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5월, 아이·부모·노인·공무원으로 상징되는 시민들이 국회를 배경으로 서 있다. 국민은 몇 표가 아니라, 각자의 삶과 존엄을 지닌 사람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 [한미일보 합성 사진]
국민은 몇 표가 아니다
5월은 사람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달이다. 어린이날이 있고, 어버이날이 있고, 스승의 날이 있다. 오는 24일에는 자비의 정신을 기리는 부처님오신날도 있다.
달력은 묻는다. 아이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부모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그리고 사람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볼 것인가.
정치도 결국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 정치는 국민을 ‘몇 표’로 계산하지만, 국민은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어머니이며,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다.
선거철이면 정치인은 국민 앞에서 몸을 낮춘다. 스스로를 머슴이라 부르고,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권력이 손에 들어오면 말은 달라진다. 섬기겠다는 언어는 사라지고, 가르치고 관리하고 동원하려는 언어가 앞에 선다.
이재명 정권 들어 그 태도는 선거가 끝난 뒤가 아니라 선거철 한복판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선거철에 드러난 권력의 시선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월6일 CBS 라디오에서 공소취소 논란과 관련해 시민 10명 중 8~9명은 공소취소 뜻을 잘 모른다는 취지로 말했다.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려 한 것이 아니라, 국민은 모를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한 것이다.
국민이 법률 용어를 모를 수는 있다. 그러나 용어를 모른다고 해서 사법 절차의 본질을 판단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은 공소취소라는 말을 몰라도, 대통령 본인 사건과 연결된 사법 절차를 권력이 흔드는 일이 왜 위험한지는 안다.
같은 날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계곡 불법시설 정비 문제를 질책하며 “적당히 넘어가면 고마워하는 게 아니고 뒤에서 ‘비읍 시옷’ 하면서 욕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단속을 철저히 하라는 지시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 안에 깔린 국민관이다. 단속을 느슨하게 하면 국민은 좋아하면서도 뒤에서는 욕하는 존재라는 전제가 읽힌다. 행정 지시이기 전에 권력자의 시선이다.
선거 현장도 다르지 않았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5월3일 부산 북구 구포시장 유세에서 초등학생에게 하정우 후보를 “오빠”라고 부르게 해 논란을 불렀다.
아동 인권과 성적 함의 논란도 심각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어린아이까지 유세장의 분위기를 띄우는 도구처럼 다룬 시선이다. 어린이는 정치인의 친근함을 증명하는 소품이 아니다.
하정우 후보의 ‘악수 뒤 손 털기’ 논란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4월29일 부산 구포시장에서 포착된 이 장면에 대해 후보 측은 무의식적 동작이었다고 해명했다. 그 해명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유권자와 악수한 직후 손을 터는 듯한 모습이 논란이 됐다는 사실 자체가 질문을 남긴다.
후보자는 시장에서 누구를 만난 것인가. 표를 가진 시민인가, 불편한 접촉 대상인가.
김문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따까리 하려면 공무원을 해야지” 발언은 더 직접적이다.
김 의원은 5월2일 전남 순천시 낙안면 행사장에서 이 표현을 사용한 사실이 알려지며 공무원 비하 논란을 불렀다.
공무원은 국민 위에 군림해서도 안 되지만, 정치인의 하인도 아니다. 법과 절차에 따라 행정을 수행하는 공적 주체다.
오래된 오만의 문법
이런 장면들은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과거 노인 비하 발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노인 비하 논란은 고령층을 동등한 주권자로 보지 않는 정치권의 시선을 드러낸 사례로 오래 기억되고 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 사건도 ‘권력을 가진 자가 여성을 상대로 동등한 인격으로 보았는가’라는 질문을 남겼다.
여성은 권력관계 안에서 성적 대상으로 취급돼서는 안 된다. 이 상식이 무너지는 순간 권력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단계에 들어선다.
국회에서 증인을 대하는 태도도 다르지 않다.
국정조사는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국회에 불려 나온 증인은 정치권의 분풀이 대상이 아니다. 조작기소(공소취소) 의혹 국정조사 과정에서 증인으로 채택된 현직 검사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사실이 알려졌고, 4월28일 청문회에서는 박상웅 전 쌍방울 이사를 상대로 음주 여부를 묻는 장면까지 논란이 됐다.
증인의 진술을 검증하는 것과 증인을 망신 주는 것은 다르다.
같은 국민의 대표인 국민의힘 의원들을 설득의 상대가 아니라 제거와 조롱의 대상으로 대하는 태도 역시 국회를 토론의 장이 아니라 권력 서열을 확인하는 무대로 만든다.
겸손이 힘들면 정치 하지 말라
결국 문제의 뿌리는 선출된 권력의 서열 의식이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시장도, 도지사도 국민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권력은 국민에게서 잠시 위임받은 것이다. 그런데도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 인사들의 말과 행동에서는 국민보다 위에 있다는 듯한 의식이 반복된다.
국민은 법률 용어를 모르는 사람이고, 행정 단속을 피해 뒤에서 욕하는 사람이며, 어린이는 유세장의 소품이고, 공무원은 정치인의 ‘따까리’가 되며 여성은 희롱의 대상쯤으로 취급되곤 한다.
좌파 진영에서 영향력이 큰 김어준 씨의 방송 제목은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이다.
물론 방송 제목 하나로 정치권 전체를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의 권력 언어를 돌아보면 그 말은 묘하게 현실의 권력 감각과 겹쳐 보인다.
겸손은 공동체를 지탱해 온 미덕이다. 국민 앞에서 몸을 낮추고, 상대를 함부로 단정하지 않고, 권력을 가졌을수록 말을 조심하는 태도다.
정치는 국민을 ‘몇 표’로 계산하지만, 국민은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어머니이며,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다.
그런 국민을 모른다고 여기고, 뒤에서 욕한다고 전제하고, 유세장의 소품처럼 다루고, 공무원을 심부름꾼처럼 낮춰 부르고 여성을 희롱의 대상쯤으로 여기는 순간 정치는 섬김이 아니라 지배가 된다.
겸손은 힘들 수 있다. 그러나 국민 앞에서 겸손할 수 없다면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국민 위에 서려는 사람에게 국민의 대표 자격은 없다.
“겸손이 힘들면 정치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