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수 최희준의 ‘광복 20년’은 단순한 기념 가요가 아니다. 이 노래는 1960년대 후반 한국 사회가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압축해 보여주는 정치적 대중가요다.
겉으로는 ‘광복 20년’을 기념하는 노래지만, 실제로는 해방 이후 20년 동안 한국인이 겪은 혼란, 피로, 기대, 체념이 함께 들어 있다. 가사 몇 줄만 봐도 1960년대 후반 한국 사회의 내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먹구름 가시면 별빛 더 맑은데/ 이십 년 풍운 속에 그 사람 그 이름은/ 비바람에 흘렀다오”
첫 구절부터 분위기는 밝지 않다. 광복은 축하할 일인데, 노래는 만세나 환희로 시작하지 않는다. “먹구름” “풍운” “비바람”이 먼저 나온다. 해방 20년을 돌아보는 시선이 기쁨보다 피로에 더 가깝다는 뜻이다.
1945년 해방은 분명 감격이었지만, 그 뒤 20년은 곧장 혼란이었다. 미군정, 좌우 대립, 단독정부 수립, 여순사건, 6·25전쟁, 전후 빈곤, 4·19, 5·16까지 이어진 격동이 “이십 년 풍운” 다섯 글자에 들어 있다. 이 노래를 들은 당시 청중에게 광복은 축제의 기억이 아니라, 너무 많은 일이 지나간 뒤의 회고였다.
여기서 “그 사람 그 이름”은 매우 중요하다. 이 표현은 특정 인물을 직접 부르지 않으면서도 모두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승만, 김구, 여운형, 조봉암, 신익희, 조병옥, 박정희. 해방 이후 정치를 흔든 이름들이 많았지만 1960년대 후반의 대중은 이미 그 이름들을 영웅담으로만 듣지 않았다. 존경도 있었지만 피로도 있었다.
기대를 걸었던 이름들은 대부분 죽었거나 밀려났고, 남은 것은 평가와 논쟁뿐이었다. “그 사람 그 이름은 비바람에 흘렀다오”라는 대목은 인물 중심 정치에 대한 대중적 허무를 보여준다. 영웅은 많았지만 나라를 편안하게 만들지는 못했다는 냉랭한 회고다.
“아아 영욕은 무상해라 광복 이십 년”
이 한 줄이 1960년대 후반 한국 사회의 핵심 정서를 가장 잘 보여준다. “영욕”은 영광과 치욕이다. 해방도 있었고 전쟁도 있었고, 건국도 있었고 혁명도 있었고 쿠데타도 있었다. 자랑할 일도 있었고 숨기고 싶은 일도 있었다.
그런데 노래는 그것을 “무상”하다고 정리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다. 하나는 체념이다.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너무 많은 이름이 올라갔다 사라졌으니 이제는 담담하게 보자는 태도다.
다른 하나는 거리두기다. 1960년대 후반의 한국인은 이미 정치 열광에서 조금 물러나 있었다. 4·19의 열기와 5·16의 충격을 겪고 난 뒤, 대중은 정치에 쉽게 흥분하기보다 “또 누가 올라가고 또 누가 사라질까”를 지켜보는 쪽으로 바뀌고 있었다.
“어두운 밤 가시면 아침이 오는가/ 이십 년 그 사람 그 이름은/ 서광에 비치는가”
이 대목은 체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1960년대 후반 한국은 피곤했지만 절망만 하지는 않았다. “어두운 밤”은 식민지, 전쟁, 혼란, 가난의 기억이다. “아침”과 “서광”은 산업화와 안정에 대한 기대다.
1967~1968년은 박정희 정권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밀어붙이던 시기였다. 경부고속도로 착공, 수출 확대, 공업화, 도시화가 본격화되던 때다. 대중은 이미 민주주의의 이상만으로 배를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초반의 정치는 뜨거웠지만 가난했다. 그래서 1960년대 후반의 사회는 자유 못지않게 질서와 성장에 마음을 주기 시작했다. “아침이 오는가”는 민주주의의 승리라기보다, 이제 좀 먹고살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더 가까웠다.
이 노래가 TBC 정치 다큐 드라마 ‘광복 20년’의 주제가였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 노래는 그냥 유행가가 아니라, 해방 이후 현대사를 대중에게 다시 들려주는 프로그램의 입구였다. 다시 말해 1960년대 후반 한국인은 현대사를 교과서보다 라디오 드라마로 배웠다.
그리고 그 역사 서술은 영웅 찬가가 아니라 “묻고 묻힌 사연들”을 파헤치는 방식이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1960년대 후반은 국가가 산업화를 밀어붙이던 시기였지만, 동시에 대중은 해방 이후 정치사를 이미 하나의 드라마, 하나의 권력사, 하나의 인간 군상으로 소비하고 있었다. 정치가 신성한 교리가 아니라 해석 가능한 이야기로 바뀌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 노래가 보여주는 1960년대 후반 한국 사회는 세 가지 얼굴을 갖고 있었다.
첫째, 반공국가였다. 해방 20년의 기억은 곧 분단과 전쟁의 기억이었고, 한국 사회의 기본 질서는 이미 강한 반공 위에 세워져 있었다. 좌우 대립은 끝난 것이 아니라 승패가 정리된 상태였다.
둘째, 피로한 정치사회였다. 해방 이후 정치는 너무 많은 이름과 사건을 남겼고, 대중은 정치적 열정보다 정치적 피로를 먼저 배우게 됐다. 이 노래의 “무상”은 바로 그 피로의 언어다.
셋째, 성장 기대 사회였다. 정치에 대한 환상은 줄었지만 경제에 대한 기대는 커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위대한 인물을 기다리기보다, 내일 밥상이 나아지기를 기다렸다. “서광”은 이념의 빛보다 산업화의 불빛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광복 20년’은 해방을 기념하는 노래면서 동시에 해방의 피로를 정리하는 노래다. 환희보다 회고가 앞서고, 영웅보다 피로가 남고, 이념보다 생계가 앞서는 사회. 그것이 이 노래가 비춘 1960년대 후반 한국이었다. 광복 20년의 한국은 아직 가난했고 아직 거칠었지만, 적어도 대중의 눈은 이미 뜨거운 혁명보다 차가운 현실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 松山(송산)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신화가 된 조선’과 ‘다다미 위의 인문학’을 펴냈다. 현재 자유주의 문화운동의 연구와 실천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松山은 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