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 국민의힘 의원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에서 국회 내 5·18 토론의 장을 마련한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에게 책임을 물어 의정 활동을 1년간 정지시키는 징계 법안을 거론하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까지 직접 나서 이진숙 의원의 제명 또는 자격정지 필요성을 주장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5·18의 진상을 오랫동안 추적해 온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진숙 의원이 마련한 토론의 장은 시작에 불과하다. 5·18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2년간 감옥까지 다녀온 지만원 박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오히려 이제야 제대로 된 토론의 문이 열렸다고 할 수도 있다.
필자는 2019년 문재인 정부가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조사관을 공개 모집했을 때, 그동안 5·18 진상규명에 진력해 온 동지들과 함께 나름의 소명감을 가지고 응모했다.
그러나 필자를 비롯한 동지들은 모두 낙방했다. 반면 5·18의 북한군 관여설을 지속적으로 부인해 온 인사들과 가까운 인물들이 조사관으로 참여하게 된 것을 보면서, 과연 이 조사가 진정한 의미의 성역 없는 진상규명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2017년 탄핵 국면 초기만 하더라도 필자는 5·18 문제에 문외한이었다. 그러던 중 당시 20사단 연대장으로 계엄군에 편성되어 현장을 경험한 육사총구국동지회장의 생생한 경험담을 듣게 되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자료를 추적했다.
5·18 당시 한국은행 지하 금고를 보존하라는 특명을 받았던 중대장, 20사단 중대장을 맡았던 육사 후배, 탈북민 심사를 담당하며 14명의 위장 탈북 간첩 혐의자를 색출해 냈던 국정원 후배, 그리고 애국심을 가진 선후배들이 며칠에 한 번씩 만나 자료를 나누고 의문점을 확인했다.
파고들수록 의문은 쌓여갔다.
열정이 넘치는 동지들은 40여 차례 광주를 오가며 광주 시내 지하 기념관 오석에 새겨진 4,286명의 유공자 명단을 확인했다. 영광 백수해안도로 일대의 간첩 침투 루트도 수 차례 답사했다.
여전사 이여진은 3년에 걸쳐 가짜 유공자를 색출하는 지난한 작업을 마다하지 않았다. 중대장 최종원 대위와 특공대장 김덕수 대위는 20사단 지휘용 지프차 14대가 탈취당한 현장은 물론, 이어진 아시아자동차 공장의 장갑차 탈취 현장, 전남도 내 무기고 실태, 광주교도소 습격 사건 현장까지 직접 찾아다니며 지역 주민들과 접촉하고 자료를 채증했다.
좌파가 불러들인 독일 기자 힌츠페터가 촬영한 사진들도 중요한 검토 자료였다.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장갑차를 운전하는 사람들, 판초우의를 둘러쓰고 총을 거꾸로 든 병사들, 전남도청을 점령한 낯선 사람들의 모습.
당시 윤장현 광주시장은 이들을 찾아 포상하기 위해 6개월 동안 사진을 공개했지만, 정작 사진 속 당사자라고 신고한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도 현장에서 확인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를 지낸 송선태가 진상규명조사위원장을 맡은 것부터 이해충돌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더욱이 4년여에 걸친 조사에 약 500억 원의 국민 세금이 투입됐음에도, 우리가 제기해 온 핵심 의혹들이 충분히 해소됐다고 보기 어려웠다.
실제로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2024년 종합보고서를 내고 활동을 마쳤지만, 그 결과를 놓고도 여러 평가와 논란이 이어졌다.
필자와 동지들이 수년간 수집한 자료와 증언을 종합하면, 5·18에 대해서는 지금까지의 공식 설명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의문이 적지 않다. 북한의 초등학교 교과서와 북한 매체에서 5·18을 어떻게 다루어 왔는지, 북한에서 5·18과 관련된 노래가 어떻게 유통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자료를 추적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심지어 5·18에 관한 허위사실 유포를 처벌하는 특별법까지 마련됐다. 현행 법률상 관련 조항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과연 역사에 대한 질문과 토론까지 법으로 막아야 하는 것인가.
