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LNG 운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이하 현지시간) 국방생산법(DPA) 제303조에 따른 5개 분야별 대통령 결정에 서명했다.
미국 정치 칼럼니스트 진 커밍스는 페이스북을 통해 연방 관보(Federal Register, FR)에 이 5개 문서가 4월23일 게재됨으로 공식 발효된 사실을 알렸다.
진 커밍스에 따르면 이 분야는 △대규모 에너지 및 에너지 관련 인프라 △전력망 인프라·장비·공급망 △석탄 공급망 및 기저부하 발전 △미국 내 석유 생산·정제·물류 △천연가스 송전·처리·저장 및 LNG 역량이다. 이는 2025년 1월20일 트럼프 대통령 취임 당일 발령한 행정명령 14156호, 즉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 선언과 직접 연결된다.
아울러 그는 2025년 1월의 행정명령이 미국 에너지 공급 능력이 국가 수요를 충족하지 못해 제조업, 교통, 농업, 방위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위협 인정’ 선언이었다면, 2026년 4월20일 DPA 303조 결정은 그 문을 실제로 밀고 들어간 실행 조치라고 전한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에너지 공급망 전체를 국가 방위 체계 안으로 끌어들여 연방 자금, 구매 약정, 금융 수단, 생산능력 개발을 동원하겠다는 공식 결정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한국 언론 대부분은 이 사안을 ‘트럼프, 한국전쟁 때 만든 법 발동해 유가 대응’ ‘에너지 분야 연방 자금 지원’ ‘한국 조선업에 수혜 가능성’ 정도로만 다루면서, 트럼프 정부가 유가 대응을 위해 자금을 지원한다는 수준으로 보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진 커밍스가 짚어낸 이 법안의 핵심은 아래와 같다. 그가 28일(한국시간) 올린 페이스북 내용이다.
이 조치의 본질
이번 DPA 발동은 단순한 유가 대응이나 에너지 정책이 아니다. 에너지 문제를 국가안보와 방위 문제로 격상시켜, 미국 정부가 직접 통제, 관리하겠다는 선언이다.
DPA 303조는 대통령이 국가 방위에 필수적인 국내 산업 기반을 만들고, 유지·보호·확장하기 위해 구매, 약정, 금융지원, 생산능력 개발을 할 수 있게 한다. 특히 이번 결정문들은 303(a)(7) 권한을 사용해 “국내 제조 능력(domestic manufacturing capacity)”를 명시적으로 국가 방위 핵심 요소로 포함했다.
대규모 에너지 인프라 결정문은 개발, 제조, 배치 역량을, 전력망 결정문은 변압기, 송전 부품, 전력전자 등까지 국가 방위 필수 산업자원으로 지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 역량을 확대하지 않으면 국가 방위 능력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는 산업자원, 핵심기술 부족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에너지부 장관에게 필요한 조치를 실행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원유 생산 확대 차원이 아니다.
에너지를 생산, 수송, 정제, 저장, 발전, 전력망 연결, LNG 액화하는 전체 공급망과 제조 기반을 미국 내에서 재건하겠다는 산업 동원 조치다.
미국산 제품 우선 구매법(Buy American Act)의 기존 연방 조달 조건과, 2025년 4월 해양, 조선 산업 재건 행정명령이 결합되면, 국방물자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 DPA) 자금이 들어가는 프로젝트에서 미국 내 생산·공급망·고용이 사실상 우선 조건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 언론이 제대로 다루지 않은 사안
한국 언론 대부분은 이 사안을 “트럼프, 한국전쟁 때 만든 법 발동해 유가 대응” “에너지 분야 연방 자금 지원” “한국 조선업에 수혜 가능성” 정도로만 다루면서, “트럼프 정부가 유가 대응을 위해 자금을 지원한다”는 수준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이 보도 프레임은 핵심을 놓치고 있다.
이번 행정명령의 본질은 단순한 유가 대응이 아니다.
이 조치는, 미국이 에너지 주권을 국가안보 문제로 승격시키고, 그 에너지 주권을 미국 내 제조 능력과 결합하며, 장기 보호주의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국 경제에 ‘기회’라는 말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 제조업과 수출 산업이 미국 시장에서 어떤 조건을 강요받게 될 것인지 냉정하게 봐야 할 문제다.
