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민간 무인기 침투에 이례적으로 유감을 표하자, 비난을 일삼던 김여정은 김정은 위원장의 말을 빌려 대통령을 “솔직하고 대범한 사람”이라며 돌연 치켜세웠습니다. 이는 안보의 문법으로는 낯선 장면이며, 더 의아한 것은 북한의 그동안의 행위와 상반된 반응이었다.
사과가 남긴 전략적 공백
북한은 2014년 이후 10여 차례 우리 영공을 침범하고도 사과 한마디 없었다. 그럼에도 현 정부가 ‘개인 일탈’에 대해 고개를 숙인 것은 북한에게 “도발하면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낸 격이다. 특히 천안함 유족의 사과 요구에는 회의적이었던 대통령이 북측에는 열흘 만에 유감을 표한 점은 안보 원칙의 일관성을 훼손한다.
국가 지도자의 사과는 국제사회에서 ‘책임 인정’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민간 무인기 문제에 대해 정부가 유감을 표명한 순간, 북한은 이를 ‘남측의 주권 침해 시인’으로 간주하고 향후 북한이 국지적 도발 명분으로 활용될 수 있다.
억제력의 핵심은 정치적 사과가 아니라 상대의 오판을 막는 군사력에 있다. 이번 사과는 북한에게 질질 끌려가는 모양새의 반복이고 북한이 우리의 대응 의지를 과소평가하게 만드는 위험한 단초가 될 수 있다.
공산국의 칭찬은 상대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도구
대한민국을 '적대적 교전국''으로 천명했던 북한이 돌연 칭찬하는 순간, 우리는 그 의도를 의심해야 한다. 공산국의 외교적 칭찬은 상대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도구로 자주 활용된다. 북한의 긍정적 표현은 존중이 아니라, 한국 내부의 안보 감각을 흐리고 “대화로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 국론을 분열시키려는 인지전의 일환일 가능성이 크다.
공산주의 언어는 믿음의 아니라 검증의 대상이다. 북한의 전략은 변하지 않았고, 우리의 사과는 그들의 계산을 더욱 대담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솔직하고 대범하다"는 북한 화답에 우리는 "그 대범함으로 UN 안보리 결의를 준수하라"는 식으로 담론의 프레임을 즉각 전환하여 북한의 심리전 도구를 무력화해야 한다.
반복되는 화전양면전술
북한의 양면 전략은 변함이 없다. 1972년 7·4 공동성명부터 2018년 판문점 선언까지, 북한은 대화의 손짓과 군사적 위협을 동시에 구사해왔다. 그들에게 언어는 진실을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상대를 기만하는 장치다.
2024년 겨울, 김정은은 오랫동안 남북 관계의 최소한의 틀을 유지해온 ‘우리 민족끼리’라는 가면을 벗고 남북을 '두 국가론', '적대적 교전국'으로 선언했다. 이는 대한민국을 제1의 주적으로 명시함으로써, 향후 무력 충돌 시 ‘동족상잔’이라는 비난을 피하면서 핵 사용과 영토 평정의 명분을 확보하려는 계산된 강공 전략이다.
2026년 휴전선은 더이상 통일을 향한 임시 경계가 아니다. 북한은 군사분계선 일대에 장벽을 세우고 지뢰를 매설하며, 물리적 국경선을 만들고 있다. 한반도는 다시 ‘국가 대 국가’의 전선이 되었다.
김정은의 김여정을 앞세운 칭찬과 미소는 한미일 공조 체계에 균열을 내고, 한국 내부의 안보 논의를 흐트러뜨리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적대적 국가를 선언한 상대에게 건네는 사과는 강도에게 집 열쇠를 건네며 “오해였다”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안보는 선의나 유감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평화는 상대의 호의가 아니라 강한 힘과 호국 의지의 산물
평화를 앞세우다가 전쟁으로 이어진 사례는 너무도 많다. 1938년 뮌헨 협정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히틀러의 요구를 수용하며 평화를 기대했지만, 이는 독일의 침략 의지를 자극해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1950년 6·25 직전 북한은 '남북 총선거'와 '조만식 선생 체포 환전' 등 파격적인 위장 평화 공세를 펼쳤다. 이는 한국의 경계심을 늦추고 전쟁 책임을 전가하려는 치밀한 기만술이었으며, 뒤로는 소련의 지원을 받아 남침 준비를 끝마친 '폭풍 전야'의 상태였다.
상대가 감히 넘볼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질 때 비로소 평화가 유지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유화적 표현이 아니라, 북한의 전략을 정확히 읽어내는 냉정한 분석과 적의 도발 시 체제의 존립을 위협할 만큼의 억제력이다.
북한이 대한민국을 '적대적 교전국''으로 천명했으므로, 우리도 북한을 '불법 점령 집단'에서 국제법상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국가체'로 간주하여 국제사법재판소(ICJ) 등에 제소하는 전술을 구사해야 한다. 6·25 전범(戰犯) 문제, 납북자 문제, 무수한 군사분계선 침해 등을 국가 간 배상 문제로 전환하여 북한을 국제법적 틀 안에 가두고 경제적·외교적 압박을 극대화해야한다.
이제 다시 안보의 끈을 단단히 조여야 한다. 평화는 적을 이길 수 있는 강한 힘과 호국 의지로 지키는 자의 몫이다. 안일한 평화에 또 속는 안보 실패는 망국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안보 라인에 전한다.

◆ 박필규 위원
한미일보 편집위원
육군사관학교 40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