 의심을 부추긴다. 독자도 이 과정을 함께 보게 된다.

 

처음에는 “정말일까?”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의심이 반복되면, 어느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결국 오셀로는 “배신당했다”는 결론을 먼저 내리고 행동한다. 이후의 모든 행동은 그 결론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개츠비는 과거에 사랑했던 사람을 계속 그리워한다. 그런데 그가 기억하는 모습은 실제의 그 사람이 아니다. 과거의 기억 속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다. 독자도 그 시선을 따라가면서 현실과 기억을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는 어릴 때 받은 상처를 평생 잊지 못한다. 그는 새로운 상황을 만날 때마다 과거의 기억을 기준으로 반응한다. 그래서 점점 더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1984은 이 현상을 더 크게 보여준다. 국가가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면 사람들은 그 말을 사실로 믿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처음의 사실은 사라지고, 반복된 생각만 남는다.

 

문학은 독자가 스스로 판단한다고 믿게 만든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떤 생각을 먼저 하게 만들고, 그 생각을 계속 강화하는 방식으로 독자를 끌고 간다.

 

분노가 판단 자원이 되는 과정

 

분노는 처음에는 어떤 일을 겪고 나서 생기는 반응이다. 그런데 이 반응이 계속 반복되면, 나중에는 하나의 기준이 된다. 사람은 새로운 일을 볼 때,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가지고 있는 기준을 꺼내서 적용한다. 이 기준이 바로 과거에 만들어진 분노다.

 

문학은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독자도 그 과정을 따라가게 만든다.

 

맥베스에서 맥베스는 왕이 되기로 마음먹은 뒤 계속 그 결정을 유지하려고 한다. 한 번 내린 판단이 계속 이어진다. 이후의 행동은 그 판단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살인을 한다. 그는 계속 이유를 설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마음속에서 결론이 내려진 상태다. 논리는 그 결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된다.

 

메데이아에서는 분노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 메데이아는 배신을 당한 뒤 그 기억을 중심으로 모든 행동을 결정한다. 다른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는다.

 

이 구조가 커지면 사회 전체에도 영향을 준다. 프랑스 혁명을 보면, 사람들은 오랫동안 쌓인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 불만이 터지면서 판단 기준이 단순해진다. “우리 편이냐, 적이냐” 이 두 가지로 나뉜다.

 

문학은 이런 식의 생각을 만들어내는 데에도 사용될 수 있다. 특정한 사람을 계속 불쌍하게 보여주거나, 특정한 집단을 계속 나쁘게 묘사하면 독자는 그 기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문학은 단순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다. 독자의 머릿속에 특정한 느낌을 먼저 넣는다. 그리고 그 느낌을 반복해서 강화한다. 그 결과 독자는 스스로 판단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이미 만들어진 기준을 따라가게 된다.

 

분노는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기준이다. 한 번 마음속에 자리 잡으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남아 있고, 새로운 판단에 계속 영향을 준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읽느냐가 중요하다. 이야기는 끝나지만, 그때 마음속에 남은 반응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반응은 이후 판단을 내릴 때 다시 불러와진다. 새로운 일을 만났다고 생각해도, 실제로는 이미 저장된 기준을 꺼내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 松山(송산)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신화가 된 조선’과 ‘다다미 위의 인문학’을 펴냈다. 현재 자유주의 문화운동의 연구와 실천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松山은 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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