‘국내 제조 능력’ 우선 원칙의 초강력 실행
이번 조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DPA 303조를 통해 대통령이 “국가 방위 필수” 산업자원과 핵심기술 품목에 연방정부의 구매, 구매약정, 금융지원, 생산능력 개발을 투입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이다.
결정문들은 일관되게 “국내 역량(domestic capability)” “국내 제조 능력(domestic manufacturing capacity)” “국내 석유 생산(domestic petroleum production)” “국내 천연가스 송전·수송(domestic natural gas transmission)”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강점을 가진 조선, LNG 운반선, 철강, 변압기, 전력기기, 플랜트, 가스터빈, 원전 부품, 전력망 장비 분야가 바로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간다.
지금까지는 미국 에너지, 전력, 조선 인프라 확대를 기회로 보았지만, DPA 303조 체제에서는 그 기회가 조건부 기회로 바뀌게 된 것으로 의미가 크게 다르다.
미국 내에서 생산하느냐, 미국인을 고용하느냐, 미국 공급망 안에 들어오느냐,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기술, 자본, 생산 구조에 맞추느냐, 라는 조건이 붙은 상황에서, 이 기준에 따르지 못하는 기업들은 점점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한 “보조금 경쟁”이 아니라, 미국이 에너지와 제조 기반을 국가방위산업으로 재분류하면서 외국 기업에게 “미국 시장에 들어오려면 미국 안에서 미국인들을 고용해, 생산하라”고 압박하는 구조이며 이번 발표로 실질적으로 실행에 들어간 것이다.
LNG 캐리어 등 단기 수혜 프레임의 한계
한국 언론이 가장 강조하는 수혜는 LNG 캐리어 수주다.
미국 LNG 수출 확대 시 한국 조선 빅3가 추가 물량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 조선업은 여전히 LNG 운반선 분야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 단계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미국 해양, 조선 산업 재건을 국가안보 과제로 설정하고. 2025년 4월9일 행정명령은 미국 상업 조선 능력과 해양 인력 기반이 약화된 것이 국가안보를 훼손한다고 명시했다.
한화가 Philly Shipyard에 50억 달러 투자를 발표한 것도 이 흐름과 맞물린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한국 조선소가 한국에서 배를 만들어 미국에 납품하는 구조가 아니다. 한국의 기술과 생산방식을 미국 땅 안으로 끌어들여 미국의 산업 기반으로 만드는 것이다.
수주는 들어올 수 있다. 그러나 그 수주가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물량인지, 미국 현지에서 만들어지는 물량인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한국 언론이 말하는 “조선 수혜”는 기업의 수주, 주가, 매출 전망만 계산한다. 그러나 그 수혜가 과연 한국 국내 생산과 한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로 이어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묻지 않는다.
전력, 그리드, 플랜트 분야 직격 압력
가장 치명적인 분야는 전력망과 그리드다.
DPA 결정문은 변압기, 송전선, 도체, 변전소, 고압 차단기, 전력제어 전자장비, 보호계전 시스템, 전기강판 등까지 국가 방위 필수 품목으로 지정하면서, 외국 경쟁과 수입 장비 과도 의존이 전쟁, 재난, 경제 충격 상황에서 미국을 취약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LS일렉트릭. HD(Hyundai)일렉트릭. 효성중공업, 포스코, 현대제철, 두산에너빌리티 등 한국 기업들이 강점을 가진 바로 그 분야다.
미국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전기차 수요로 이미 대형 계약을 따내고 있지만, DPA 체제에서는 이러한 기회가 동시에 압박으로 바뀔 수 있다.
연방 자금이 들어가는 프로젝트에서는 미국 내 생산, 공급망 편입이 필수 조건이 될 것이다.
철강, 건설, 부품 공급망 연쇄 타격
철강과 플랜트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포스코인터내셔널(POSCO International)의 알래스카 프로젝트 참여, 현대건설, DL이앤씨의 LNG 터미널, 발전소, 파이프라인 프로젝트 등에서 미국산 철강, 장비 비율 요구가 강화될 여지는 충분하다.
대형 에너지 인프라 프로젝트가 DPA 자금, 연방 조달, 국내 공급망 조건과 결합되면 한국 기업의 참여 조건은 훨씬 까다로워진다.
