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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채수조] 폭염에 에어컨 설치 막는 유럽의 기괴한 에너지 정책
  • 채수조 박사
  • 등록 2026-06-30 11: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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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트펌프는 장려하면서 에어컨 설치는 막는 모순
  • 냉난방 겸용 시스템 에어컨 달면 문제 해결
  • 폭염 앞에서 냉방은 사치가 아니라 생명줄

유럽에 역대급 폭염이 들이닥쳤다. [AFP=연합뉴스]  

유럽 폭염 뉴스의 이면에서 에너지 전환 정책의 기괴한 모순을 본다.

 

그들은 전기로 가동되는 히트펌프는 보조금까지 주며 장려하면서, 정작 여름철 에어컨은 못 달게 한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보면 둘은 같은 원리다. 

 

열을 밖에서 안으로 가져오면 난방이고, 안에서 밖으로 빼내면 냉방이다. 냉매를 압축하고 팽창시키며 열을 옮기는 장치다. 우리가 흔히 보는 냉난방 겸용 시스템 에어컨이 바로 그것이다.

 

40℃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서 영국 일부 지방정부가 주택에 설치된 에어컨을 철거하라고 명령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유가 △탄소중립 △문화재 보존 구역 △도시 열섬 방지 △패시브 냉방(자연 냉방) 우선 원칙 때문이다. 즉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틀고, 자연 환기를 먼저 하라는 것이다. 그것을 다 해 본 뒤에야 에어컨을 인정하겠다는 식이다.

 

그러나 유럽의 저층 밀집 도시에서 이것이 가능한가. 나는 대학생 때 신림동 판잣집 동네의 주거 환경에서 여름을 겪어본 기억이 있다. 다닥다닥 붙은 집 사이로 바람은 거의 통하지 않고, 지면과 양철 지붕의 열기는 그대로 방 안으로 밀려든다. 

 

그런 곳에서 여름은 그냥 지옥이다. 더워서 아이들도 집 안에 있지 못하고 밤 10시 넘어서까지 골목을 뛰어다니며 놀 수밖에 없다. 창문을 열라는 말은 행정 문서에는 그럴듯해 보일지 몰라도, 실제 삶의 현장에서는 적용될 수 없는 무책임한 말이다.

 

탄소중립 교리로 인간이 발명하고 개량해 온 문명의 이기를 규제의 제물로 삼아 못 쓰게 하는 것은 국가 폭력에 가깝다.

 

나는 어린 시절 더위를 부채로 견디던 세대를 기억한다. 그다음 선풍기가 들어왔다. 전기 모터로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 하나만으로도 세상이 달라진 것 같았다. 그리고 에어컨이 쓰면서 여름이라는 계절의 의미가 다시 바뀌었다. 더위는 더 이상 무조건 참아야 하는 자연의 형벌이 아니라 인간이 기술로 조절할 수 있는 환경 조건이 되었다.

 

추위는 인류가 비교적 일찍 극복했다. 원시 인류도 동굴 속에서 불을 피워 추위를 피했다. 옷을 입고, 벽을 세우고, 난로를 만들고, 보일러를 만들었다. 

 

그러나 더위는 훨씬 어려운 문제였다. 외부 온도가 체온에 가까워지고 습도까지 높아지면 인체는 열을 버릴 방법을 잃는다. 땀이 증발하지 않으면 사람은 내부에서부터 무너진다. 열사병은 불편함이 아니라 생명 위협이다.

 

그런 점에서 에어컨은 인간이 발명한 가장 위대한 장치 중 하나다. 단순한 편의 장치가 아니라 공간적 제약을 극복한 문명의 핵심 기술이다.

 

윌리스 캐리어가 1902년 처음 만든 현대식 에어컨은 사람을 시원하게 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었다. 인쇄공장에서 습도 때문에 종이와 잉크가 뒤틀리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만든 장치였다. 

 

그러나 그 발명은 곧 인간 문명의 공간 자체를 바꾸었다. 병원, 지하철, 사무실, 데이터센터, 반도체 클린룸, 대형 쇼핑몰, 고층빌딩, 현대식 아파트, 실험실, 서버실은 모두 공조 없이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현대 도시는 콘크리트, 아스팔트, 유리, 철골, 전기설비가 밀집한 거대한 열 저장 장치다. 낮에 받은 열을 밤에도 뿜어낸다. 창문을 열면 해결된다는 말은 교외나 시골 별장에 사는 사람의 한가한 조언일 수는 있어도, 도시 아파트와 좁은 방과 범죄 위험, 소음, 미세먼지, 노약자가 있는 현실의 해법은 아니다.

