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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난중일기] 이제 결말이 예정되어 있다
  • 방민호 서울대 교수
  • 등록 2026-08-11 19:5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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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3일은 새로운 국면, 진정한 국민주권 혁명의 또다른 서막이었다. Ⓒ한미일보

그날 이후로 앞날을 밝게 예측할 수 있는 날은 드물었다. 가슴 조이는, 가슴 아픈 나날들이었다.

그분이 체포되어 갈 수밖에 없을 듯한 그 겨울날, 한남동에서 우리는 자유를 그토록 갈구하는데도 새벽 아침에 컵라면을 배급받아 먹는 죄수들 같았다. 주먹밥을 얻어 들고 양지바른 곳을 찾아 떨며 걸음을 옮기는 죄수처럼 우리는 죄도 짓지 않았는데 갇혀 있는 것 같았다.

그분이 서울구치소에서 잠시 나오실 때, 주먹을 쥐시고, 환호하는 이들을 향해 애써 눈물을 참고 밝은 빛을 띠시고 또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하실 때, 비록 앞날은 밝다고 할 수 없다 해도 우리에게는 빛을 되찾는 듯한 기쁨이 있었다.

좋은 시간은 결코 길지 못했다. 넓고 깊은 흉계, 악의 있는 자들의 말도 안 되는 궤변, 거짓 증언들, 지렁이 글씨며 ‘인원 끌어내’를 ‘의원 끌어내’로 짜고 조작하는 술수, ‘헌법 자판소’라는 끔찍한 야만, 법복 입은 사기사들의 허튼소리들 속에 죄인 아닌 죄인은 감옥에 갇혔다. 하이에나 떼들의 환호작약 소리는 춥고 어두운 들판 위로 길게 퍼져갔다.

결코 굴복한 것은 아니었으되 거짓과 기만, 왜곡과 전도의 거센 물결을 헤쳐나가기란 힘겨웠다. 분노와 의기를 발휘해야 했을 뿐 아니라 두려움, 불안, 주저 같은 소극적 감정들을 애써 억눌러 다스려야 하는 긴장된 심경의 연속이었다.

그 사이에 우리는 인간사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겪었다. 친구를 고자질하고 손가락질하며 자기는 살고 올라가려는 의도, 알고도 모른 체하는 비겁과 무책임, 덫에 빠진 자를 고소해하는 야비함, 옳든 그르든 대세에 편승하려는 기회주의 같은 것들은 인간에 대한 회의마저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무엇보다 우리는 지식인이 얼마나 무딘지, 둔감한지, 무식한지, 얼마나 본질을 꿰뚫는 데 무기력한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네들은 낡은 도그마와 궤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아집쟁이들이었다. 좌우라는 고정관념에 붙박인 채 실상을 새 눈 뜨고 보려는 어떤 노력도 기울일 수 없는, 무능력할 뿐 아니라 진실을 외먼하는 이들이었다.

기막힌 것은, 산채정권이 개헌을 하겠다고, 연임을 하겠다고 할 때조차 그이들 중 누구도 이를 비판하고 나서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분이 장기집권을 하려고 계엄을 했다고, 터무니없는 비난을 하고 나선 그이들 아니었던가. ‘지식’ 자가 붙은 일군의 문학인들은 몇 글자씩 혹독한 비난의 문구를 줄줄이 달아 내란 시도 운운, 야단법석을 피우지 않았던가.

그러는 사이에 6·3의 날이 닥쳤다. 6월3일 하루 전날까지만 해도 또다시 부정선거는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산채정권의 기획대로 예정된 결과가 도출되고 나면, ‘입틀막법’ ‘원포인트 개헌’ ‘공소 취소’ 같은 것들이 빠른 속도로 뒤따르는 막장 드라마가 펼쳐질 것 같았다.

두려운 것만은 아니었지만, 이상견빙지(履霜堅氷至), 서리가 내리면 머지않아 얼음이 얼리라고, 또 다른 시련이 닥칠 수도 있음을 각오해 두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6월3일은 새로운 국면, 진정한 국민주권 혁명의 또다른 서막이었다. 가짜 국민주권 정권에 맞서 국민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다시 한번 선언하는 날이었고, 청년 학생들이 이 선언의 대표자로 나섰다. 

