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도문시(왼쪽)와 북한 온성군 남양노동자구를 가르는 두만강. [사진=연합뉴스]
시진핑 국가주석의 6월8~9일 평양 방문은 단순한 우호 친선이나 수교 기념행사가 아니다. 미·중 전략경쟁, 북·러 군사협력, 동북아 세력균형 변화라는 거대한 정세 속에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재확인하고 새로운 전략적 질서를 구축하려는 고도의 포석을 드러냈다.
1. 평양 방문의 숨은 의도와 대양 진출의 야심
특히 이번 정상회담에서 ‘비핵화’가 사실상 사라지고 ‘주권·안보·발전이익 수호’가 강조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중공이 현실적으로 북핵을 용인하고, 이를 미·중 대치 국면에서 미국을 견제할 전략 자산으로 활용하겠다는 입장 변화를 극명히 보여준다.
결국 이번 방북은 북한에는 체제 보장과 경제·안보적 숨통을 위해 국경 통상구 정상화, 항공·열차 재개 등을 열어주고, 중공은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쥐며 미국을 압박하려는 ‘고도의 계산된 전략적 공생 체제’를 선언한 자리로 평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방문은 정치·군사적 결속을 넘어, 중공의 숙원인 ‘동해 진출’의 교두보를 두만강에 설치하려는 포괄적 야심이 짙게 깔려 있다.
중공이 추진해 온 동북3성 개발과 동해 물류망 확보, 즉 두만강 하류를 통한 해양 진출 전략이 북·중회담의 수면 아래에서 핵심 의제로 다뤄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두만강을 점령한 북한, 두만강으로 진출하려는 중공, 두만강 하구 항행 허용으로 이익을 취하려는 러시아가 벌이는 3각 각축을 우리의 생존 차원에서 분석하고 대비해야 한다.
2. 러시아의 구조적 몰락과 중공의 동해 진출
공산권 패권 교체의 이면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인해 중공의 ‘에너지 운반체’이자 사실상 북방 속국(屬國)으로 전락한 러시아의 비참한 처지가 자리 잡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습으로 정유 시설이 초토화된 러시아는 원유가 지하에서 굳어버리는 ‘유전 폐광’ 위기에 직면했고, 유럽 시장마저 닫혔다.
중공은 이 치명적인 약점을 파고들어 러시아산 원유 가격을 시장가의 90% 수준으로 후려쳤다. 러시아는 피를 흘리며 자원을 넘기고도 전쟁 비용조차 충당하기 버거운 악순환의 늪에 빠졌다.
결국 생존의 기로에 선 푸틴이 내던진 최후의 카드가 대대로 지켜온 ‘지정학적 담보’이자 중공의 숙원인 ‘동해 진출권’이다. 역사적으로 중공은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동해 진출권을 상실한 이후 줄곧 두만강 하구 항행권을 되찾기 위해 공을 들여왔고, 러시아는 자국 안보를 위해 이를 철저히 봉쇄해 왔다.
그러나 전쟁으로 코너에 몰린 러시아는 결국 160여 년간 지켜온 안보 빗장을 풀었다. 2024년 5월 공동성명을 통해 러시아는 “중공 선박의 두만강 하구를 통한 항행과 동해 진출에 대해 건설적 대화를 가질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명시했다. 당장의 외화 몇 푼과 전쟁 지속을 위해 동해 패권의 길목을 중공에 통째로 내어준 셈이다.
3. 중공의 북한 흡수와 미국의 봉쇄망 대응
이처럼 러시아의 방어벽이 무너지자, 중공은 본격적으로 북한을 자신의 전략권 안으로 통제하려고 한다.
전쟁 이후 북한이 러시아에 병력과 군수물자를 제공하는 대가로 군사·위성 기술을 지원받으며 중공 의존도를 낮추려 하자, 중공은 북한에 “러시아와 가까워질 수는 있지만 중공의 전략적 후견국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경고성 신호를 보낸 것이다.
과거 미국의 눈치를 보며 거절했던 현금과 식량, 기술 지원의 빗장마저 풀며 북한을 확고한 완충지대로 묶어두려 하고 있다. 동시에 이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봉쇄망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중공 입장에서 북한은 한미일 안보협력 압박을 분산시키는 강력한 방패다.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면 미국의 군사력 상당 부분이 북한 도발에 묶이게 되며, 이는 미국이 대만과 남중공해에 집중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번 회담에서 외교·법집행·군대 협력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양국이 안보공동체 수준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미국을 향한 전략적 시위다.
4. 중공의 두만강·동해 진출의 전략적 확장과 핑루 운하의 연계
중공의 이러한 지정학적 압박은 내부의 경제적 생존 전략과 긴밀히 맞물려 있다. 중공은 만성적 침체를 겪고 있는 동북3성(지린·랴오닝·헤이룽장)의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나진·선봉 특구 활용과 두만강 하류 수로 확보를 갈망해 왔다.
이는 중공이 천문학적 자본을 투입해 서남부 내륙과 동남아를 연결하는 ‘핑루(平陸) 운하’를 개통한 해양 확장 맥락과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남방에서 운하를 통해 물류 패권을 넓혔듯, 북방에서는 ‘훈춘~나진·선봉’ 물류망을 확보해 자국 화물을 동해로 직접 출항시키겠다는 계산이다.
이 경로가 열리면 중공과 러시아의 극동지역을 잇는 물류 효율성은 극대화된다. 결국 중공은 북한 체제를 지원하는 대가로 한반도 북방의 해양 통제권과 실리적 경제 영토를 동시에 장악해 나갈 것이다.
5. ‘북방의 호르무즈’ 위기와 우리의 대응
결국 이번 시진핑의 평양 방문은 북한을 미·중 경쟁의 핵심 전략자산으로 재확인했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중공의 두만강 하류 수로 확보와 동해 진출이 가시화되면서, 서해뿐만이 아니라 우리 동해까지 중공의 해양 영향력 아래 노출된다는 사실이다.
만약 민간 선박을 빙자한 중공의 해상 전력과 에너지 물류가 동해로 쏟아져 나온다면, 중동 호르무즈 해협의 지정학적 위기가 우리의 동해로 밀려오는 전대미문의 안보 재앙이 된다. 동해가 북·중·러의 해양 패권이 판을 치는 ‘북방의 호르무즈’로 변모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일시적 몰락과 중공의 팽창이 헌법상 영토인 두만강에서 맞물리는 지금, 대한민국은 한미 동맹을 공고히 하고 해양 안보 역량을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재점검해야 한다. 거대한 지정학적 격변 속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역사적 골든타임이 그리 길지 않다.


◆ 박필규 위원
한미일보 편집위원
육군사관학교 40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