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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대립의 대안모델로 홍익주의를 고민해 본다.
글쓴이 : 대연림
작성일 : 25-12-01 00:01
조회수 : 79

1.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한계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본능이다. 자본주의는 이러한 본능을 긍정한다. 그래서 경쟁과 혁신을 통한 개인의 이익 추구를 적극 권장한다. 개인이 이익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에서 혁신이 일어나고 경제가 발전을 한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방식을 배고픈 사람을 배부르게, 가난한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었다. 인류가 빈곤을 해결하고 오늘날의 풍요를 누리는 데 있어 자본주의 만큼 효과적인 시스템은 없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는 한계가 있다. 처칠은 "자본주의의 결함은 축복을 모든 사람이 골고루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처칠의 지적은 정확했다. 경쟁과 혁신을 통한 사익추구는 필연적으로 경쟁에 패배한 열패자를 낳는다. 이 과정에서 빈부격차가 심해진다. 또한 무한경쟁으로 인한 피로감과 소외감을 피할 수가 없다. 경쟁에 패배한 열패자들은 소외감과 피해의식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한계를 비판하며 등장한 것이 공산주의다.

공산주의는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을 절대악과 절대선으로 설정한다.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하고 노동자는 착취를 당한다. 착취당하는 절대선 노동자는 자신을 착취하는 절대악 자본가를 타도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서사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공산혁명의 서사는 소외감과 피해의식, 절망감에 시달리는 자본주의의 열패자들이 원하는 서사이기도 했다. 절대선인 노동자와 절대악인 자본가와의 싸움인 만큼 폭력, 거짓, 선동 등이 정당화 된다. 노동자는 절대선이니까!. 공산주의는 체제전복을 기본 문법으로 하기 때문에 폭력은 필연적이다. 이렇게 해서 공산혁명이 성공하면 노동자들의 당인 공산당이 모든 권력을 쥔다. 공산주의는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이를 국가가 소유한다. 그리고 국가가 경제를 계획하고 분배한다. 분배의 원칙은 평등이다. 즉 필요에 따라 분배하고 경제활동의 목표가 이윤추구가 아닌 공공의 복지다. 이를 담당하는 것은 일당독재의 공산당이다.

그러나 공산주의 역시 한계가 있다. 처칠은 "공산주의의 결함은 빈곤을 모든 사람이 골고루 나누어 갖는 것이다." 라고 했다. 그의 지적은 이번에도 정확했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다. 그러한 본능을 부정하는 것이 공산주의다. 성공할 수가 없다. 공산주의 체제는 노동자들의 당인 공산당이 혁명을 통해 자본가를 타도하고 일당독재 체제를 수립한다. 그리고 공산당이 사유재산을 몰수하고 생산, 소비, 분배의 경제활동을 계획한다. 원칙은 평등이다. 문제는 공산당이 경제활동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공산당을 견제할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견제할 세력이 없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집단은 필연적으로 부패할 수 밖에 없다.

부패 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공산주의는 인간의 이기적 본능을 부정한다. 본능이 부정된 체제는 성공할 수가 없다. 사유재산이 부정되기 때문에 개인은 열심히 일할 동기가 없다. 평등한 분배는 열심히 일해야 하는 절박성을 감소시킨다. 이는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결국 모두가 평등하게 빈곤해진다. 또한 국가가 경제의 생산, 소비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가는 시장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완벽하게 예측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로인한 비효율성, 혁신의 저해 등으로 공산주의 경제체제는 낙후될 수 밖에 없다. 정치는 독재와 부패로 썩어가고 경제는 비효율로 낙후되며 국민은 빈곤한 가난에 빠지는 것이 공산주의의 결말이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이처럼 한계를 가지고 있다. 자본주위의 모순은 공산주의를 불러오고, 공산주의의 실패는 다시 자본주의를 선택하게 한다. 이 과정 에서 폭력과 선동을 서슴치 않는 공산주의 세력의 준동과 이에 대한 자본주의 세력의 응전이 무한 반복된다.

