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민병곤 칼럼] 악마는 왜 권력을 탐하는가
  • 민병곤 작가
  • 등록 2026-08-29 13:16:30
기사수정

악마란 무엇인가.

종교의 언어를 잠시 철학의 언어로 바꾸어 생각해 보면 흥미로운 답에 도달한다. 악마는 인간에게 언제나 명백한 악을 권하는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인간이 가진 욕망의 질서를 뒤집어 놓는 존재에 가깝다.

쾌락은 그 자체로 악이 아니다. 인간에게 즐거움이 없다면 삶은 황폐해진다. 돈 역시 악이 아니다. 인간의 삶과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유용한 수단이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공동체를 이끌고 공동선을 실현하려면 권력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것들이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는 순간 시작된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을 빌려 말하면, 인간은 더 높은 선을 향해 자신의 욕망을 질서 있게 배치해야 한다. 쾌락을 누리는 것과 쾌락을 인생의 최고 목적으로 삼는 것은 다르다. 전자에서는 인간이 쾌락을 지배하지만, 후자에서는 쾌락이 인간을 지배한다.

권력도 정확히 그렇다.

정치권력은 공동선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국민의 자유와 안전을 지키고 정의로운 질서를 세우기 위해 국민이 잠시 위임한 힘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권력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정치의 목적이 된다면 어떻게 되는가. 모든 것이 거꾸로 뒤집힌다.

국민을 위해 권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위해 국민을 동원한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권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정의를 말한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지키기 위해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사유화한다. 수단과 목적의 완벽한 전도다.

수단과 목적의 완벽한 전도, ‘악마적’ 권력의 탄생

이 지점에서 전체주의의 본질과 권력의 타락이 드러난다.

20세기 공산전체주의의 비극도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공산혁명은 인간의 해방과 평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실제 역사 속 여러 공산당 일당체제에서는 혁명을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했던 당과 국가권력이 거대한 자기목적이 되었다. 인간을 해방하기 위해 존재한다던 권력이 어느 순간 인간에게 복종을 요구했고, 당을 위해 개인이 희생되는 역전이 일어났다.

이것을 신학적 언어로 표현한다면 ‘악마적 전도’라 부를 수 있다. 수단이 되어야 할 낮은 단계의 선이 최고 목적의 자리를 치고 올라앉는 현상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오늘 우리 현실 정치, 특히 이재명정부와 그 집권 세력이 보여주는 권력 구조와 파행적 행태에 칼날처럼 던져져야 한다.

현재 이재명 정부가 보여주는 권력 운용을 보면, 권력의 목적이 결코 '공동선의 추구'나 '국민 전체의 안전과 정의'에 있지 않음을 똑똑히 확인하게 된다. 그들에게 권력은 오직 '권력 유지 그 자체'이자, 정권 핵심부의 사법적 책임과 유죄 판결이라는 단죄를 피하기 위한 방어막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삼권분립 파괴, 국가 시스템의 도구화

최근 강행된 ‘검찰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 파동이 대표적이다. 형사사법 체계의 근간을 뒤흔들고 국민이 입을 수사 공백의 피해는 외면한 채, 수사 기관의 힘을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과연 어떤 공동선을 위한 것인가. 

부정선거 의혹이나 권력형 비리, 정권의 치부를 수사하고 단죄할 수 있는 최고의 공권력 기관을 손발 묶는 행위는, 국가의 사법 정의라는 공공적 목적을 완전히 상실한 채 사적·정치적 생존만을 도모하는 ‘권력 자기목적화’의 전형이다.

권력 유지 자체가 최고 목적이 되며 민주주의의 보루인 삼권분립마저 서슴없이 짓밟힌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헌법적 권한에 따라 제청한 대법관 후보를 두고, 대통령의 임명권을 내세우며 재제청을 요구한 헌정 초유의 사태가 이를 명백히 증명한다. 

사법부의 독립성을 존중하기보다 사법부마저 정권의 입맛에 맞게 권력의 방패막이로 삼겠다는 의도가 노골화된 것이다. 헌법이 규정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적 절차는 파괴되고, 국가기관 전체가 오직 ‘권력 사수’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동원되고 있다.

권력을 놓는 순간 정치적·사법적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 권력은 공동선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결코 내려놓을 수 없는 절대적 목적이자 무기가 된다. 권력 그 자체가 목적이 되었을 때, 법률과 제도, 의회와 사법부는 정권의 생존을 뒷받침하는 부속품으로 전락하며 민주주의의 근간은 송두리째 흔들린다.

그 주도 세력이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선과 악, 우리와 적으로 보는 80~90년대 학생 운동권의 세계관에 머물러 있는 것도 문제다. 

이들은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급변하는 국제정세에는 어둡고 피해의식에 찌든 외눈박이처럼 편향된 이념주의에 함몰돼 오직 자기 것만이 옳다고 주장한다. 

입으로는 변화와 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몸은 고인물이 돼 썩고 있다.

통제 상실한 욕망이 부르는 야만과 파멸

돈을 가진 사람이 돈의 노예가 될 수 있듯 권력을 가진 사람도 권력의 노예가 될 수 있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단순히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권력이 수단이라는 사실을 잊은 사람, 나아가 권력 유지를 최고 목적으로 삼아 국가 시스템 전체를 흔드는 사람이다.

여기서 권력과 쾌락이 만나는 지점, 즉 인간의 절제되지 않은 욕망이 도달하는 극단적 비극을 똑똑히 목도하게 된다.

전 세계를 흔들었던 악마의 실사판, '제프리 엡스타인' 사건이 우리에게 준 충격은 단순히 한 개인의 성적 타락이나 범죄에 그치지 않는다. 엡스타인의 비밀 섬에서 벌어진 가학적 쾌락과 추악한 범죄의 네트워크 뒤에는, 언제나 그것을 가능하게 하고 은폐해 준 무소불위의 권력과 재력이 있었다.

쾌락을 통제하지 못한 개인의 탐욕이 견제받지 않는 권력과 결합했을 때, 인간은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으며 타인의 인격과 생명을 얼마나 철저하게 도구화할 수 있는지를 엡스타인의 비극은 명백히 보여주었다.

권력이든, 쾌락이든, 돈이든 통제 수단과 도덕적 한계를 상실하고 자기목적화되는 순간, 그것은 반드시 인간성을 파괴하고 사회 전체를 지옥으로 몰아넣는다. 통제되지 않은 쾌락이 한 인간의 영혼과 타인의 삶을 짓밟듯, 통제되지 않은 권력은 한 국가의 정의와 삼권분립, 그리고 민주주의 시스템 전체를 도륙한다.

악마가 인간을 유혹하는 가장 영리한 방법은 악을 선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인 선 혹은 자기 생존이라는 탐욕을 최고의 선으로 믿게 만드는 것이다.

권력 그 자체가 목적이 되지 못하도록 권력을 끊임없이 제한하고 교체하는 것, 권력이 개인의 방패나 욕망의 도구로 쓰이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유민주주의가 전체주의와 야만으로부터 지켜지는 가장 강력한 경계선이다. 우리가 권력의 타락과 악마적 전도를 방관할 때, 우리 스스로 악마의 지배에 놓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민병곤 정치다큐멘터리 작가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0
감동이에요
0
슬퍼요
0
화나요
0
정기구독배너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