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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곤 칼럼] 고양이 목의 방울은 누가 다시 달 것인가
  • 민병곤 정치다큐멘터리 작가
  • 등록 2026-03-12 19:3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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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고양이 방울이 떨어져 나가고 있다
  • 권력은 결코 스스로를 제한하지 않아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것은 ‘고양이 방울을 다는 행위’와 같다. 

이솝우화에 ‘고양이에게 방울 달기’라는 이야기가 있다.

 

고양이에게 늘 잡아먹히던 쥐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한다. 한 쥐가 말한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자. 그러면 방울 소리를 듣고 미리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훌륭한 생각이라며 박수를 친다. 그러자 늙은 쥐가 조용히 묻는다. 

 

“그 방울은 누가 달 것인가?”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것은 바로 그 ‘방울을 다는 행위’와 같다. 절대 권력의 위험을 막기 위해 권력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장치를 만드는 일, 그것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인류는 수많은 희생과 피의 대가를 치르며 결국 그 방울을 고양이의 목에 달았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역사다.

 

시민 혁명이든 군사 쿠데타든, 혹은 선거로 탄생한 권력이든 권력의 속성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의 욕심처럼 권력은 언제나 힘을 더 키우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권력은 언제나 분산보다 집중을 향해 치닫는다. 

 

이 위험을 막기 위해 우리의 민주주의는 ‘방울’과 같은 지혜로운 장치를 만들었다. 그것은 바로 삼권 분립. 국민이 주인인 ‘민주’가 관념이라면 ‘삼권분립’은 그를 지탱하기 위한 구체적 행위다. 

 

견제와 균형 없이 민주주의는 존립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입법, 행정, 사법이 서로를 감시하고 견제함으로써 권력의 폭주를 막는 구조다. 

 

그러나 지금 그 방울이 떨어져 나가고 있다.

 

압도적 다수 의석을 가진 입법 권력과 대통령이 결탁해 이른바 ‘사법 개혁 3법’을 추진하며 사법부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민주주의의 한 축을 잘라내는 행위다. 수많은 희생으로 달았던 고양이 목의 견제 방울이 지금 떨어져 나가고 있다. 

 

방울이 사라진 고양이는 어떻게 움직여도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는다. 고양이가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없게 된 쥐들은 결국 저항 없이 잡아먹히게 된다.

 

견제의 장치가 무너진 권력은 경고음 없이 달리는 폭주기관차와 같다. 그 권력은 스스로를 제어할 이유도, 두려워할 대상도 없다. 권력은 민주주의의 보호자에서 민주주의의 포식자로 변한다. 

 

권력은 결코 스스로를 제한하지 않는다.

 

히틀러의 나치와 마두로의 베네수엘라를 굳이 언급하지 않는다 해도 실제로 역사 속에서 권력 집중은 언제나 사법 독립의 왜곡과 약화를 통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민주주의는 한 번 만들어졌다고 해서 영원히 유지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끊임없이 지켜내야 하는 질서이며, 시민들이 스스로 그 가치와 의미를 깨달아야 하는 과정이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질문은 단순하다. 

 

고양이 목에 달린 방울이 떨어지고 있는 이 순간, 그 방울을 다시 달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민주주의는 제도 위에 서 있지만, 그 제도를 지키는 것은 결국 시민의 몫이다.

 

깨어있지 못한 쥐에게는 결코 내일은 없다. 




◆ 민병곤 작가 


현) 정치다큐멘터리 작가 

현) 국민의힘 인천시당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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