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제가 무너질 때, 민주주의의 기둥도 함께 흔들린다. [그래픽=한미일보]
한국의 법무부는 지금 감찰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정권의 이해를 보호하는 정치적 방패로 움직이고 있다. 민주주의는 독재와 다르게 이런 방식으로 조용하고도 서서히 무너진다.
법무부가 제출한 감찰 문서는 국가 문서의 형식을 갖췄지만 내용은 국가적 판단이 아니다. 검증되지 않은 전언을 사실로 둔갑시키고 정권에 유리한 결론을 미리 설정한 정치문서에 가깝다.
국가기관이 정권의 목적을 위해 사실을 배열하기 시작할 때, 자유민주주의는 가장 먼저 경고음을 낸다.
검찰이 재판부의 절차 편향 문제를 제기하며 기피신청을 낸 것은 사법이 스스로 균형을 잡으려는 정상적 절차 중 하나다. 재판부도 이를 검토하겠다고 받아들였다. 일부 언론들이 ‘퇴장’이라는 자극적인 언어로 검찰의 무례함을 비판하려 했지만 사실은 재판이 종결된 상황에서 법정을 떠난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직후 대통령이 “담당 검사 감찰”을 지시하면서 상황은 단숨에 변질됐다. 대통령의 지시는 단순한 행정적 조치가 아니라 사법 절차의 흐름 자체를 향한 권력의 신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강요죄 적용 가능성’이라는 논란이 터져 나왔다. ‘대통령이 사법적 절차 또는 개별 사건에 대한 구체적 지시를 내릴 권한이 있는가’라는 법률적 논쟁과 함께 ‘자신이 피의자로 있는 사건에 대한 사법적 판단과 밀접한 사안을 두고 대통령이 직접 지시를 내렸다’는 정당성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난 일이다. 법무부는 이 지시를 지체 없이 집행했고, 감찰 보고서는 정권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내용만을 담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감찰이 사실 확인 과정이 아닌 정권 서사를 정당화하는 수단처럼 활용됐다는 지적이다.
국가기관이 사실을 찾기보다 사실을 ‘선택’하는 방식을 반복하면,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은 흔들린다. 역사는 이미 그 과정을 여러 번 증명했다.
위험한 징후는 또 있다.
이화영의 진술이 흔들리기 시작한 시점은 2022년 12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던 정성호(현 법무부 장관)가 특별면회를 했던 때다. 그 이후 진술이 뒤집히기 시작하면서 여러 의혹을 낳은 바 있다. 바로 그 사람이 이 사건 감찰을 지휘하는 구조는 단순한 부적절을 넘어선다.
워싱턴포스트가 반복해 경고해 온 문장, “민주주의는 견제가 사라질 때 죽는다”고 한 이유가 바로 이런 장면들 때문이다.
정권이 지금 보여주는 행태는 우려를 넘어 위험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자신에게 불리한 절차 문제 제기는 감찰로 눌러버리고, 자신에게 유리한 번복 진술은 재심 가능성의 근거로 띄우며, 국가기관은 이 서사를 국가 판단인 양 포장하기 때문이다. 이는 공안정국의 전조처럼 보이지만, 더 위험한 점은 자유민주주의의 외형을 유지한 채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독재처럼 갑자기 죽지 않는다.
한 장의 문서, 한 줄의 발표, 한 번의 지시에서 조금씩 무너지고, 어느 순간 국가의 핵심 기관이 정권의 방패로 자리 잡았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지금 한국이 서 있는 지점이 정확히 그렇다.
이제 이 사건은 이화영 개인의 진술 문제를 넘어서고 있다.
정권이 사법체계 위에 서려는 시도로 보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지시와 법무부의 즉각적인 집행, 재판부를 둘러싼 공방이 하나의 축을 이루는 이 삼각 구도는 한국 자유민주주의가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어두운 미래를 드러낸다.
독재를 향하는 권력은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변한다. 처음에는 관여하고, 그다음에는 통제하며, 마지막에는 지배한다. 한국은 이제 통제의 문턱을 넘어 지배의 단계 초입에 와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검찰에 대한 감찰이 아니라, 권력 그 자체에 대한 국민의 감찰이다.
이 순간 국민이 침묵하면, 자유민주주의는 속절없이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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