부정선거로 가짜 국회를 만들고, 온갖 악법을 지어내고, 위법 탄핵을 결정하고, 가짜 내란죄를 뒤집어 씌우고, ‘헌법 자판소’가 주문 판결을 자행해 온, 지난 1년6개월이 그날로 종막을 고한 것이었다.

이 6·3 이후로 두 달여 시간이 흘러갔다. 당장 임박해 있을 것 같은 혁명은 지연되고, 선관위·민주당·사법부가 깊이 연계되고 외부 세력이 이들을 유기적으로 엮어낸, 이 가짜 체제는 연명할 수도 있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겉보기만 그럴 뿐이었다. 결말은 예정되어 있는 것이었다. 가짜들의 막장놀이, 가짜 체제의 붕괴가 임박해 있는 것이었다. 가짜 중도, 가짜 변혁의 플래카드는 찢어지고, 그이들의 몸부림은 좌절될 수밖에 없음이 명백해진 것이었다. 머지않아 이 산채정권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것이었다.

지난 두 달간의 변화를 압축해 보자.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단순 실수, 관리 부실’ ‘총체적 관리 체계 부실·붕괴’ ‘투표율 입력 오류 은폐를 위한 전산상 임의 숫자 조정’이라는 각종 변명은 무력화되었다. 이제 사태는, ‘중앙선관위에 의한 전산조작 지시 및 사전 전산 입력’ 정황이 드러나면서 어떤 변명도 소용없는 국면에 접어 들었다고 할 수 있다.

공범 의혹을 받고 있는 사법부는 선관위의 내부 메신저 및 메일에 대한 영장 청구를 기각했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합수본과 주진우 같은 의원은 선관위가 저지른 온갖 부정 행태를 시시각각 국민들 앞에 제시해 주고 있다. 

합수본이나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고, 그 모든 것도 아직 드러나지 않은 부정선거 네트워크의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국민들은 충격과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할 상황이다. 

12·3 때 그토록 신속·민첩하게 난리를 치던 지식인·문학인들은 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날 이후로, 아니 그 이전부터 한국 민주주의의 중대 상황은 한갓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 그이들의 행위와는 아무 상관도 없었던 것이다. 그이들은 언젠가부터 현실의 전개에 어떤 주도적 힘도 발휘하지 못했고, 한갓 선전·선동에 휘말린 누추한 군상들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대들이 추앙해 마지않던 ‘의로운’ 장군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 (두 눈 똑바로 뜨고, 부디 현실을 외면하지 말지어다. 그러나 그대들은 기대할 수가 없다.)

윤상현이니 이준석 같은 이들이 아무리 사태를 오도하려 해도, 부동산이니 주식이니 반도체니 세금이니, 산채정권이 어떤 큰 이슈로 물길을 다른 쪽으로 향하게 하려 해도 예정된 결말은 이제 피할 수가 없다. 이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한국의 지난 민주주의 투쟁의 역사를 온몸으로 경험해 온 이들이라면 그 누구도 이러한 판단ㆍ진단·예측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참으로 오랜만에, 온갖 잡스러운 뉴스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평온을 맛보는 요즘이다. 조작된, 왜곡된 어떤 여론조사도 이 내리막길의 가속도를 축소·분식하지 못할 것이다.

은폐하고, 변명하고, 이를 지지해 온 그이들이 이제 고해할 차례다. 모든 것을 반성하고 후회하는 사람의 표정을 지으시라. 부끄러워하시라. 진실을 밝히고 진실을 진실로 인정할 수 있을 때 새로운 화해가 시작될 수 있으리니. 평화를 회복할 수 있으리니.

“아, 어느덧 첫닭이 울고 뭇 개가 짖도다. 나의 아씨여. 너도 듣느냐.”


◆ 방민호 교수

문학박사, 서울대 국문과 교수. 계간문학잡지 ‘맥’ 편집주간(2022년~)이자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 ‘연인 심청’(2015), ‘통증의 언어’(2019), ‘한국비평에 다시 묻는다’(2021), 서울문학기행(202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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