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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松山] 철학적 조망이 없는, 사실 나열과 해설의 역사학의 종말
  • 松山 작가
  • 등록 2026-08-04 17:2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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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역사학자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깊이 질문하는 사람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인간 이성이 사회 전체를 설계할 수 있다는 믿음 자체를 경계했다. 

역사는 언제나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사실만으로 역사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연도와 사건, 인물과 제도를 아무리 정확하게 정리해도 그것이 곧 역사학은 아니다. 역사학은 사실을 수집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는 학문이다. 

그래서 역사에는 언제나 철학이 필요하다. 철학이 없는 역사학은 거대한 창고에 불과하다. 물건은 가득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한다.

20세기 역사학은 오랫동안 ‘객관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 왔다. 역사가는 자신의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오직 사료만 말해야 한다는 믿음이 널리 퍼졌다. 랑케(Leopold von Ranke)의 “있는 그대로 보여 주라”는 명제는 역사학의 기본 원칙처럼 받아들여졌다. 

물론 이는 신화와 전설 중심의 역사 서술을 벗어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났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는 원칙이 점차 사실을 나열하는 것 자체를 역사학이라고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오늘날 많은 역사책은 사건을 시간순으로 정리하고, 원인을 몇 가지 설명하며, 사료를 인용하는 데서 멈춘다. 독자는 수많은 정보를 얻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에는 답을 듣지 못한다. 

왜 그 사건이 일어났는가? 왜 어떤 사회는 성공했고 어떤 사회는 실패했는가? 인간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미래에는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이 사라지는 순간 역사학은 백과사전과 크게 다르지 않게 된다.

철학은 역사의 목적을 묻는다. 인간은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 국가는 왜 흥망성쇠를 겪는가? 자유와 권력은 어떻게 균형을 이루는가? 제도는 왜 어떤 시대에는 성공하고 어떤 시대에는 실패하는가? 이런 질문은 통계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역사철학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헤겔은 역사를 자유의식이 발전하는 과정으로 이해했고, 마르크스는 생산관계의 변화 속에서 역사의 법칙을 찾으려 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흥망을 ‘도전과 응전’으로 설명했으며, 칼 포퍼는 역사에 절대적인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하이에크는 인간 이성이 사회 전체를 설계할 수 있다는 믿음 자체를 경계했다. 서로의 결론은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다. 모두 역사 속에서 인간 사회를 관통하는 원리를 찾으려 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역사철학이다.

반면 오늘날 일부 역사학은 이러한 거시적 질문을 스스로 포기하는 경향을 보인다. 미시사, 생활사, 지역사, 구술사 연구는 분명 중요한 성과를 남겼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복원했고, 기존 정치사 중심의 한계를 보완했다. 

그러나 숲을 보지 못한 채 나무만 연구하는 풍조가 자리 잡는다면 역사학은 점차 사회 전체를 설명하는 힘을 잃게 된다. 작은 사실은 많아지지만 큰 통찰은 사라진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역사학에서도 적지 않게 나타난다. 특정 사건의 세부 경위를 밝히는 연구는 넘쳐나지만, 그것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발전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동아시아 문명사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설명하는 작업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사료 해석은 정교해졌지만 철학적 사유는 빈약해졌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역사는 본질적으로 비교의 학문이기도 하다. 조선만 연구해서는 조선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일본을 함께 보아야 하고, 청나라와 영국, 프랑스, 독일까지 살펴야 한다. 비교는 단순한 대조가 아니라 구조를 발견하는 작업이다. 

왜 메이지 일본은 근대 국가 건설에 성공했고 조선은 어려움을 겪었는가? 왜 어떤 국가는 산업혁명에 적응했고 어떤 국가는 그렇지 못했는가? 이러한 질문은 단순한 사실 나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정치철학과 경제학, 심리학, 사회학을 함께 활용해야 비로소 답에 접근할 수 있다.

역사심리학 역시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어떤 이는 체제에 순응했고 어떤 이는 저항했다. 같은 정보를 접하고도 왜 서로 다른 선택을 했는가? 이것은 연표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인간의 인지, 감정, 위험 인식, 집단심리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역사가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인간에 대한 철학적 이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인공지능 시대는 이러한 변화를 더욱 앞당기고 있다. 사실 검색과 자료 정리는 이제 사람이 독점하는 능력이 아니다. 수십만 건의 문헌을 분석하고 연표를 만드는 일은 AI가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한다. 

만약 역사학이 사실을 정리하고 해설하는 데 머문다면 그 경쟁력은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 인간 역사가의 역할은 자료를 모으는 사람이 아니라 자료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으로 바뀔 것이다. 해석과 통찰, 철학적 종합은 여전히 인간의 중요한 영역이다.

좋은 역사학자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깊이 질문하는 사람이다. 사료를 외우는 사람보다 사료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사람이 더 큰 역사가다. 역사의 목적은 과거를 기억하는 데만 있지 않다.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건을 넘어 구조를 보고, 구조를 넘어 인간을 보며, 인간을 넘어 문명의 원리를 탐구해야 한다.

역사는 과거에 관한 학문이지만, 동시에 미래를 위한 학문이다. 사실은 역사학의 출발점이지만 결코 종착점이 아니다. 사실을 연결하고, 비교하고,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역사가 살아난다. 

철학이 없는 역사학은 기록은 남길 수 있어도 지혜는 남기지 못한다. 앞으로의 역사학은 더 많은 사실을 쌓는 경쟁이 아니라, 더 깊은 질문을 던지는 경쟁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인공지능 시대에도 역사학이 계속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며, 사실의 나열과 해설을 넘어 철학적 조망을 갖춘 새로운 역사학이 요구되는 까닭이다.


◆ 松山(송산) 정광제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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