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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조선판 네포키즈’ 5·18유공자 자녀들
  • 이신우 前 문화일보 논설고문
  • 등록 2025-09-14 18: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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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포키즈(Nepokids)’는 최근 네팔의 젊은 층, 특히 Z세대 사이에 저항의 표상으로 떠오른 용어다. Nepokids는 영어 nepotism(족벌주의)과 kids(자녀들)를 합성해 만든 단어로, 부모나 가족의 권력과 금력에 힘입어 일반 대중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풍요와 출세의 기회를 향유하는 자녀들을 지칭한다. 


네팔 사회는 오랫동안 사회 불평등, 부패, 엘리트 계층의 권력 세습 및 과도한 특권 등에 대한 불만이 누적돼 왔다. 외신에 따르면 사회적 공정성의 훼손과 그에 대한 좌절감이 이번 반정부 시위의 초점이었다. 네포키즈의 SNS는 어차피 세상에 천룡인은 따로 있으니 일반 젊은이들은 그저 가재·붕어·개구리로 만족하라는 식의 노골적 과시 행각이 넘쳐났다고 한다. 결국 Z세대 사이에서 저들에 대한 분노가 임계점을 넘어 활화산처럼 폭발한 모양새다. 


네팔의 네포키즈 현상은 요즘에만 문제가 됐던 것이 아니다. 네팔의 정치 구조와 사회적 불평등의 역사와 깊이 연관돼 있다. 네팔은 2008년까지 왕정이었으며, 오랫동안 왕족·귀족·고위 관리층이 정치와 군사, 경제적 권력을 독점했다. 권력층 자녀들은 생애의 모든 과정에서 그런 특권을 향유, 상속하면서 일반 대중이 꿈꿀 수 없는 풍요와 사치를 누려왔다. 


이에 대한 사회적 반발이 1996년에서 약 10년간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내전으로 이어졌고, 드디어 새 헌법 제정으로 정치 구조가 새롭게 짜졌다. 하지만 네포키즈는 변하지 않았다. 새 권력층이 공산당이라는 가면을 뒤집어썼을 뿐 파행적 권력 구조는 온존했다. 그 과정에서 일반 젊은이들을 위한 능력 검증 사다리는 철저히 배제됐다. 


그런데 SNS가 보편화하면서 특권층 자녀들 즉 네포키즈의 추태가 대중에게 실시간으로 노출된 것이다. 이들이 명품 패션과 자동차, 호화판 별장을 SNS에 공개하면서 고통받는 젊은 대중에게 이글거리는 분노를 선사했다. SNS만 차단하면 대중의 눈을 가릴 수 있다고 권력층은 오판했고, 그 싸구려 판단력이 이번 사단을 일으킨 것이다. 


불행히도 네포키즈는 네팔에만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망정 특정 집단의 자녀가 시험이나 경쟁을 거치지 않고, 공정 선발이라는 합법적 가면을 쓴 채 커튼 뒤의 특혜를 통해 사회적 요직을 차지한다면 그 자체가 네포키즈라 할 수 있다. 한국에도 이런 네포키즈가 많다. 조국과 조민은 그저 마트 식품 코너에 놓인 맛보기일 뿐이다. 


5·18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발생한 민주화 시위다. 좌파 정부는 당시 희생된 시민과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을 기린다는 명목하에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그리고 시위 과정에서 사망·부상·공로가 인정된 사람들을 5·18 민주유공자로 등록, 유공자 자신은 물론 자녀들에게도 각종 특혜를 부여하고 있다. 


희생자·부상자 등에게 매월 지원금을 지급하는 외에 의료·취업·교육, 심지어 교통비 할인, 국립묘지 안장 등 다른 국가유공자와 유사한 혜택을 준다. 그러나 특혜 논란은 이런 금전적 혜택보다 유공자와 가족 특히 자녀에게까지 취업이나 각종 시험에 가산점을 부여하는 불공정에 초점이 맞춰진다. 


만일 특정 시험에서 합격선이 60점 이상이라고 치자. 유공자 자녀 중 누구라도 55점까지만 도달하면 10%를 가산, 5.5점의 특혜를 더해 60.5점으로 합격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 성적순이어도 마찬가지다. 실제 점수 60점을 획득했을 경우 자동적으로 66점으로 처리된다. 이런 특혜로 60점에서 65점까지의 수험생들이 날벼락을 맞을 수 있다. 


공무원 시험에서 과목 합산 400점 만점이라면, 5·18유공자 자녀는 최대 40점의 가산점을 얻게 된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단지 몇 점 차이로 불합격 통지를 받는 마당에 무려 40점이 웬 말인가. 이런 특혜가 중첩되면서 행정부 공무원이나 판검사들은 자연히 특정 지역, 특정 집단에 의해 지배당할 공산이 커진다. 신판 네포키즈에 의한 지배 구조가 완성되는 것이다. 


무릇 특권은 달콤하다. 특권은 중독성이 있다. 점점 더 많은 자들이 그 특권에 가담하고자 한다. 1980년 5·18 이후 무려 45년이 흘렀음에도 시위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한다. 유공자 명단이 계속 늘어나는 이유다. 하지만 유공자 명단은 비공개 처리된다. 국가 유공자라면 자랑스러워야 마땅함에도 그들은 늘 신원을 감추려 든다. 도대체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기에 정부와 법원은 “개인정보 보호와 2차 피해 방지”라는 말 같지 않은 이유로 명단 공개를 거부하는 것일까. 계급화 사회-그것이 창피한 일인 줄은 아는 모양이다. 


일제 강점기 무정부주의자 박열은 저들의 권력과 횡포에 맞서 저항하다 옥고를 치렀다. 박열의 저항 방식은 저들을 철저히 희화화하고 조롱하는 것이었다. 그가 요즘 한국의 5·18유공자 자녀들을 목격한다면 어떤 조롱의 감정을 느끼게 될까. 아마도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시를 끄적거렸을 것이다. 


“나는 개로소이다 / 하늘을 보고 달을 보고 짖는 나는 개로소이다 / ‘조선판 네포키즈’인 5·18유공자 자녀들 / 그들의 양다리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물을 맞으며 / 나도 힘차게 갈겨대는 / 나는 개로소이다.”


이신우 前 문화일보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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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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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hysung2025-09-15 02:35:46

    부정선거 조작질로 의석 훔친 도적떼가 창궐해 권력을 훔치고 국회를 점령해 대한민국 근간을 뒤 흔들며 파 엎고 있다.  국민 봉기를 통해 이들을 끌어 내려 심판 응징해야만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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