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진=연합뉴스]
1980년대 후반, 안기부 요원들이 중앙 언론사의 보안 상태를 점검하던 시절이 있었다. 편집국장이 보안 책임자로서 점검을 받고, 때로는 함께 식사하며 촌지를 건네던 모습은 지금 돌이켜보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구태로 치부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 강력한 위세를 자랑하던 언론조차 국가안보와 보안이라는 대명제 앞에서는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보안 문제를 바라보는 국가의 태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선관위가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이유로 국가정보기관의 보안점검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2023년 5월, 선관위는 국정원의 보안점검 권고에 대해 자체적인 보안관리 체계를 강조하며 거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2023년 국가정보원이 실시한 보안점검 결과는 국민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국정원은 2023년 10월10일, 선관위의 투·개표 시스템에서 심각한 사이버 보안 취약점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실제 가상 해킹을 통해 선거인명부의 일부 정보를 변경하거나 개표 관련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취약점 등이 드러난 것이다.
특히 국민을 경악하게 한 것은 일부 주요 시스템에서 사용된 비밀번호였다. 숫자 ‘12345’나 장비의 초기 설정값인 ‘admin’ 등이 그대로 사용된 사례가 확인됐다. 국가 선거를 관리하는 핵심 시스템에서 보안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단지 ‘패스워드 12345’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과거의 선거가 조작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비밀번호가 국가 선거 시스템에 방치됐다는 사실 자체는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국정원의 모의해킹 과정에서는 내부망과 선거 관련 시스템 전반의 보안 취약점이 드러났다. 가상 해킹을 통해 선거인명부와 개표 관련 데이터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입증된 것이다.
이는 지난 6·3 선거에서 드러난 투표용지 부족 사태, 투표율 조작 의혹, 확률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득표 현상 등과 맞물려 부정선거에 대한 의구심을 더욱 키웠다.
이에 2030 세대를 주축으로 한 시민들이 올림픽공원에서 24시간 동안 석 달 넘게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를 외치며 민주시민혁명을 촉발시켰고, 결국 정부도 특검을 출범시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동안 부정선거 의혹을 전면 부인해 오던 선관위 역시 연이어 터져 나오는 정황 증거와 부정선거 정황 앞에 결국 특검을 수용하며 조직 와해의 위기에 봉착했다.
부정선거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조해주, 윤호중, 이해찬, 고한석, 양정철(왼쪽부터). [사진=연합뉴스]
많은 국민은 지난 2월 이준석 대표와 전한길 대표 측의 부정선거 토론회에서 VON 김미영 대표가 주장한 ‘부정선거 5적’의 향방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김 대표는 자신을 고소하라며 윤호중, 조해주, 이해찬, 고한석, 양정철 등 5명을 부정선거의 주모자로 지목했다.
그러나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주장하며 고소를 제기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해찬 전 대표는 고인이 되었고, 양정철 전 원장의 행방은 묘연하다. 현직 행안부 장관인 윤호중을 포함해 국내에 거주하는 대상자 3명 역시 그 어떤 법적 대응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침묵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생명은 공정한 선거와 그 결과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달려 있다. 그 신뢰가 무너지면 민주주의의 뿌리마저 흔들린다. 이제는 진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특검은 관련 의혹을 철저히 조사해 의혹이 사실인지 아닌지 명백히 밝혀내야 한다.
야당의 일부 의원들 역시 부정선거의 수혜를 입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존재하는 만큼, 국민이 원하는 것은 특정 진영을 위한 편향된 수사가 아니라 ‘성역 없는 수사’다.
일부 민간 전문가들이 제기해 온 ‘FOLLOW THE PARTY’와 같은 해커의 흔적, 중국산 통신장비의 백도어 의혹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이 실제 외부 세력의 침투 흔적인지, 아니면 단순 데이터 분석 과정의 오류인지는 정치적 공방이 아닌 전문기관의 과학적 포렌식 검증을 통해 가려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특검이 국정원의 전문 인적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아울러 특검은 ‘2001년 단둥에서 북한 해커들과 남한 관계자들이 전자개표기 조작 기술을 공동 개발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당시 남북 IT 협력사업의 실체, 참여 기업, 개발 내용, 관련 소프트웨어 및 기술 이전 여부 등을 세부적으로 조사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부정선거 관련 선거관리 역량 강화 및 장비 지원 사업을 진행해 오며 국제적 의혹을 받고 있는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에 대해서도 선관위 측 주장만을 신뢰하지 말고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2018년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에 공급된 터치스크린 투표 시스템 및 2004년 필리핀 총선 당시 지원된 900여 대의 전자개표기가 필리핀 대법원에서 부정선거 우려로 폐기 처분되었다는 보도의 진위 역시 상세히 파악해야 할 것이다.
DR콩고의 시민이 조악하게 인쇄된 투표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이 바라보는 특검의 1차적인 수사 대상은 단연 선관위다. 그동안 선관위를 비호해 온 더불어민주당의 행태를 바라보는 국민의 눈높이는 매우 높아졌다. 따라서 특검의 수사 역량 역시 이에 비례하여 높아져야 한다.
선관위의 비위와 구조적 문제를 집중적으로 압박하는 것도 수사의 중요한 기법이 될 수 있다. 선관위 조직이 과거 자유당 시절의 최인규처럼 부정선거의 주체가 되어 모든 처벌을 홀로 감당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그들은 부정선거의 배후 세력이 끝내 자신들을 구원해 줄 것이라 믿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믿음이 깨어지는 순간, 부정선거의 카르텔은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위기에 봉착한 선관위는 결국 부패와 공작의 진원지를 지목하게 될 것이다. 이재환 특검은 내란종합특검과는 차별화된 수사 행보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자유대한민국을 구하는 생명줄이 될 것이며, 그 파장은 국민 여론의 향방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강신철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탁월한 역량을 갖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여론의 추이에 따라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일부 정치인들과 달리, 실력 하나로 3대에 걸쳐 승승장구하며 4성 장군이자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에까지 오른 강 후보자가 흔들리는 안보문제에 직면한 상황에서 그가 한미관계의 중요성이나 모교의 폐교 문제 같은 사안을 모를 리 없다.
그렇지만 안일한 불의의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할 것인가 라는 명제앞에서 그의 태도를 결정할 핵심은 결국 여론이다. 위정자와 공직자들은 여론의 수치와 민심의 무게에 따라 움직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추석을 전후한 민심의 동향 속에서 여론의 주체인 국민 각자의 책임은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우리가 자유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눈을 서슬같이 시퍼렇게 뜨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정성홍
한미일보 회장
前 스카이데일리 민간5·18진상규명조사위원장
前 국가정보원 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