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일보’ 허겸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은 단순히 한 언론인의 인신 구속 여부를 가린 법적 절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대한민국 사법부가 법치주의의 최후 보루로서 기능하고 있음에 먼저 안도한다. 언론 보도와 불편한 표현을 빌미로 국가가 형사 권력을 동원해 인신 구속을 시도하는 것은 권력에 불편한 질문을 원천 봉쇄하여 사회 전체를 ‘침묵하는 거대한 동굴’로 만들려는 퇴행적 발상이다.
‘한미일보’ 편집인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공동체가 ‘자유를 수호하는 선진국’인지 아니면 ‘국가가 진실을 관리하는 후진국’인지, 불편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1. 질문의 깊이가 곧 그 공동체 자유의 크기
역사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탱해 온 핵심 동력은 권력의 심기를 거스르는 ‘불편한 질문’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에서 소크라테스가 청년들과 나누었던 문답법(Elenchus)은 당시 불편한 질문으로 기득권의 권위를 흔들었지만, 그것이 서구 지성사의 토대가 되었다.
불편한 질문을 막는 행위는 단순한 소통의 부재가 아니다. 이는 여론의 변비와 의사결정의 동맥경화를 초래하고, 집단지성을 마비시켜 국가라는 유기체를 서서히 뇌사 상태로 몰아넣는 치명적인 독소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오세아니아의 슬로건 중 하나는 “무지는 힘”이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 탄압 징후들은 그 불길한 소설적 상상이 현실로 투영되는 전조가 아닐지 우려된다.
과거 역사를 일방적으로 해석하고 통제함으로써 미래를 지배하려는 권력에게 시민의 의문과 의혹을 담은 질문은 제거해야 할 종양에 불과하다. 자유민주주의의 생명줄은 정부가 선포한 굴절된 정의가 아니라, 시민이 정부와 국가를 향해 던질 수 있는 질문의 깊이와 그 질문이 보호받는 정도에 달려 있다.
2. 역사의 편파적 해석과 독점은 자유 파산과 전체주의 진입로
17세기 언론 자유의 선구자인 ‘존 밀턴’은 ‘아레오파기티카’를 통해 “진실과 허위가 자유롭고 공개적인 들판에서 맞붙게 하라”고 역설했다. 진실은 스스로를 방어할 자생력이 있으며, 인간의 이성은 오류를 수정할 능력이 있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정부가 형사 권력을 개입시켜 한쪽의 입을 막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보편적 진실이 아니라 정부가 법으로 강요한 동물 ‘교리’로 전락한다.
역사는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끊임없는 재해석을 통해 숨 쉬는 유기체다. 인류 문명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천동설’이라는 당대 공식 진실에 도전했기에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었다. 만약 당시의 로마 교황청이 오늘날의 ‘역사 왜곡 처벌법’이나 ‘특별법’ 같은 논리로 질문을 원천 봉쇄했다면, 인류는 지금도 여전히 천동설의 어둠 속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특정 사건에 대해 국가가 단 하나의 ‘공식 서사’만을 허용하고 이견(異見)을 ‘허위사실 유포’로 범죄화하는 것은 ‘지적 전체주의’다.
진실은 법조문 뒤에 숨지 않는다. 오히려 진실은 혹독한 반론과 검증의 불길 속에서 단련될 때 비로소 그 정당성을 얻는다. 불편한 역사 질문을 법으로 묶으려는 시도는 역설적으로 그들이 수호하려는 진실이 논리적으로 얼마나 취약한지를 자인하는 꼴이다.
3. 검증의 회피가 부르는 자유체제 신뢰의 붕괴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 제도와 절차에 대한 불신이 발생했을 때, 건강한 민주주의는 ‘투명한 정보 공개’와 ‘성역 없는 토론’으로 답한다. 19세기 프랑스를 뒤흔든 드레퓌스 사건을 보라.
당시 프랑스 군부는 안보와 군의 명예를 내세워 진실을 은폐하고 비판자들을 탄압했다. 하지만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J'accuse)’는 외침은 국가가 독점한 진실이 얼마나 허약한 모래성인지를 폭로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제기되는 선거 절차나 정책 의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의혹을 제기하는 입에 ‘가짜 뉴스’라는 재갈을 물리고 검찰권을 동원하는 것은 당장의 소란을 잠재울 순 있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라나는 불신의 괴물을 키울 뿐이다. 불신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사회적 자본인 ‘신뢰’는 순식간에 증발하며, 이는 자유 체제의 붕괴로 이어진다.
진정으로 체제를 수호하고자 한다면 법으로 재갈을 물리고 비판자를 감옥으로 보낼 것이 아니라, 검증의 심판대 위로 명확하고 객관적인 증거를 가져와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4. 국가는 진실의 심판자 아닌 심판대 돼야
허겸 대표에 대한 영장 기각은 권위주의적 침묵을 강요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국가는 진실을 선포하는 ‘심판자’가 아니라, 다양한 의견이 검증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심판대’가 되어야 한다. 질문할 권리를 뺏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목숨줄을 끊는 행위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표현의 자유가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닌, 우리 문명을 지탱하는 근본 원리임을 재확인해야 한다. 질문이 멈춘 사회는 지적으로 파산하며, 비판을 거세하려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로 망한다.
우리는 질문할 권리를 사수하기 위해 연대해야 하며, 권력이 휘두르는 공포의 언어를 이성과 진실의 언어로 격파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 우리가 지켜내야 할 ‘정상적인 국가’의 모습이다.


◆ 박필규 위원
한미일보 편집위원
육군사관학교 40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