결국 미국이 에너지 인프라를 국가방위산업으로 묶는 순간, 그 인프라에 들어가는 모든 철강, 전선, 변압기, 터빈, 선박, 항만 장비까지 국가안보 공급망의 일부가 되고, 외국 기업은 더 이상 단순 공급자가 아니라 심사 대상, 조건부 참여자가 되며, 경우에 따라 배제 대상이 되는 구조다.
왜 이 지경까지 왔는가
트럼프는 2기 임기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그때만 해도 미국은 동맹국에 일정한 예외와 협력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관세 협상, 투자 압박, 조선 협력, 에너지 구매, 공급망 재편이 진행되면서 “누가 실제로 미국과 이해를 같이하는 동맹인지”를 가려내기 시작했다.
관세는 단순 무역 수단이 아니라 동맹 재편 도구였고, 투자는 산업을 미국 안으로 끌어들이는 장치였다. 에너지는 동맹국을 시험하는 국가안보 카드였다.
그런 상황에서 이재명정부는 관세 협상에 관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신뢰를 잃었고, 2026년 3월 호르무즈 해협 위기는 결정적인 시험대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일본, 나토 국가들에게 호르무즈 해협 안전 확보에 전함을 보내 동참하라고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한국 정부는 이를 사실상 무시한 것을 넘어,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적 요구와 정면으로 어긋나는 태도를 보였다.
호르무즈에 갇힌 유조선이 가장 많은 국가였음에도 한국 정부는 즉각적인 답을 내놓지 않았고, 오히려 이재명은 이런 상황에서 이란을 옹호하고 이스라엘을 비난하면서 미국에게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동맹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이것은 단순한 외교적 실수가 아니었다.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자국 선박과 에너지 공급망이 걸려 있는 호르무즈 위기에서도 움직이지 않으면서 오히려 미국의 적성국인 이란을 옹호하고 이스라엘과 적을 진다면, 트럼프가 그런 국가를 동맹이 아니라 거래 대상으로 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트럼프 행정부에게 한국은 더 이상 보호해주거나 특별히 배려해야 할 우방으로 보이기 어려워졌다. 동맹이 안보 비용을 분담하지 않는다면 미국도 더 이상 산업과 시장에서 그 동맹을 배려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이 이제 와서 외교로도 풀어나갈 수 없는 정부 개입의 4월20일 DPA 303조 조치다.
한국 경제 전체에 미칠 파급 피해와 냉혹한 현실
이번 DPA 303조 조치는 한국 기업에게는 미국 시장 진입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국가 경제에는 전혀 다른 문제다.
기업 매출과 생존이 곧 한국 내 생산 기반과 고용의 생존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 이름은 한국에 남아 있어도, 핵심 생산 거점과 공급망이 미국으로 옮겨가면 한국 경제가 실제로 얻는 것은 무엇인가?
문제는 수주 자체가 아니다. 수주가 어디에서 생산되고, 누구의 일자리로 연결되며, 그 돈이 어느 나라 산업 기반 안에서 순환하느냐가 핵심이다.
더욱이 미국에서 생산하고, 미국인을 고용하며, 안보 문제로 격상된 산업에서 미국산 부품 사용까지 요구받고, 미국 정부 보조금까지 받게 된다면, 그 돈은 결국 미국 안에서 쓰이고 미국 경제 안에서 돌게 된다.
그렇다면 기업은 돈을 벌지 몰라도, 그 수혜가 곧 한국 경제의 수혜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정부와 기업이 DPA 프로젝트별 대응 전략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면, 한국은 기업만 세계화되고, 국내 산업 기반은 텅 비어가는 수렁에 빠지면서 일자리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한국 언론이 제대로 다뤄야 할 진짜 이야기이며, 지금 한국 경제가 마주한 냉혹한 현실이다.

◆ 진 커밍스
미 정치 칼럼니스트. 매릴랜드 볼티모어 채널13을 거쳐, ‘선데이타임즈’ 편집국장(1994~1996), ‘주간워싱톤(The Korean Weekly)’ 사업국장(1996~2000)을 역임했으며 2000년 이후 ‘아시아 포스트’를 창간했다. 현재는 정부 컨트랙트를 수행하는 민간 기업에서 정치, 외교, 안보 분야 백엔드 분석가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