우리 동지들은 20사단 지휘용 지프차 14대를 전문적인 훈련도 받지 않은 광주 시민들이 아무런 정보도 없이 5월21일 아침 일찍 탈취했다는 설명에 의문을 제기해 왔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도 수집했다.
이 차량들을 이용해 아시아자동차 공장을 급습하고 4대의 장갑차와 군용트럭, 60여 대의 버스 등을 빼앗은 뒤 전남 각지 44개소에 산재한 무기고에서 총기류를 하루 만에 탈취했다는 사실, 그리고 광주교도소가 여러 차례 공격받았다는 사실 역시 그 주체와 배후에 대해 보다 세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우리는 입을 모았다.
교도소 경비를 위해 5월21일 교체 투입된 3공수여단의 변길남 당시 대대장이 증언한 내용과 자료 역시 우리가 주목했던 부분이다. 당시 교전의 양상과 탄약 사용량 등을 놓고도 지금까지 여러 증언과 기록이 존재한다.
1990년 대법원 판결문에 등장하는 일부 내용과 당시 연고대생 관련 기록 역시 우리가 계속 확인해 온 자료 중 하나다. 이러한 자료들과 증언을 하나씩 대조하고 검증하는 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특히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 기획실장을 맡았던 송선태 등 9명이 5월6일부터 12일까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자유노트’에는 무장봉기 계획, 공동터미널, 공용시설, 무기고, 성당, 가톨릭농민회 등과 관련된 내용이 기록돼 있다.
이 모든 자료와 증언을 필자와 동지들은 당시 스카이데일리의 성대군 고문에게 제공했다. 담당 허겸 기자는 기사화하기 전에 최종 답사까지 거쳐 1년간 집중 취재했다.
이러한 점들을 밑거름 삼아 5·18을 둘러싼 북한군 개입 여부와 외부 세력 및 내응 세력의 역할 등에 대해, 다시 한번 성역 없는 토론을 통한 재검증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10여 년 동안 진실을 추적해 온 이유다.
나는 오히려 묻고 싶다. 왜 토론을 두려워하는가? 진실이라면 토론을 거쳐도 진실로 남는다. 사실이라면 검증을 거칠수록 더욱 분명해진다. 5·18을 성역으로 만들어 질문 자체를 금지하는 순간, 역사는 더 이상 역사가 아니라 신앙의 영역이 된다.
이진숙 의원 징계에 반대하는 것은 단순히 한 국회의원을 지키는 일이 아니다. 말할 자유, 질문할 자유, 토론할 자유를 지키는 일이다. 현 정권의 독주를 바라보며 속을 끓여 온 국민들에게 이제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국민저항권은 폭력으로 정치를 끝내는 것이 아니다.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서명과 투표, 언론과 토론을 통해 국민의 뜻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국민저항의 출발점이다.
이진숙 의원 징계 반대 서명운동에 10만 명이 서명했다면 100만 명이 서명할 수 있다. 100만 명이 뜻을 모으면 그보다 더 많은 국민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평화로운 국민의 힘은 결코 약하지 않다.
외부 세력이나 요행만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상대 측의 몰락만을 기대하거나 손을 놓고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것 또한 어리석다.
우리 스스로 행동해야 한다. ‘스스로 돕는 자를 하늘도 돕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자유는 누군가 대신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자유를 누리는 국민이 스스로 지켜야 한다.
사즉생의 각오로 당협위원장 직선제 카드를 들고 나온 장동혁 대표 역시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이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다고 본다. 5·18의 진실을 밝히는 데 백번 뜻을 같이할 것이다.
우리 모두 이진숙이 되자. 우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서명으로써 국민저항권을 행사하자. 그 첫 번째 관문은 이진숙 지키기다.

