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1일부로 아랍에미리트(UAE)가 석유수출국기구 OPEC과 러시아 등 10개 산유국 연대체인 OPEC+를 벗어난다. OPEC 66년 역사에 분기점이 될 듯하다. 이번 결정에 대해 UAE는 “장기 전략과 비전, 국내 에너지 생산에 대한 투자 가속을 포함해 변화하는 에너지 구도를 반영한다”며 “생산량 의무에서 벗어나 유연성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카르텔이 약해질수록 시장 중심으로
현 상황을, 누적된 정책 충돌의 연장선에서 우선 살필 수 있다. OPEC 좌장 격인 사우디아라비아 측이 감산을 통해 유가 방어에 무게를 둘 때, UAE는 생산능력 확대에 맞춘 기준선 상향과 증산 가능성을 요구해 왔다. 가격 중시와 물량 확대 추진 전략이 충돌한 셈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설명되진 않는다.
UAE는 사우디와 이라크에 이어 OPEC 전체 생산량의 10% 전후를 차지한다. UAE의 행보로 세계 최대 석유 카르텔 구조의 변화가 예고돼 눈길을 끈다. 주변부의 이탈인 2019년 카타르 사례와는 차원이 다르다.
일명 ‘중동의 뉴욕’ ‘사막 위의 신기루’ 두바이를 보라. 이 현대적 초호화 금융도시가 UAE의 실리주의와 생존법을 상징한다. 국제 역학의 풍향계에도 민감한 UAE는 트럼프 미국이 펼치는 새로운 판을 잘 읽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UAE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ADNOC)가 미국 내 천연가스 사업 구축을 위해 수백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OPEC 약화는 미국 주도의 에너지·금융 질서 유지에 유리하게 작용할 여지가 크다. 개별 산유국이 더 많은 거래 상대와 더 다양한 금융 도구를 필요하게 만들 뿐 아니라, 자금도 가장 유동성이 풍부한 시장인 미국으로 흘러들기 쉽다. 가격 결정권이 ‘정치적 합의’에서 ‘시장’으로 이동하고, 그 시장의 중심엔 달러와 미 금융 시스템이 있다.
페트로달러란 ‘석유 구매 시 달러 결제’ 원칙만을 뜻하지 않는다. 에너지 거래와 투자·결제·헤지로 이어지는 전 과정이 미국 중심 금융망 위에서 돌아간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트럼프, ‘정치로 만들어진 유가’ 비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공급이 충분한데 유가가 흔들리는 현상을 과거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꼬집었다.
2018년 4월20일 트위터(현 X)에서 “OPEC이 또다시 움직인다. 기록적인 석유 공급에도 인위적으로 가격을 끌어올린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같은 해 6월30일 “사우디 국왕과 통화해 하루 200만 배럴 증산을 요청했다”고 적었다. 2019년 2월25일엔 “유가가 너무 높다”며 “OPEC은 긴장을 풀고 진정하라”고 촉구했다.
충분한 공급 속에서 유가가 오르는 현상, 그 배후의 감산 합의를 트럼프는 ‘정치적 왜곡’으로 봤다. 사우디를 향한 증산 압박과 미 셰일 산업 확대 모두 일맥상통한다. 가격을 시장에 맡기려는 것이다.
OPEC 이탈 국가가 늘어날수록 자연히 카르텔의 가격 통제력이 약해진다. 이는 트럼프가 문제 삼았던 ‘정치로 만들어진 유가’ 구조의 점진적 붕괴를 뜻한다. UAE의 이탈이 이 흐름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달러의 힘
근년 들어 일부 산유국이 위안화 등 대체 통화 결제를 시험하고 제재 대상 국가는 달러 회피를 시도했지만, 한계가 뚜렷하다. 에너지 거래란 보험·운송·선물시장·파생상품까지 얽혀 있으며, 이 모든 기능을 동시에 제공해 줄 곳은 미국 중심 금융망밖에 없다. 달러는 단순한 기축통화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산유국 카르텔이 느슨해질수록 이 시스템 의존도는 높아진다.
이런 변동성의 양상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셰일혁명 이후 미국 자신이 세계 최대 산유국이라 국제유가에 덜 휘둘린다. △안전자산 달러. 글로벌 시장이 불안정할수록 자금은 미국으로 몰린다. △선물·옵션 등 금융 헤지 수요 증가에 따라, 관련 거래 중심지인 뉴욕·시카고 영향력이 커진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기차 전환 등으로 석유의 비중은 낮아지지만, 에너지 투자와 기술 금융이 미국 시장에 집중되므로 이 변화 역시 달러의 위상에 치명적이지 않다. 석유의 시대 핵심은 페트로달러였으나, 앞으로 그 자리를 ‘금융 달러’가 차지하는 셈이다.
UAE의 OPEC 탈퇴란 페트로달러 질서의 해체라기보다 구조적 재편의 신호다. 카르텔이 약해질수록 시장은 힘을 얻고, 시장이 강해질수록 미국의 금융·통화 지배력 또한 강화된다. ‘카르텔에 좌우되는 유가’가 힘이 빠지면서, 분산된 생산과 통합된 금융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여전히 달러가 있다.

◆ 임명신 박사
중문학박사, 동북아 연구자
前 스카이데일리 국제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