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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 한미칼럼] 편협한 정보기관 수장의 정세 인식
  • 김영 기자
  • 등록 2026-03-18 13:3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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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란은 임박한 위협이 아니었다”는 단순한 판단
  • “이스라엘 로비가 전쟁을 만들었다”는 음모적 설명
  • 중동 질서와 페트로달러 전략을 보지 못한 정보기관장의 시야

조 켄트 미국 국가대테러센터 국장. [AP=연합뉴스]  

미국 국가대테러센터(NCTC) 수장이었던 조 켄트가 사퇴하며 남긴 발언이 논란을 낳고 있다.

 

그의 설명은 간단하다. 

 

이란은 미국에 대한 ‘임박한 위협’이 아니었고, 이번 전쟁은 이스라엘과 미국 내 친이스라엘 로비의 압력 때문에 시작됐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내부자의 양심 고백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를 조금만 넓게 들여다보면 이 설명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다. 

 

문제는 그의 발언이 틀렸느냐보다, 세계 질서를 바라보는 정보당국 수장으로의 시야가 지나치게 좁다는 데 있다.

 

먼저 “이란은 임박한 위협이 아니었다”는 주장부터 보자. 

 

국가 안보 판단은 형법적 개념처럼 ‘지금 당장 공격할 의도가 있었는가’라는 기준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 핵 개발 능력, 미사일 사거리, 지역 세력 균형, 해상 교통로 통제 능력 등 다양한 전략 변수들이 함께 고려된다. 

 

특히 이란의 핵 프로그램은 이미 20년 넘게 중동 안보 질서를 뒤흔드는 핵심 변수였다.

 

이스라엘이 이를 ‘존재적 위협’으로 규정해 온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베냐민 네타냐후는 오랫동안 국제사회에서 이란 핵 프로그램이 중동의 전략 균형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이 문제는 최근에 갑자기 등장한 논쟁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과거 이라크와 시리아의 핵시설을 선제 타격했던 사례 역시 같은 전략 논리에서 나온 것이다. 

 

핵무장을 시도하는 적대 국가를 그대로 두지 않는다는 이른바 ‘베긴 독트린’은 이미 중동 안보 전략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따라서 ‘당장 공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위협이 아니라고 규정하는 것은 전략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판단이다. 핵 확산 문제는 본질적으로 장기적 전략 문제다. 위협은 항상 ‘임박한 공격’의 형태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두 번째 주장인 ‘이스라엘 로비 책임론’ 역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미국 정치에서 친이스라엘 로비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이스라엘공공정책위원회와 같은 조직은 오랫동안 의회와 행정부를 상대로 정책 로비 활동을 해 왔다.

 

그러나 로비의 존재가 곧바로 전쟁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군사 행동 결정은 대통령, 국가안보회의(NSC), 국방부, 정보기관, 의회가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구조 속에서 이루어진다. 

 

세계 최대 군사 강국이 외국 로비의 압력 하나 때문에 전쟁을 시작했다는 설명은 미국의 전략 의사결정 구조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해석이다.

 

더 중요한 것은 중동이라는 공간 자체의 전략적 의미다. 

 

중동은 단순한 지역 분쟁의 무대가 아니다. 세계 에너지 공급망과 국제 금융 질서가 교차하는 공간이다. 이 구조의 핵심에는 이른바 페트로달러 체제가 있다.

 

1970년대 이후 세계 석유 거래는 대부분 달러로 결제되어 왔다. 이 구조 덕분에 달러는 국제 금융 시스템의 중심 통화로 기능할 수 있었다. 석유를 사기 위해 달러가 필요하고,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 각국이 미국 금융 시스템에 편입되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워싱턴 정치권에는 거의 초당적인 공통 인식이 있다.

 

달러 패권이 무너지면 미국 패권도 무너진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미국은 이미 에너지 자급에 가까운 국가다. 원유와 LNG 생산량만 보면 중동 석유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여전히 중동 질서에 깊이 개입할까.

 

답은 석유 자체가 아니라 석유를 결제하는 통화에 있다. 

 

중동의 에너지 거래가 달러로 이루어지는 한 달러는 국제 금융 질서의 중심 통화로 유지된다. 중동을 둘러싼 전략 경쟁은 단순한 석유 전쟁이 아니라 통화 질서를 둘러싼 경쟁이기도 하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미국의 중동 정책은 언제나 오해될 수밖에 없다. 

 

전쟁은 로비 때문이라는 설명도, 위협이 임박하지 않았다는 판단도 결국 같은 오류에서 출발한다. 국제정치의 구조적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한 정치 서사로 바꿔버린 것이다.

 

국제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오류는 복잡한 전략 현실을 단순한 이야기로 환원하는 것이다. 

 

정보기관의 역할은 바로 그 단순화를 경계하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조 켄트의 발언은 미국의 전략을 폭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정보기관 책임자의 편협한 정세 인식을 드러낸 사례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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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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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mj2026-03-18 14:01:40

    칼럼 잘 읽었습니다.
    정확한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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