 

더 황당한 것은 유럽이 한쪽에서는 히트펌프를 장려한다는 점이다.

 

유럽의 에너지 전환 정책은 가스보일러를 줄이고 전기식 히트펌프를 늘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것 자체는 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히트펌프는 전기를 써서 열을 직접 만드는 장치가 아니라, 외부의 열을 실내로 옮기는 장치다. 같은 전기 에너지로 저항식 난방보다 훨씬 많은 열을 공급할 수 있다.

 

그런데 공기 대 공기 히트펌프는 본질적으로 시스템 에어컨과 같은 장치다. 밸브를 바꾸면 겨울에는 난방, 여름에는 냉방이 된다. 그렇다면 겨울에 난방을 하면 친환경 히트펌프이고, 여름에 냉방을 하면 탄소중립을 해치는 사치품인가?

 

같은 압축기, 같은 냉매 사이클, 같은 실외기, 같은 열역학 원리다. 그런데 겨울에는 선한 기술이고 여름에는 악한 기술이 된다. 난방은 복지이고 냉방은 사치라는 낡은 사고가 아직도 유럽 행정 깊숙이 남아 있는 것이다.

 

기후가 바뀌고 도시가 바뀌었다. 이제 냉방은 사치가 아니라 공중보건이고 인간의 권리다. 탄소중립을 한다면서 사람을 더위 속에 방치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다.

 

물론 에어컨 가동에는 막대한 전기 소비가 따른다. 실외기는 주변에 열을 배출한다. 도시 전체가 무계획적으로 에어컨을 달면 피크 전력 수요가 늘고 열섬 현상이 커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금지할 문제가 아니라 설계할 문제다. 고효율 인버터 시스템 에어컨을 쓰고, 저소음 실외기를 규격화하고, 실외기 위치를 건축적으로 정리하면 된다. 

 

열회수 환기, 단열, 차양을 결합하고, 낮 시간 냉방 수요와 전력 공급을 맞추면 된다. 원전과 수력, 안정적 전력망으로 기저 전력을 받치면 된다. 역사적 외관을 보존해야 한다면 실외기를 보이지 않게 배치하고, 중앙 공조나 지역 냉방을 도입하면 된다.

 

기술로 풀 문제를 규제와 금지로 해결하려는 것은 행정의 무능이다.

 

문화재 보존도 마찬가지다. 전통은 사람이 살아 있을 때 의미가 있다. 사람이 더위에 고통받고, 노인이 열사병으로 쓰러지고, 아이가 잠 못 이루는 집을 만들어 놓고 외관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인간의 삶을 품지 못하는 전통은 박제된 껍데기일 뿐이다.

 

유럽의 오래된 건축물도 사람이 살고, 일하고, 숨 쉴 수 있어야 문화다. 사람이 떠난 건물은 문화가 아니라 박물관이고 무덤이다.

 

한국도 가난하던 시절에는 문화재를 제대로 보존하지 못했다. 석굴암도, 불국사도, 궁궐도 돈과 기술과 국가 역량이 쌓인 뒤에야 제대로 복원하고 관리할 수 있었다. 유럽은 지금 전통을 보존한다는 명분으로 현대 기술을 적대시하고, 탄소중립이라는 명분으로 인간의 생존권을 후순위로 밀어낸다.

 

이번 유럽 폭염은 오메가 블록이 제트기류를 막고, 사하라의 뜨거운 공기가 유럽을 덮고, 대서양과 지중해의 해수면 온도 이상이 대기 흐름에 영향을 주면서 나타난 복합적 기상 현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탄소중립 구호가 아니라 냉방이다.

 

오늘 쓰러지는 노인에게 2050년 탄소중립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열돔 앞에서 필요한 것은 탄소세가 아니라 냉방, 전력망, 병원, 그늘, 물, 도시 설계다.

 

탄소를 제대로 줄이려면 금지가 아니라 전기화와 고효율화로 가야 한다. 난방도, 냉방도, 산업도 전기화하고 그 전기를 원전, 수력, 안정적 전력망, 고효율 설비로 공급해야 한다.

 

히트펌프를 장려할 거면 시스템 에어컨을 금지하지 말라. 같은 장치를 겨울에는 선이라 하고 여름에는 악이라 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교조다. 폭염 앞에서 냉방은 사치가 아니라 생명줄이다. 탄소중립도 사람이 살아 있어야 의미가 있다.

  



 

◆ 채수조 박사

 

서울대 물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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