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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 한미칼럼] 국민의힘은 누구를 자기 지지층으로 남길 것인가
  • 김영 기자
  • 등록 2026-04-27 13:2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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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과 행동이 어긋난 장동혁 대표의 책임도 크다
  • 절윤은 법치의 요구인가, 선거공학인가
  • 선거 검증 요구까지 배제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

국민의힘은 누구를 자기 지지층으로 남길 것인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향한 사퇴론이 거세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 대표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는 비판이다. 


방미 논란, 면담 설명 논란, 당의 해명 혼선, 지방선거 후보들과의 거리감, 지지율 하락 등이 한꺼번에 거론되고 있다. 


장 대표는 24일 “최선을 다해 지방선거를 마무리하고 당당하게 평가받겠다”며 6·3 지방선거 전 사퇴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사퇴론은 이미 당 안팎의 주요 쟁점이 됐다.

 

외톨이를 자초한 대표

 

장 대표가 자초한 측면은 분명히 있다. 


지방선거가 임박한 시점에 당 대표의 행보는 후보 지원, 메시지 통합, 선거 전략 정리에 집중돼야 했다. 


그러나 방미 논란이 전면에 올라서면서 대표가 선거판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줬다. 해명 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다. 당의 공식 설명과 대표의 설명이 엇갈려 보였고, 그 틈에서 리더십 논란은 더 커졌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말과 행동의 불일치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 끝장토론 직후 선거 시스템 재설계와 당 차원의 선거 감시 TF 구성을 언급했다. 


당시 그는 이 문제를 “공정한 선거 시스템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관심”으로 해석했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도록 선거 시스템을 바꾸는 문제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아젠다가 됐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후에는 실제 TF를 구성하고, 선거 검증 요구를 제도 개선 의제로 정리했어야 했다. 


부정선거를 당론으로 삼으라는 뜻이 아니다. 선거 결과 조작을 단정하는 주장과 선거 시스템 검증 요구를 구분한 뒤, 국민의힘이 책임 있는 제도 개선안을 내놓았어야 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장 대표의 발언이 당 차원의 분명한 조직과 지속적 활동으로 이어졌는지는 선명하지 않다. 의제를 던졌다면 실행으로 증명해야 했다. 실행하지 못할 말이었다면 처음부터 신중했어야 했다.

 

탄핵과 계엄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장 대표는 1월 7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에 대해 “잘못된 수단”이었다며 사과하고, ‘계엄·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사과가 필요하다면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계엄의 수단이 문제였는지, 목적이 문제였는지, 당이 책임져야 할 부분은 어디까지인지 밝혔어야 했다. 반대로 사과가 필요 없다고 본다면 왜 그 사과 요구가 부당한지 설명해야 했다.

 

그러나 장 대표는 양쪽 모두를 설득할 만큼 분명한 언어를 만들지 못했다. 


어정쩡한 사과와 이후의 입장 변화는 절윤을 요구하는 쪽에도, 탄핵 절차에 의문을 가진 지지층에도 신뢰를 주지 못했다. 강성 지지층에는 선명하지 않았고, 중도 확장을 요구하는 쪽에는 충분히 결별하지 않은 인물로 비쳤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위치는 양쪽을 모두 설득하는 중간이 아니라, 양쪽 모두에게 의심받는 중간이다. 장 대표는 바로 그 자리에 섰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문제의 절반만 보는 것이다. 


장동혁 사퇴론의 본질은 단순한 거취 문제가 아니다. 더 깊은 질문은 따로 있다. 


국민의힘은 자신의 지지층을 어디까지로 인정할 것인가. 그리고 국민의힘 밖에서 쏟아지는 사설과 칼럼의 비판은 진정으로 보수정당의 승리를 위한 충고인가, 아니면 보수정당의 지지층 경계선을 다시 긋기 위한 정치적 압박인가.

 

절윤은 당위인가

 

최근 장 대표 비판에는 반복되는 전제가 있다. 국민의힘이 살려면 윤석열 전 대통령과 선을 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절윤’이다. 윤어게인 세력과 절연해야 하고, 부정선거 주장과도 단호히 선을 그어야 한다는 요구도 함께 나온다.

 

문제는 이 주장들이 너무 쉽게 당위로 제시된다는 점이다. 


‘절윤’은 그 자체로 당위인가. 아니면 지방선거를 앞둔 선거공학인가. 법치주의의 요구라면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어떤 행위가 보수정당의 헌정질서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인지, 그 기준이 법적 판단인지 정치적 판단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반대로 선거공학이라면 또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거리를 두는 것이 실제로 국민의힘의 선거 승리로 이어지는지, 핵심 지지층 이탈보다 중도층 확장이 더 크다는 근거가 무엇인지 제시해야 한다.

 

가치 판단과 선거공학은 다르다. 


그런데 일부 사설과 칼럼은 이 둘을 섞는다. 겉으로는 쇄신과 법치를 말하지만, 실제 논리는 “선거에 불리하니 끊어내라”에 가깝다. 


그렇게 되면 절윤은 원칙이 아니라 계산이 된다. 계산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정당은 선거를 치르는 조직이므로 계산도 필요하다. 다만 계산을 원칙처럼 포장해서는 안 된다.

