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3보] ‘영장 기각’ 올다르크 “자유 위해 더 싸울 것… 김건희 여사 고충 생각” 첫 심경 밝혀
일명 ‘올다르크(올림픽공원+잔다르크)’ 30대 여성 A씨는 21일 구속 영장이 기각된 직후 “나도 이렇게 불편한데 나보다 더 귀하신 김건희 여사는 얼마나 더 불편하실까 생각하게 됐다”고 투옥 중인 김 여사의 안위를 물으며 담대하게 소회를 전했다. 그녀는 지난 6·3 부정선거 이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개표소에 대한 공권력의 위력 진입에 맞서 홀로 투표함의 무결성을 지켜내면서 소셜미디어(SNS)상에서 ‘문막녀(문을 막은 여성)’ ‘올공녀(올림픽공원 여성)’ ‘성조기녀(성조기를 두른 여성)’ 등의 별칭으로 불리며 애국 진영 내에서 화제를 모았다.
1979년 12·12 당시 공관에서 신군부 측에 강제 연행된 뒤 조사를 받으러 가고 있는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나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관들을 태운 차량이 2025년 1월3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2·12와 5·18의 역사를 혼란스럽게 뒤집고 왜곡한 주체는 이재명 정권과 민주당 지지자다. 이재명 정권의 내란 특검이 1979년의 신군부와 무엇이 다른가.
“특검은 이날 내란 중요임무종사 미수 혐의를 받는 김상환 전 육군본부 법무실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김 전 실장은 계엄 당일 계엄사령부 구성을 위해 계룡대 육본에서 서울로 향하는 단체버스에 오른 혐의를 받는다.” (12·3비상계엄 고위 장교 징계처분서 공개: 편집자 주)
단체버스에 동승했다는 사실만으로 피의자가 되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같은 기준으로 10·26 당일 정승화 총장의 행적을 되짚어보자.
16:00경: 김재규가 전화로 3시간 뒤 저녁 7시 식사 초대를 한다. 정 총장은 이를 즉시 수락한다
19:00: 약속 장소에 김재규는 나타나지 않고, 대신 중앙정보부 차장보 김정섭이 나와 함께 식사한다.
19:10: 김재규가 와이셔츠 차림으로 잠시 들러 자리를 비운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
19:45: 인근에서 연속적인 총성이 울린다. 수백 미터 거리에서 나는 총성이다.
“김정섭 씨 보고 「이것은 총소리 같은데!」 하니까 본인이 「알겠습니다」 하고 벌떡 일어나서 그것을 확인하러 나갔다 들어오더니 「파출소에다 곧 확인해서 보고하라고 연락을 했습니다. 뭐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하고 사실 본인도 그 지역에 총소리 나는 것은 바로 그것이 청와대 경호실 외곽이기 때문에 청와대 경호실 여러분도 다 아시다시피 굉장히 경비가 삼엄한 곳입니다. 그 외곽에서 총소리가 났다면 경호실이나 그런 데서 난 것이 아니겠느냐 이런 정도로 크게 관심은 안 가졌습니다. 또 알아보라고 했다고 하니까 그렇게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시 식사를 계속했습니다.” -5·18 조사위 정승화 증언
총성이 명확히 들렸음에도, 정 총장은 태연히 식사를 이어갔다. 후식 포도주를 마실 때 김재규가 다급하게 정 총장을 찾아온다. 얼마나 급한지 주전자 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들이켜는 비정상적인 모습이다.
“「무슨 일이냐」 하니까 「우선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얘기를 합시다」 해서 같이 자동차를 탔습니다.” -5·18 조사위 정승화 증언
김재규는 신발도 어디로 갔는지 양말 차림이다. 누가 봐도 의심스럽지만, 차에 태워 같이 이동한다. 이동 중 대통령 유고 상황을 직접 듣는다.
“엄지손가락을 들면서 「이 어른이 돌아가셨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내가 깜짝 놀래서 「아, 어떻게 돌아가셨느냐」고 하니까 저격당했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누가 그랬느냐」고 하니까 본인은 자기도 「정신이 없어서 모르겠다」고 그랬습니다.” -5·18 조사위 정승화 증언
정 총장은 김재규와 함께 육본으로 향했다. 김재규를 총장실로 안내하게 한 뒤, 자신은 상황실로 이동해 유고에 따른 비상조치를 취한다.
