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가 인종 논란 속에서도 중국 내에서 일정한 수익을 올렸다. [사진=바이두]
중국의 노동절 연휴 영화 소비 총력전이 초라하게 끝났다. 올해 노동절 연휴 박스오피스 매출은 약 7억5000만 위안(약 1500억 원)으로 작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각각 15억 위안을 넘어선 2023·2024년의 반토막에 가깝다.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부터 사회주의 정체성이 분명한 만큼, 건국기념일(국경절)과 음력설(춘절) 다음가는 연휴가 노동절이다. 중국에선 대체 휴일 방식으로 닷새를 쉰다. 자연히 여행 성수기이자 영화관 대목의 하나다.
당국의 의식적인 노력에도 이 정도였다는 게 중요하다. 베이징·허베이·저장 등 지방정부들이 영화 관람 보조금과 소비 쿠폰을 뿌렸고, 온라인 플랫폼들 역시 할인 경쟁을 벌였다. 심지어 올해를 ‘영화경제 촉진의 해’로 지정하기까지 했다. 당국이 예고한 영화 관람 지원금만 12억 위안 규모였으니, 관객의 동원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친 셈이다.
이를 단순한 경기 침체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영화를 함께 보는 문화’가 흔들리기 시작한 점이 두드러진다. 중국 영화시장은 오랫동안 집단관람 문화에 기대어 성장했다. 가족·연인·직장 단위 소비 위주였고, 황금연휴가 흥행을 좌우했다. 한때 중국엔 세계 최대 영화관 건설 붐이 일었으며, 애국주의 블록버스터 및 대형 국산 상업영화가 그곳을 채웠다.
국가주의·검열 강화… 인간보다 선전 우선
중국 영화시장에선 ‘집단관람 문화’의 퇴조와 산업적 한계가 맞물린 것일 수 있다. 더 근본적 원인으로, 중국 영화계의 과도한 국가주의와 ‘안전한 공식’에의 의존이 꼽힌다. 최근 몇 년간 애국주의 전쟁물, 공산당 중심의 역사 서사, 검열을 통과한 가족 코미디 등의 반복이었다. 그간 이런 영화들이 ‘스크린 공동체’ 속 중국 관객들을 상대로 일정한 성공을 거뒀으나, 관객 피로감도 쌓여갔다.
중국 출신의 유명 감독 장이머우가 2007년 내한 인터뷰 때 “인간의 갈등과 고통이야말로 영화의 뼈대”라고 짚었으나, 이런 정신이 얼마나 살아 있을지 미지수다. 국내외 영화 애호가와 전문가들 사이에선, 근년 중국 영화에서 인간보다 국가적 메시지가 우선시된다고 여기는 시각이 우세하다. 중국 영화가 자국 내수시장밖엔 다른 길을 못 찾는 것도 결국 이 대목이다.
과거엔 중국영화의 잠재력과 다양성이 성장 동력이었다. 1990년대 내내 장이머우·천카이거 감독 세대의 예술성과 시사성이 전 세계를 매료시켰으며, 1970년대 이래 독보적 세계를 구축한 홍콩 느와르의 개성도 여전했다. 개혁개방에 따른 사회 변화가 청춘물·무협·도시로맨스 등에 잘 녹아났다.
중국 제6세대 감독 자장커는 “중국 사회 변화 속도를 영화가 못 따라가면 관객이 등을 돌릴 것”이라고 했지만, 이젠 영화가 현실보다 훨씬 느리게 움직인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졌다. 검열이 강화되면서, 섬세한 내면과 관계성을 그린 매력적인 중간 규모 영화들이 사라졌다. 대작 아니면 저예산 코믹 영화만 남는 등 양극화가 심해진 모양새다. 관객들의 이탈은 불가피해 보인다.
‘스크린에서 자기 시대를 못 본다’
중국 내 이번 노동절 흥행 순위가 상징적이다. 상위권은 범죄물과 홍콩 느와르였으나 압도적 흥행작이 없었고, 할리우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가 인종 논란 속에서도 일정한 수익을 올렸다. 중국 관객들이 ‘정치적으로 안전한 국산 영화’보다 글로벌 콘텐츠에 반응한 것이다.
영화관 관객 감소는 팬데믹 이후 전 세계적 현상이다. 할리우드 또한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플랫폼 확산으로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중국엔 자유로운 창작 환경 위축과 검열 강화라는 체제 특유의 문제가 얽혀 있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수상 당시 “가장 개인적인 게 가장 창의적”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중국 영화계에선 바로 그 ‘개인적 이야기’ 자체가 어려워졌다.
영화란 한 시대·사회의 욕망·불안·변화 등을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는 분야인데, 21세기 중국에선 청년층의 절망, 부동산 붕괴, 계층 이동 단절, 냉소주의 같은 불편한 진실을 건드릴 수 없다. 결국 현실 도피용 오락이나 국가 선전물로 수렴되기 마련이다.
중국 정부가 소비 진작을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풀고 있지만 이것이 문화 콘텐츠의 활력까지 키워주진 못한다.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건 ‘지금, 여기를 가장 날카롭게 비추는 이야기’다. 사람들이 더 이상 스크린에서 자기 시대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점, 그것이 중국 영화의 진짜 위기일 것이다.

◆ 임명신 박사
중문학박사, 동북아 연구자
前 스카이데일리 국제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