이것이 산업혁명과 공산주의가 탄생한 이후의 현대사다. 이 무한반복을 멈추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한계를 보완할 대안모델이 필요하다. 필자는 그것이 환인과 환웅 그리고 단군의 가르침인 홍익인간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2. 홍익주의

홍익인간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의미다. 규원사화, 삼국유사에 의하면 환인이 환웅을 인간세상에 보낼때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만하다" 라고 하며 삼위 태백으로 환웅을 보낸다. 이곳이 지금의 만주와 한반도 그리고 서쪽으로는 발해와 난하 유역이다. 이곳에 환웅이 문명을 일으켰고 단군이 나라를 세웠으니 그것이 조선이다.

홍익인간의 '익'은 이익을 말한다. 즉 개인의 이익 추구를 긍정하는 것이다. '홍' 은 널리 이웃과 더불어 이익을 공유하라는 것이다. 홍익인간은 사익과 공익의 조화를 도모하는 사상이다. 하늘의 최고신인 환인은 인간세상을 다스리는 대원칙을 홍익인간이라고 한 것이다.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추구할 수 밖에 없다. 이를 긍정할 때 사회가 발전한다. 이점에서 개인의 이익 추구를 부정한 공산주의의 한계를 보완한다. 그러나 이익 추구 허용에 제한을 두지 않는 다면 과도한 경쟁이 벌어져 빈부격차, 인간소외, 물질을 인간보다 앞세우는 주객전도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자본주의의 한계다. 따라서 공익과 조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 홍익인간의 '홍'이 바로 이것이다.

홍익인간은 단군조선의 건국이념이었다. 단군조선은 홍익인간이라는 대원칙에 따라 통치를 했다. 이때문에 산해경은 조선을 군자의 나라라고 칭송했고 신이경 역시 동방의 사람들에 대해 경애를 담은 평가를 내렸다.

군자국이 그 북쪽에 있다. 그 사람들은 의관을 갖추고 칼을 차고 있으며 짐승을 잡아 먹는다. 두 마리의 무늬 호랑이를 부려 곁에 두고 있으며 그 사람들은 사양하기를 좋아하여 다투지 않는다.
- 산해경 -

동쪽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데 남자들은 모두 붉은 옷에 흰 띠를 두르고 검은 관을 쓰며 여자들은 모두 빛깔 고운 옷을 입는다. 남녀의 아름다운 자태가 사랑스럽기는 하지만 항상 공손하게 앉아 서로를 범하지 않고 칭찬하며 헐뜯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어려움에 빠진 것을 보면 자기 목숨을 던지면서 그를 구하니 이를 선이라 한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배시시 웃기만 하니 언뜻 그들을 보면 마치 바보와 같다.
- 신이경 -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 라는 홍익인간 사상은 개인의 이익 추구를 긍정하되 그것이 공익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제한을 걸어두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사익 추구만을 중요하게 생각한 자본주의와 폭력적인 방식으로 혁명을 일으켜 사익추구를 억누르고 공익만을 말한 공산주의의 한계를 모두 보완할 수 있다.

3. 심대윤의 삼리사상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을 구체화 한 것이 심대윤의 삼리사상이다. 심대윤은 19세기 조선의 시스템이 와해되고 서구의 물결이 흘러들어 오던 격변의 시기에 태어났다.(1806~1872) 심대윤은 개인의 이익추구를 부정한 것으로 여겼던 조선의 절대지배이념인 성리학에 반기를 드는 삼리사상을 펼쳤다.

심대윤은 인간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본성이라고 주장했다.

사람이 하늘과 땅의 기운을 받아서 본성이 되는데 이를 욕구라고 한다. 인간의 욕구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이익을 좋아하는 것과 명예를 좋아하는 것이다.

