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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천스님 호국칼럼] 길 잃은 시대, 그들이 그립습니다
  • 응천스님 대한불교호국종 총무원장
  • 등록 2026-04-14 17:3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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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성철스님, 한경직 목사, 김수환 추기경. [사진=연합뉴스]

21세기는 AI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전문 분야에 적용하던 것이 보편화되고 특수 분야의 노하우가 일반화되면서 사회발전이 눈부시다. 그런 반면 사회적 갈등과 분열은 극에 달하고 있다. 

 

역사는 증언한다. 과거 임진왜란 전야,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국방의 위기를 외면했던 당쟁은 곧 국난의 전조(前兆)였다. 이후 노론과 소론의 갈등, 구한말 개화와 척화의 대립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채 내부의 적만 섬멸하는 데 몰두하던 무능의 소치였다. 

 

학문적 결벽증과 정통성 논쟁은 국가 경영의 실효성을 마비시켰으며, 변화를 수용하려는 의지와 전통을 고수하려는 고집 사이의 분열은 결국 식민지 전락이라는 가혹한 결과를 초래했다.

 

임진왜란이라는 미증유의 고난을 겪고도 역사의 교훈을 망각한 채 진영의 논리에 매몰되는 공동체는, 언제든 예고된 재앙 앞에 다시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오늘날의 정치는 마치 타감물질(他感物質·주변 식물의 성장을 억제하거나 죽게 만드는 물질)을 내뿜는 숲과 같다. 서로를 향해 쏟아내는 적대적 언사와 혐오는 공동체의 성장을 가로막고 상대를 고사시키는 독소가 되고 있다. 

 

이러한 혼돈의 시대에 성직자는 돈과 권력의 쓰나미로부터 세상을 보호하는 ‘영혼의 방파제’여야 한다. 한데, 시대의 아픔에 책임지지 않고 제삼자처럼 관망하는 ‘여관방 손님처럼 무책임한 방관자’들이 늘어가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이에 우리는 시대를 밝힌 큰 어른들을 다시금 호출한다. 서산대사는 임종게에서 천만 가지 인간의 망상(진영 논리, 당쟁)이 모두 ‘붉은 화로에 내린 한 점 흰눈(紅爐一點雪)’이라 하였고, 성철 스님은 열반송(涅槃頌)을 통해 일생의 업조차 수미산(須彌山·불교 우주관에서 세상의 중심에 솟은 거대한 산)을 지나친다며 스스로를 경책하셨다.

 

내부의 분열이 외세의 침략보다 치명적이었음을 증언하는 역사의 준업한 상흔(傷痕)은 진영의 논리를 넘어 통합의 길로 나아가야 할 오늘날 엄중한 경고를 던지고 있다.

 

당시 서산대사는 임종게에서 천만 가지 생각이 모두 ‘붉은 화로에 내린 한 점 흰눈(紅爐一點雪)’이라 했다.

 

또한 성철스님은 열반송(涅槃頌)을 통해“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須彌山불교 우주관에서 세상의 중심에 솟은 가장 거대한 산)을 지나친다”고 하였다.

 

개신교의 거목 한경직 목사는 평생을 낮은 곳에서 섬기며 “내 집도, 내 땅도, 내 이름으로 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청빈의 삶으로 분열된 세상을 부끄럽게 하였다. 

 

그는 특히 템플턴상 수상 당시 스스로를 “나는 신사참배를 했던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며, 자기 정당성에 함몰된 이 시대에 진정한 회개와 겸손만이 갈등을 녹이는 유일한 열쇠임을 몸소 보여주었다.

 

천주교의 김수환 추기경 역시 한국 사회의 격변기마다 갈등의 완충지대가 되어 주었다. 그는 입적하는 순간까지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마지막 울림을 남기며, 이념과 진영으로 갈라진 우리에게 인간 존엄에 대한 경외심을 일깨웠다. 

 

그가 강조한 “바보가 되십시오”라는 가르침은, 똑똑한 지식으로 서로를 난도질하는 분열의 시대에 우리가 회복해야 할 최고의 지혜이자 통합의 마중물이었다.

 

서산대사의 '홍로일점설'과 성철 스님의 '수미산' 같은 자각이 집착을 내려놓는 비움의 미학이라면, 한경직의 '겸손'과 김수환의 '사랑'은 그 비워진 자리를 채워야 할 공동체의 온기다. 

 

AI라는 차가운 기술이 지배하는 21세기, 우리가 다시 이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진영의 담장 위에서 정의를 외치는 이는 많으나, 스스로 낮은 곳으로 내려가 갈등의 골을 메우는 자비와 사랑은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의 상흔이 던지는 엄중한 경고 앞에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과거의 무능을 반복하며 자멸할 것인지, 아니면 세 분의 어른이 남긴 통합의 유산을 받들어 공존의 미래로 나아갈 것인지 말이다. 진정한 강함은 상대방을 섬멸하는 데 있지 않고, 다름을 보듬어 하나로 묶어내는 화해의 힘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응천 스님

 

대한불교호국종 총무원장 

호국승군단 초대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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