◆ 정성홍
한미일보 회장
前 스카이데일리 민간5·18진상규명조사위원장
前 국가정보원 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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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냐 개혁이냐
혁명이란 단어와 개혁이란 단어를 그 객체를 정치사회적 구조에만 한정하고 판단한다면 개혁의 경우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의 대화와 타협에 의해 쟁의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기에 양측의 극단적인 의견 대립도 드물고 폭력과 유혈사태가 생길 가능성 역시 낮아진다.
역사적으로 보면 근대의 영국이나 일본이 그러한 경우라 할수 있다.
혁명은 이야기가 다르다. 혁명이란 “지배자들이 기득권을 포기하기를 거절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피지배자들을 억압할 때에 피지배자들이 폭력등 강제적인 수단을 사용하여 내 쫓고 지배자들이 독점하고 있던 기득권을 빼앗아 재분배하는 급진적인 권력의 교체와 사회구조의 재편성”을 말하는 것이며 여기에는 폭력이 필수적인 수단이었기에 항상 유혈사태가 따랐었다.
뿐만 아니라 개혁은 이미 확립되어있는 법질서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합법적인 것이라 할 수 있고 혁명은 기존 법 질서를 어기면서 일어나는 것이기에 개혁과 혁명은 그 과정에서 극명한 대조를 이루게 된다. 이 경우 정부에 의한 이 번의 6.3 선거에서 선거부정이라는 위법행위를 제쳐 놓는다면 형식 논리상으로 당선자들은 합법적인 당선자들이고 이에 항의하여 시위를 일으킨 시위대는 불법적인 난동 세력이 된다.
그러나 기득권자들이 자기들이 저지른 선거부정이라는 불법적인 행위를 시정하기를 거부하고 이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국민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공권력을 과도하게 사용하여 이것을 단속하고 억압할 뿐 아니라 국민들이 이러한 공권력 남용에 대해 항의를 하거나 권력자들의 시책에 다른 의견을 갖는 것 행위 자체를 불법화하고 그러한 억압정책이 기득권자들과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보호 내지는 방조하는 하는 데까지 미치게 되면 이러한 악성 불평등은 결국 전 국민적인 불만을 낳게 된다.
이러한 전 국민적인 불만이 계속 누적되다 보면 고압솥이 폭발하듯 국민들이 더 이상 법에 문제의 해결을 맡기지 않고 스스로의 손으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봉기를 하게 된다.
즉 법이 정의구현의 수단으로서 기능을 다하지 못 한다고 국민들이 판단하게 되면 국민들은 기득권자들이 불법적이라고 부르는 “봉기”를 하게 되고 이것을 기득권자들이 “공권력”이라고 부르는 폭력으로 진압하려들면 국민들 역시 자위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하여 이것에 맞서게 된다.
이러한 충돌의 과정에서 기득권자들에 의해 불법적이라고 분류되는 “국민들의 폭력”에 기득권자들을 지켜주는 공권력이 굴복하게 되면 기득권자들의 권력은 무너지고 사회구조가 완전히 뒤집어지는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혁명에 성공하려면 반드시 갖춰야 하는 것이 있다.
개혁은 강자가 약자의 반발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혹은 좋은 마음으로 못 가진 자들에게 약간의 양보와 분배를 허락하는 것이지만 혁명은 전혀 다르다.
혁명은 가난하고 못 배우고 힘도 없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다 갖춘 기득권자들을 상대로 싸워서 이들을 몰아내고 이들의 손에 있는 권력과 사회적 특권을 빼앗이 이를 재분배 하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혁명이란 힘없는 자가 힘센 자와 싸운다는데서 개혁과는 완전 반대로 보아도 될 것이다.
그 것은 개혁의 주체는 기득권자인데 반해 혁명은 그 주체가 비 기득권자, 혹은 피 지배자이기 때문이다.