국방부에서는 긴급 국무회의가 열렸다. 김재규는 이 자리에서 강력하게 계엄 선포를 요구하며 2시간 넘게 언쟁을 벌였고, 국무위원들은 시신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며 맞섰다.
“장시간 동안 내용을 못 밝히겠다, 무조건 계엄을 선포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장시간 언쟁을 하다가 나중에 인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그 인정 자체도 믿을 수가 없다고 생각이 되어서 그렇다면은 확인을 해 보자, 이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김재규가 하도… 직접 통합병원 쪽에 가서 확인하러 가서 확인을 했습니다.” -5·18 조사위 신현확 증언
23:30경: 계엄 선포가 지연되자, 김계원 비서실장이 정승화 총장과 노재현 국방장관을 불러 비로소 진상을 밝힌다.
“노재현 국방장관이 나오다가 우리 일행과 합류를 해서 세 사람이 들어가서 앉자마자 김계원 씨가 「범인은 김재규야!」 이렇게 얘기를 하더군요.” -5·18 조사위 정승화 증언
김재규는 사건 발생 4시간이 지나서야 체포되었다. 이 4시간 동안 김재규는 비상 국무회의에서 큰소리를 치며 자신의 주장을 펼쳤고, 정승화는 결과적으로 김재규에게 시간을 벌어준 셈이 되었다. 김재규는 정승화를 계엄사령관으로 앉히려 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12·12 당일, 정승화는 김재규에게 300만 원을 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총장님께서 김재규 사건에 증언을 좀 해주실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왔습니다. 그래 녹음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더군요. 그래 「무슨 내용인가?」 하니까 「뭐 돈 받았다고 하던가?」 그러니까 「총장님께서 돈을 많이 받으셨더군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 내가 300만 원 받은 일이 있는데 그 얘기인가.」 그러면서 「그러면 녹음을 준비해 왔느냐?」 그러니까 「녹음기가 준비돼있는 데로 가셔야겠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5·18 조사위 정승화 증언
단체버스만 같이 타도 내란 피의자가 되는 것이 지금의 기준이다. 그렇다면 똑같은 잣대로, 대통령을 시해한 권력 실세와 한 차를 타고 이동하며 체포를 지연시키고 돈까지 받은 정승화 총장 역시 당연히 피의자가 되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2026년의 기준으로 정승화 체포를 쿠데타라고 할 수 있을까?
가치관이 대혼란인 상황이다. 상식과 법치의 모든 기준이 뒤집혔기 때문이다. 정의의 저울을 정치적 이익에 따라 자기들 마음대로 조율하는 이재명과 민주당 지지자야말로 전두환의 진정한 추종자가 아닐까.

◆ 김성민 작가
디지털 크리에이터, 바닷가 거주, 새벽의 사이클리스트.
이 기사에 2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이재명을 어떻게 1979년 신군부와 비교하나
글쓴이는 미쳤나 흉악범 소시오 범죄자가 부정으로 대통된거임 거기다가 간첩질하는 버러지들이 바글바글 애국 국민들을 때려잡고 있다
중공공산당이 기획해서 전과자들 정부다
매국도 서슴치않는 쓰레기 양아치 조직임
글쓴이의 생각을 잘 모르겠습니다,
귀하는 1212가 쿠데타라 생각하시는지요? 전두환 대통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정승화는 김재규를 대통령 시해범인지 알면서도 체포하지 않고 옷을 갈아입게 하고 육본까지 동행하였던 자이고 이를 체포한 것이 1212입니다. 전두환 대통령 당시 누구나 희망을 갖고 서민이 행복하게 살던 시대였습니다. 그 당시 방학때 노가다만 뛰어도 학비를 벌던 시절이었고 직장인들이 돈을 모아 아파트를 살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이 데모하던 자들 말고 누구를 힘들게 하였습니까?
1212는 쿠데타가 아니지만 전두환 대통령에 대해서는 부정적인가요? 이념이나 사상이 불분명한 분들은 한미일보에 글을 올리지 말았으면 합니다.
민주화가 공산화의 다른 이름임을 꿈엔들 알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