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지붕 아래서 같은 밥을 먹고 자란 형제들조차, 늙은 부모를 추억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자식에겐 한없이 헌신적이고 따뜻한 어머니였으나, 다른 자식의 기억 속엔 차갑고 억압적인 양육자로 남아 있기도 하다. 누구의 기억이 진실일까.
둘 다 진실이다. 삶의 모순과 복잡성을 하나의 단정한 문장으로 재단할 수 없듯, 인간의 기억과 평가 역시 그토록 입체적이다. 하물며 수많은 인간의 피와 욕망, 시대의 질곡이 얽히고설킨 거대한 역사는 오죽하겠는가.
“생각이 다르면 틀린 것”이라는 폭력
그러나 ‘공영방송’ MBC의 앵커가 브라운관 너머로 던진 서늘한 클로징 멘트는 이 자연스러운 삶의 이치를 단칼에 베어버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위안부, 5·18, 박종철을 차례로 호명하며 그는 제단의 대제사장처럼 선고했다. “이런 사건에 대해 생각이 다르다면,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겁니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호흡처럼 누려야 할 민주주의 국가에서, 미디어가 앞장서 대중의 뇌 구조를 검열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역사의 빗장을 열고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저들이 강요하는 무결점의 제단 뒤에는 늘 서늘한 팩트와 씁쓸한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다.
상해 임시정부의 궤적을 보라.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으려는 숭고한 투쟁의 이면에는, 이른바 ‘레닌 자금’을 둘러싸고 동족의 가슴에 총구를 겨눈 공산주의자들과의 피비린내 나는 암투가 있었다.
숱한 파벌 갈등과 암살의 기록들을 우리는 어떻게 지워낼 것인가. 그들의 모든 노선이 완벽하게 옳았다면, 왜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광복을 쟁취하지 못한 채 강대국들의 체스판 위에서 수동적인 해방을 맞아야 했는지 뼈아프게 사색해야 마땅하다.
5·18 광주 역시 마찬가지다. 군사 정권의 야만적 폭력에 맞선 시민들의 피 흘림은 가슴 아픈 비극이다. 그러나 그 항쟁의 한복판에서 시위대가 몰고 돌진한 버스에 깔려 끔찍하게 순직한 4명의 경찰관이 있었고, 공공기관의 무기고를 털어 교전을 벌인 폭력의 실재가 존재했다. 무고하게 부서진 공권력의 죽음을 애도하고, 무장 항쟁이 지닌 폭력성의 한계를 짚어보는 일이 어째서 단죄받아야 할 ‘틀린 생각’이 되어야 하는가.
박종철의 안타까운 고문치사 사건 또한 그렇다. 국가 폭력이 저지른 살인은 어떤 명분으로도 변명할 수 없는 야만이다.
하지만 그 비극적 죽음이, 그가 과거 부산 미문화원 방화 농성을 지지하고, 급진적인 구로동맹파업과 청계피복노조 시위에 깊이 관여했던 강경한 운동권 학생이었다는 팩트까지 덮어주는 무조건적인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죽음이 억울하다고 해서, 그가 품었던 과격한 이념적 궤적까지 맹목적으로 추앙받고 신성시되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진리부’를 자처하는 한국의 공영방송
역사는 종교가 아니다. 완전무결한 성인(聖人)도, 흠결 없는 서사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직시하고, 흠집을 차갑게 논쟁하며 더 나은 교훈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지성이자 자유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미디어와 좌파 카르텔은 조지 오웰의 ‘1984’ 속 ‘진리부(Ministry of Truth)’를 자처하며, 획일화된 하나의 정답만을 윽박지르고 있다.
내가 진정으로 두려운 것은 이 오만한 앵커의 멘트 그 자체가 아니다. 이런 폭력적인 단정(斷定)을 ‘뉴스’라는 이름으로 매일 같이 소비하며 세뇌될 우리의 평범한 이웃들, 그리고 그 사회에서 자라날 아이들이 만들어갈 세상의 풍경이다.
질문이 범죄가 되고, 다른 해석이 이단으로 몰리는 교실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 스스로 사색하고 의심하는 힘을 잃어버린 채, 미디어가 떠먹여 주는 성역의 신화만을 앵무새처럼 외우며 자라날 것이다.
국가와 미디어가 허락한 생각의 테두리를 한 발짝이라도 벗어나면, 서로를 향해 “너는 틀렸다”며 거침없이 마녀사냥의 횃불을 드는 섬뜩한 파시즘의 맹신자들. 생각의 다양성이 거세된 채, 거대한 ‘하나의 진영’으로 사육된 군중들이 지배하는 사회에 과연 자유로운 미래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생각이 다르면 틀린 것”이라는 저 서늘하고 우아한 폭력 앞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이름을 빌려 인간의 이성을 목 조르는 가장 기괴한 디스토피아의 입구를 마주하고 있다. 질문을 잃어버린 사회의 끝은, 결국 거대한 침묵의 수용소일 뿐이다.

◆ 박주현 작가
작곡가, 음악감독, 칼럼니스트, 수필가. 페이스북에서 정치, 시사,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해 수많은 이의 공감을 얻고 있다. 에세이집 ‘폭풍의 바다를 건너다’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