그 혁명의 과정의 가장 두드러진 모습은 아주 오래 전에 나왔던 영화 “자랑과 정렬”에 나온다.
당대 최 신식 무기로 무장한 프랑스의 나폴레옹의 군대와 그에 붙어 부역하는 스페인의 기득권자들로 구성된 매국노 집단의 군대가 합세해서 무자비하게 퍼부어 대는 포탄과 총탄에 맞서서 손에 든 것이라고는 삽과 괭이등 농기구 밖에 없는 무식한 시골 농군들이 무수히 쓰러져 가면서 덤벼들어 마침내 기득권자들을 몰아내고 수도 아빌라 성을 탈환하고 나폴레옹 군을 몰아내는데 성공하는 장면은 혁명을 일으키는 소위 혁명투사가 되려면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극명하게 설명해 준다.
아래의 링크로 가시면 영화 "Pride and Passion - 자랑과 정렬" 에서 성을 깨부수는데 필요한 거대구경의 대포 하나 외에는 거의 맨손이나 다름없는 농민군이 아빌라성을 지키고 있는 중무장을 한 정부군과 맞서 싸우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실 수 있실 것이다.
두번째 링크는 이 영화의 타이틀 씬인데 여기서 그 무거운 거대구경의 대포를 운반하는 일을 돕느라 한 손에 아이를 안은 여인이 다른 한손으로 밧줄을 잡고 끄는 장면을 그린 삽화는 정말 눈물이 쑤욱 솟아나게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s9vPWDJkh0
https://www.youtube.com/watch?v=fR6ZeofsFFU
혁명투사가 되려면 어떠한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가는 빨갱이들의 태양인 가짜 김일성 김성주가 잘 말해 주었다.
김성주는 혁명투사로서 인정받을수 있는 조건으로 다섯가지를 갖추라고 했다고 한다.
그 다섯가지는 모두 다섯가지 다른 과정으로 죽을 각오로 투쟁하라는 것인데 다섯가지를 다 듣고 보니 중복되는 게 있어 셋으로 줄여 말한다.
그것은 “굶어죽고”, “얼어죽고”, “맞아죽고” 하는 이 세가지다. 혁명투쟁을 하는 도중 기득권자들의 개들에게 쫓기면서 제대로 몸을 덮지도 못하고 한데서 떨면서 자야하고 끼니도 못 얻어먹어 배 곯아야 하고 그러다가 잡히기라도 하면 악랄한 고문기술자에게 인간이 감내하기 어려운 지독한 고문에 시달려야하고 그러다 보면 투쟁 도중에 죽거나 病身이 되는 일이 허다할 것이다.
재미 있는 것은 종북들이 민족의 원수요 친일의 상징으로 여기는 이승만 박사는 사실은 일경에 붙들려 고문을 하도 많이 받아 그 후유증으로 죽을 때까지 안면경련 증세로 시달렸으나 정작 종북 자기들의 태양 김성주는 아무런 그런 고문이나 굶주림과 추위로 고통받는 극단적인 투쟁경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어서 물러난 이후 한국은 완전히 무정부 상태가 되었고 혼란 속에 국가의 모든 인프라가 사실상 마비되어 있는 모양세다.
그 때부터 국론이 완전히 둘로 갈라져서 좌우의 세 대결이 아직까지 계속되어오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굶어죽고 얼어죽고 맞아죽어도 좋다는 이 세가지 각오를 가진 사람들은 그러한 각오를 가지라고 외친 김성주를 태양으로 모시는 종북집단이 아니라 그동안 病身처럼 잠잠히 있던 애국시민들이라는 웃기는 사실이 들어났다는 것이다.
내가 김정은의 입장이라면 북한이 남한을 접수했을 때 종북과 태극기집단 중 어느 쪽을 더 쓸모있는 집단으로 여길 것인가 신중히 생각을 할 것이다.
