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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곤 칼럼] 가스등 아래의 부정선거: '가랑비'와 '에피타이저', 조작된 여론조사
  • 민병곤 정치다큐멘터리 작가
  • 등록 2026-04-14 19: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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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이미지 그래픽]

1938년 패트릭 해밀턴의 연극 '가스등(Gas Light)'. 남편 잭은 집안의 가스등을 일부러 어둡게 켜놓고도, 불이 어두워졌다고 말하는 아내 벨라에게 "네가 예민한 탓"이라며 핀잔을 준다. 반복되는 부정 속에서 아내는 결국 자신의 눈과 기억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스라이팅'의 기원이자, 인지 체계를 파괴하는 가장 잔인한 심리 조작법이다. 


그런데 이 치밀한 조작극이 최근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여론조사'라는 가면을 쓰고 재현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수치상의 오류가 아니다. 대중의 뇌리에 '가공된 현실'을 주입하여 주권자의 본능적 의구심을 거세하려는 고도의 마케팅 전술이다.


가랑비(보슬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


우리 속담에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조작된 여론조사가 무서운 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인간의 인지 구조는 반복되는 정보에 노출될 때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특정 후보가 압도적이라거나 특정 정책에 전국민이 찬성한다는 편향된 수치가 매주 쏟아지면, 시민들은 어느덧 '내 판단이 시대의 흐름과 동떨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자기 의심에 빠진다. 이는 연극 속 잭이 가스등 불빛을 조절하며 아내의 현실 감각을 마비시킨 수법과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대중의 집단지성을 마비시키는 '인지적 가스라이팅'이다.


본식(Main Dish)을 위한 정서적 길닦기, '에피타이저'


여론조사는 그 자체로 결과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음모를 위한 '정서적 예방접종' 역할을 수행한다. 본식인 선거 당일, 상식 밖의 결과가 도출되더라도 대중이 이를 '수용'하게 만드는 심리적 완충 지대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첫째, 결과 정당화의 도구가 된다. 투표함이 열리고 괴이한 숫자가 튀어나와도 '평소 여론조사에서도 그렇게 나오지 않았느냐'는 방어 논리가 이미 대중의 무의식에 깔리게 된다. 


둘째, 비판의 가능성을 무력화시킨다. 부정의 징후를 포착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를 '과학적 통계도 모르는 음모론자' 프레임에 가두고 사회적으로 고립화시킨다.


독수독과(毒樹毒果), 오염된 기관의 정보는 오염물일 뿐


우리는 이미 선관위의 사전선거 QR코드를 기억하고 있다. 유권자의 정치적 성향까지 가늠할 수 있는, 수천만명의 데이터베이스는 그 자체로 거대한 감시망이다. 매체 공표 의무가 있는 여론조사의 데이터는 소위 '안심전화번호'라는 이름으로 선관위로부터 여론조사업체에 제공되지만, 과연 그것이 누구를 위한 '안심'인지는 자명하다. 


독수독과, 부정선거의 원흉으로 주목받는 조직이 제공한 데이터를 기반한 조사? 누가 봐도 공정성은 요원하다. 이는 이미 정해진 결론로 치닫는 수치의 장난일 뿐이다.


가스등을 끄고 횃불을 들어야 할 때


우파 보수(保守)의 핵심 가치는 헌법 정신과 법치, 그리고 공정한 게임의 법칙을 사수하는 데 있다. 우리가 매주 마주하는 저 '숫자의 향연'이 우리를 서서히 젖게 만드는 가랑비는 아닌지, 혹은 거대한 조작극의 서막은 아닌지 서늘한 시선으로 감시해야 한다.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조작자의 목소리가 아닌, 객관적인 '실체'를 직시하는 것이다. 이제 가스등 아래서의 자기 의심을 멈추고, 조작의 어둠을 낱낱이 밝히는 서슬 퍼런 주권자의 눈을 회복해야 한다. 침묵하는 다수가 아닌, 깨어 있는 감시자가 될 때 비로소 민주주의의 붕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 민병곤 작가 


현) 정치다큐멘터리 작가 

현) 국민의힘 충남도당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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