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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진 칼럼] 한동훈 사과, 장기적으로 실패 가깝다
  • 심규진 교수
  • 등록 2026-01-18 15: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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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직 지켜보자”를 “이 사람은 아니다”로 바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당대표. [사진=연합뉴스]

정치에서 사과는 도덕적 제스처가 아니라 명백한 전략 행위다. 

 

특히 위기 국면에서의 사과는 ‘잘못을 인정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과가 정치적 손실을 얼마나 줄이고 회복 가능성을 얼마나 남기느냐의 문제로 평가된다. 이 점에서 최근 한동훈의 사과는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정치적 득실 계산에서 실패한 사례에 가깝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따르면, 사과는 단기적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중장기적 신뢰 회복을 목표로 설계돼야 한다. 즉, 즉각적인 지지층 결집보다 중립층과 관망층의 판단을 유예시키는 것이 핵심 성과 지표다. 

 

장기적으로 손실 고정 효과

 

그러나 이번 사과는 이 기준에서 정치적 ‘득’을 만들지 못했고, 오히려 손실을 고정하는 효과를 낳았다.

 

정치적 득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은 제한적이다. 강성 지지층 내부에서는 ‘사과를 했다’는 형식 자체가 심리적 방어 근거로 작동한다. 

 

이는 단기적으로 지지층 이탈을 일부 막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이 효과는 이미 결집된 집단 내부에서만 유효하며, 새로운 지지 확장이나 중립층 설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정치적 득이라고 부르기에는 범위가 지나치게 좁다.

 

반면 정치적 손실은 구조적이고 광범위하다. 첫째, 사과의 핵심 구성 요건인 책임의 명확화가 결여되면서 중립층에게 판단 유예의 명분을 제공하지 못했다. 

 

이는 “아직 지켜보자”를 “이 사람은 아니다”로 바꾸는 계기가 된다. 정치에서 중립층의 부정적 판정은 가장 회복하기 어려운 손실이다.

 

둘째, 사과문 내부에서 동시에 제기된 정치적 주장과 공방은 메시지의 일관성을 훼손했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서 사과는 논점 축소의 기능을 가져야 하지만, 이번 사과는 오히려 논점을 확장시켰다. 

 

그 결과 사과는 방어막이 되지 못하고, 이후 모든 보도와 논평에서 반박의 인용문으로 재활용될 위험을 안게 됐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정치적 비용을 누적시키는 손실이다.

 

“왜 이제 와서?” 의문만 증폭

 

셋째, 원내와 레거시 언론을 상대로 한 정치적 실익을 상실했다. 이들이 사과에서 기대하는 최소 조건은 관리 가능성이다. 즉, 이 인물을 안고 가도 국면이 정리될 수 있다는 신호다. 

 

그러나 이번 사과는 그 신호를 주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방어 동기를 약화시켰다. 이는 공개 비판이 아니라 조용한 거리두기라는 형태의 손실로 나타난다. 정치적으로 이 손실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가장 치명적이다.

 

넷째, 사과의 방식 자체가 향후 선택지를 줄였다. 위기 상황에서 사과는 실패하더라도 다음 수를 남겨야 한다. 그러나 이번 메시지는 사과와 투쟁을 동시에 시도하면서 어느 쪽에서도 설득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 결과 이후 추가 사과나 노선 전환이 나오더라도 “왜 이제 와서?”라는 반응을 피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이는 정치적 회복 경로를 스스로 좁힌 손실이다.

 

종합하면 이번 사과의 정치적 득실은 명확하다. 단기적으로는 강성 지지층의 심리적 방어를 돕는 소폭의 득이 있었을지 모르나, 중립층 판단 유예 실패, 원내와 레거시 방어 상실, 장기적 메시지 리스크 증폭이라는 중장기 손실이 훨씬 크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이는 사과 실패라기보다 정치적 손실을 관리하지 못한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정치에서 사과는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무엇을 얻기 위해 무엇을 감수할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다면, 사과는 위기를 넘기는 장치가 아니라 위기를 고정시키는 문장이 된다. 이번 사례는 그 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 심규진 교수

 

스페인IE대학교 디지털미디어학과 조교수. 전 국방부 정책자문위원과 전 여의도연구원 데이터랩 실장을 역임했으며 호주 멜버른 대학교 전임교수와 싱가포르 경영대학교 조교수로 근무했다. 저서에 ‘K-드라마 윤석열’ ‘하이퍼 젠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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