 

배제인가 설득인가

 

‘윤어게인’ 국민을 어떻게 볼 것인가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모든 행위를 무조건 옹호하는 정치 노선과, 탄핵·수사·재판 과정에 의문을 가진 보수 유권자 정서는 같지 않다. 


전자를 당의 공식 노선으로 삼을 수 없다는 주장과, 후자까지 국민의힘 지지층 밖으로 밀어내야 한다는 주장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정당은 유권자를 도덕적으로 선별하는 기관이 아니다. 


정당은 다양한 불만과 기대, 상처와 요구를 정치 언어로 정리해 선거를 통해 집권을 시도하는 조직이다. 불편한 지지층을 잘라내는 것은 쉬운 해법처럼 보이지만, 실제 정치에서는 가장 위험한 해법일 수 있다. 


국민의힘이 강성 메시지를 조정해야 한다는 말은 가능하다. 그러나 특정 국민을 통째로 ‘절연 대상’으로 규정하는 순간, 정당은 설득의 기능을 포기하게 된다.

 

검증 요구는 금기가 아니다

 

부정선거 논란도 구분해야 한다. 


선거 결과가 조작됐다고 단정하는 주장에는 엄격한 증거 책임이 따른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 규모의 부정을 저질렀고, 그것이 선거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선거 시스템의 투명한 검증을 요구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사전투표, 우편투표, 개표 장비, 서버 관리, 참관 절차, 선거인 명부 관리에 대한 점검 요구는 민주주의 안에서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 선거 검증 요구가 곧 선거 불복은 아니다. 


오히려 검증은 불신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선거에 대한 신뢰는 “믿으라”는 말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확인할 수 있어야 믿을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여론의 흐름을 무시할 수 없다. 


지난해 3월 자유민주시민회의 의뢰·여론조사공정 조사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는 응답은 44.1%, ‘부분적으로 조사해야 한다’는 응답은 10.4%로 보도됐다. 규명 필요 의견을 합치면 54.5%였다. ‘규명할 필요 없다’는 응답은 42.9%였다. 


이는 국민 과반이 부정선거를 단정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러나 선거 의혹에 대해 제도적 검증이 필요하다고 보는 여론이 결코 주변부가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유튜브로 중계된 ‘부정선거 끝장토론’이 폭발적 관심을 끈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전한길 씨 측이 맞붙은 이 토론은 7시간 넘게 진행됐고, 실시간 시청자 수는 30만 명을 넘겼으며, 하루도 지나지 않아 누적 조회수 500만 회를 넘긴 것으로 보도됐다. 이후 누적 조회수는 600만 회를 넘어 700만 회에 근접한 규모로 회자됐다. 


이 숫자는 특정 주장의 옳고 그름을 입증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거 검증 요구를 단순히 ‘극우’나 ‘윤어게인’으로 밀어낼 수 없을 만큼 사회적 관심이 커졌다는 사실은 보여준다.

 

판결과 신뢰는 다르다

 

그렇다면 이 현실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수많은 의혹 자료와 증거물을 모두 ‘부실’이라는 한 단어로 치환하고, 대법원 판결문이 의혹을 종식시켰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법부가 증거 부족을 이유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국민이 선거 관리 과정의 검증 가능성을 요구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판결은 법적 판단일 수 있지만, 신뢰는 설명과 공개 검증을 통해 형성된다.

 

선거 검증 요구를 부정선거 단정론과 한데 묶어 배제하는 순간, 제도권은 스스로 검증을 거부하는 쪽에 서게 된다. 


장동혁 대표 논란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 


국민의힘이 물어야 할 것은 부정선거를 당론으로 삼을 것인가가 아니다. 선거 제도에 의문을 가진 국민에게 확인 가능한 답을 내놓을 것인가, 아니면 그들을 지지층 밖으로 밀어낼 것인가다.

 

이 점에서도 장 대표의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를 제기했지만 실행으로 밀어붙이지 못했고, 사과를 했지만 기준을 설명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비판의 표적이 됐다. 


하지만 장 대표의 책임과 사퇴론의 당위는 별개의 문제다. 


장 대표가 부족하다고 해서, 그를 비판하는 모든 주장이 자동으로 옳아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그 비판이 국민의힘 지지층 일부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흐른다면 더 엄격히 따져야 한다.

 

본질은 경계선이다

 

국민의힘의 위기는 장동혁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보수정당이 자신의 지지층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다. 


중도 확장은 필요하다. 그러나 중도 확장이 핵심 지지층 배제를 뜻한다면 그것은 확장이 아니라 해체다.

 

핵심 지지층 결집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의혹 제기를 무조건 수용하는 방식이라면 그것 역시 정당의 책임을 포기하는 일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질문은 단순히 “장동혁은 물러나야 하는가”가 아니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지지한 국민, 탄핵 이후 절차에 의문을 가진 국민, 선거 시스템 검증을 요구하는 국민을 모두 지지층 밖으로 밀어낼 것인가. 아니면 이들의 문제의식 중 합리적 부분을 제도적 언어로 정리해 낼 것인가.

 

장동혁 논란의 본질은 ‘절윤’이 아니다. 본질은 보수정당의 경계선이다. 


그 선을 누가 긋고, 어떤 기준으로 그으며, 선 밖으로 밀려나는 국민에게 무엇을 설명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대표를 바꿔도 같은 논쟁은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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