어릴 적부터 밤마다 촛불이나 들고 술판이나 벌리다가 낮이면 여관에서 남녀가 한 방에서 같이 딩굴면서 뗏십이나 하고 게으름이나 피우던 이런 밥버러지나 다름없는 족속들인 종북들에게 무엇을 시킬수 있단 말인가?
그런 이유에서 나 같으면 일단 남한의 종북집단들은 수용소로 끌어다가 모두 죽여버리는 일부터 할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인 분단으로 괴리되어온 남북을 문화적 사상적으로 재 봉합을 하고, 태극기들고 투쟁하던 남한의 애국세력 인사들은 사상적인 재교육을 시켜서 그간의 적대관계로 국력이 소모되는 바람에 지연되어온 경제건설을 하는데 종사하는 일에 투입할 것이다
법리적으로 해석하면 박근혜, 윤석렬 두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당연히 각하나 기각이 되었어야 마땅했지만 개조까튼 헌재 나부랭이들에 의해 인용이 되었으며 사실상 범죄조직인 이재명 일당의 손에 한국의 정부가 넘어가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은 해방후 이제까지 모든 국민이 자유민주주의를 누리는 서구적인 사회로 점진적으로 변해가던 개혁의 과정은 완전히 정지되었고 180도 돌이켜서 그 반대로 가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자유 민주주의 사회로의 개혁으로 가는 길은 이재명 일당의 등장으로 완전히 막히고 끊어져서 앞으로는 더 이상의 전진이 불가능해 졌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우리가 가야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위한 개혁 길은 끊어졌고 우리들 앞에는 곳곳에 맹수와 산적들이 매복해 있고 울퉁 불퉁 자갈과 진흙으로 뒤덮인 가파른 오르막 비탈 뿐이지만 자신을 완전히 내 던지는 희생정신과 숱한 땀과 피흘림이 요구되는 이 혁명의 길 외에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는 모든 것을 오래 전에 죽어 완전히 썩어 문드러져 해골바가지만 남은 저 한심한 법이란 것에다가 맡겨 놓고 기다려야 할 것인가?
광주시민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1980년 5•18이 피로 얼룩진 원인과 진상을 먼저 밝혀야 한다. 광주시민들이 민주화를 위해 일으킨 비폭력 시위가 북한 특수공작원의 가담으로 예비군용 무기나 군용장갑차 및 군용차량 탈취에 그치지 않고 전남도청을 무장 점거하고 광주교도소까지 습격한 폭동으로 바뀐 경위에 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광주 5•18이 폭동으로 번진 부분에 대한 북한 개입의 진상이 밝혀지면 광주시민들은 폭동의 굴레를 벗고 1919년(기미년) 3•1독립만세운동처럼 비폭력 저항한 부분만 광주시민들의 몫으로 남을 것이므로 자연히 광주시민들의 명예도 회복될 것이다. 우리 헌법상 국토의 일부를 장악하고 국헌을 문란케하는 반국가세력의 수괴인 김일성의 지시를 받고 광주에서 남한인민을 해방시키려고 폭동을 일으켰다가 죽은 애국열사로 북한에서 가묘까지 만들어서 추모하는(5•18에 가담한 북한공작원의 가묘는 김대중 정부 때 대북 밀사로 파견되어 북한에서 직접 목격한 것을 윤석열 정부 출범 후에 공개한 김경재 전 자유총연맹 총재의 증언 참조) 공작원의 실체와 광주 5•18의 진상은 묻어두고 일단 5•18을 헌법전문에 넣겠다면서도 정작 국가의 기본법 개정에 걸맞는 공청회조차 열지않은 채 얼렁뚱땅 만든 개헌안을 은밀하게 6•3 지방선거 투표에 끼워넣으려했던 이재명과 더불어민주당의 행태가 현행 헌법전문에서 천명한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이나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 사명은 물론 자율을 바탕으로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