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5·18 北개입 황장엽 명단 YS 묵살, CIA는 알았다”
1980년 5·18 당시 광주에 내려온 북한 공작대 명단을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가 제출했으나 김영삼 대통령이 묵살한 것을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알고 있었다는 전직 한국계 CIA 요원의 증언이 나왔다. 40년간 한국계 미국 정보요원으로서 굵직한 대공(對共)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누구보다 가까이 접근하며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직접 조사했던 마이클 이(93·Michael P. Yi) 조지워싱턴대 정치학 박사는 지난 17일 <한미일보>와 만나 가진 인터뷰에서 “그동안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라며 이같이 폭로했다.
1991년 5월 전노협 결의대회. 흑백사진을 컬러로 바꿈.
1990년 1월22일, 서울 용산 성공회대성당에서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이른바 전노협이 출범했다. 민주노총은 아직 없었지만, 실질적 뼈대는 이때 이미 완성됐다.
민주노총을 이해하려면 1995년보다 1990년을 먼저 봐야 한다. 민주노총은 갑자기 생긴 조직이 아니다. 전노협이라는 전위조직이 먼저 깔렸고, 민주노총은 그 확대판이었다. 이때부터 한국 노동운동은 임금과 노동조건을 다루는 교섭조직에서 벗어나, 노조 간판을 단 정치조직으로 성격이 바뀌기 시작했다.
공장으로 들어간 운동권, 노조를 ‘정치 본부’로 만들다
전노협은 출범 당시 전국 600여 개 노동조합, 약 20만 명 조합원을 대표한다고 밝혔다. 제조업 중심이었다. 현대중공업, 현대엔진, 대우조선, 기아, 대우자동차, 인천·부천 공단, 창원 기계공단 노조들이 핵심 축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민주노조의 전국 연대”였다. 한국노총이 정부와 기업 눈치를 보며 타협만 한다는 불만이 컸고, 현장 노동자들 사이에서 독자 노총 요구가 커진 것도 사실이었다. 겉으로만 보면 전노협 출범에는 충분한 명분이 있었다. 정부 편에 선 어용노총 말고 현장 노동자를 대변할 조직이 필요하다는 주장 자체는 설득력이 있었다.
문제는 전노협이 그 명분 위에 무엇을 올렸느냐다. 전노협은 처음부터 오로지 노조 연합체가 아니었다. 출범 선언문부터 성격이 드러났다.
노동조건 개선, 임금 인상, 산재 예방 같은 현장 의제만이 아니라 “민주주의 쟁취” “민족 자주” “민중 해방” “반외세 자주화” 같은 운동권 구호가 노골적으로 들어갔다. 노조가 임금협상 조직인지, 체제변혁 조직인지 경계가 처음부터 무너져 있었다. 노동조합의 언어로 포장했지만, 내부 문법은 이미 운동권 정치조직이었다.
이 시기 전노협 핵심 간부 상당수는 현장 출신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1980년대 학생운동과 연결된 NL·PD 계열 활동가들이었다. 박종철 고문치사와 6월 항쟁 뒤 거리에서 밀린 운동권은 공장으로 들어갔고, 전노협은 그들이 다시 집결한 새 본부가 됐다.
공장 안 야학, 노동상담소, 현장 소모임은 단순한 노동 교육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은 반미, 반자본, 반체제 이념을 노동 현장에 주입하는 통로였다. 노동자는 조합원인 동시에 정치병력이 되어 갔다. 임금 투쟁은 점점 정치 선동의 단지 입구로 쓰였다.
전노협은 한국노총과 자신을 구별하며 “투쟁하는 민주노조”를 내세웠다. 문제는 이 ‘투쟁’이 너무 빨리 ‘교섭’보다 우위에 올라갔다는 점이다. 노조의 목적은 원래 더 나은 임금, 더 안전한 작업장, 더 안정된 고용이어야 한다.
그러나 전노협은 협상보다 충돌, 타결보다 파업, 제도 개선보다 거리 동원을 더 높게 쳤다. 현장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오래 버틸 수 있는 교섭력인데, 전노협은 오래 싸우는 투쟁력을 더 높게 평가했다. 그 결과 노동자는 협상 성과보다 투쟁 경력으로 줄 세워지기 시작했다. 노조는 조합원을 보호하는 조직이 아니라 조합원을 동원하는 조직으로 변질되어갔다.
파업 통해 정치력 과시
이때부터 한국 노동운동에는 아주 나쁜 버릇이 자리 잡았다. 파업은 협상 수단이 아니라 정치 과시 수단이 됐고, 노동자는 조합원이 아니라 거리의 숫자가 됐다. 얼마나 많이 모였는가, 얼마나 오래 막았는가, 얼마나 강하게 충돌했는가가 성과처럼 포장됐다.
공장 안 식당과 휴게실에서 다뤄야 할 임금표, 교대제, 산재율보다 광장 구호와 정권 비판이 더 앞에 놓이기 시작했다. 노동운동이 노동자 삶에서 멀어지고 운동권 언어에 잠식되기 시작한 출발점이 바로 전노협이다.
전노협은 한국 노동운동의 독립을 외쳤지만, 실제로는 노동운동의 운동권 예속을 굳힌 조직이었다. 한국노총의 어용성을 비판하며 출범했지만, 정작 스스로는 더 강한 정치 예속으로 들어갔다. 정부의 하수인은 아니었지만 운동권의 전위가 됐다.
이름은 노동조합 협의회였지만 실상은 공장에 세운 정치본부였다. 민주노총은 1995년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노동자의 이름을 빌려 운동권 사령부를 세운 날, 이미 민주노총은 1990년에 시작됐다.
◆ 松山(송산)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신화가 된 조선’과 ‘다다미 위의 인문학’을 펴냈다. 현재 자유주의 문화운동의 연구와 실천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松山은 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