공자는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고 했지만 심대윤은 이익과 명예를 좋아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며 이를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심대윤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익을 좋아하는 호리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각자의 이익을 추구할 경우 서로 다투는 쟁리가 발생한다. 쟁리 즉 경쟁은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분열과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심대윤은 모두가 이익을 공유하는 동리를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개인의 이익을 가지고 다투는 쟁리는 이익을 함께 공유하는 동리만 같지 못하다. 이익은 혼자 차지하려고 다투면 그 이익을 상실하게 되고 함꼐 나누면 그 이익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동리를 추구할 수 있을까?심대윤이 제시한 방법은 충서다. 자기가 실현하기를 요망하는 욕구를 자기 혼자서 구현하지 않고 이웃과 함께 구현하는 '충'과 자기가 경험을 통해서 원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을 남에게 전가하여 요구하지 않는 '서' 이 두 가지 방법이 동리를 이루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덕을 베푸는 것을 좋아하고 해를 끼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데 지혜가 가리어 밝음이 비치질 않기 때문에 항상 혈기의 사욕에 따라 움직이고 돌이켜 생각할 줄 모른다.
그래서 오직 자신의 이해만 따지고 남의 이해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오직 자기의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만을 믿고 남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헤아리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의 사리만을 취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지 못하는 것이다.
충서의 도란 자기의 마음으로 남의 마음을 헤아리고 자기의 감정으로 남의 감정을 헤아리는 것이다....내 마음에 좋고 즐거운 것이 있으면 사람과 나눌 것을 생각하고 내 마음에 걱정스럽고 고통스럽게 여겨지는 부분은 다른 사람도 동일할 것이니 어떻게 하면 구제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은 그다지 별 차이가 없다. 저 사람 마음이나 내 마음이나 동일하다.....남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처럼 하고 남을 위해 일을 도모하기를 나를 위해 일을 하는 것처럼 하는 것 이것을 충서라고 한다."
- 심대윤전집 1 -

충서의 도에 대한 설명에 뒤를 이어 심대윤은 동리의 방법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익이라고 하는 것은 남에게 이로우면 나에게는 해롭고 나에게 이로우면 남에게는 해로워서 양쪽이 다 좋을 수가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만 이익을 함께 나누는 동리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인가.
나와 남이 모두 이로운 일이 있으면 빨리하고 나에게 이로운데 남에게 해가 되지 않고 남에게 이로운데 나에게 해가 되지 않는 일은 빨리하고 나에게 이로움은 많은데 남에게 끼치는 피해는 적거나 남에게 이로움은 많은데 나에게 미치는 피해가 적은 경우는 그런 일도 역시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로운데 남에게는 몹시 해롭거나 남에게는 이로운데 나에게는 몹시 해로운 일은 할 수가 없다. 남과 나의 사이에서 저울질을 잘 하여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로 이익을 함께 나누는 동리의 지극히 공정한 도리이다."
- 심대윤 전집 1-

심대윤이 강조한 충서는 나의 마음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이 모두 이익을 볼 수 있거나 나만 이익을 보지만 다른 사람에게 해가 가지 않는 일은 적극적으로 해라. 반면 나에게 이로움은 많은데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남에게는 이로운데 나에게 해로운 일은 해서는 안된다. 이것이 동리다.

심대윤은 "사람은 누구나 천성적으로 이익을 좋아하고 명예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익과 명예는 그것을 자기가 독점하면 악이 되고 남들과 함께 공유하면 선이 된다." 라고 했다. 개인의 이익추구룰 긍정하지만 과도한 독점은 악이고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면 선이라고 주장했다. 이익을 독점하면 남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악이라고 규정하 것이다.

호리와 동리를 지나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최종적 목표는 복리다. 심대윤은 복리를 "천하만세의 백성들이 모두 함께 행복과 이익을 누리" 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정신적, 물질적으로 모두 풍요롭고 여유로운 사애가 복리인 것이다.

호리와 동리를 강조해 복리를 도모하고자 한 심대윤의 삼리사상은 홍익사상의 명맥을 이은 것이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하는 홍익주의를 국가 시스템의 원칙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좌우의 극심한 대립을 멈추고 분열의 시대를 막내리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홍익주의를 고민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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