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와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1350.4원으로 내려갔고 코스피는 6687.21로 마감했다. [사진=연합뉴스] 이번 주 시장 흐름의 이름은 ‘바이 코리아 없는 원화 강세’다.
통상 원화가 빠르게 강해질 때는 외국인의 국내 주식·채권 매수가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는 달랐다.
8월31일부터 9월4일까지 코스피에서 개인은 3조619억원, 외국인은 2조5141억원, 기관은 8701억원을 각각 순매도했다. 반면 기타법인은 6조4685억원을 순매수했다.
그런데 원/달러 환율은 4일 1350.4원까지 내려갔다. 전 거래일보다 8.9원 하락했고 원화 가치는 지난해 6월 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다.
외국인이 주식을 팔아 달러 수요를 만들었는데도 원화가 강해진 것이다.
답은 외국인의 주식 거래보다 강한 달러 공급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의 7월 경상수지 흑자는 420억8000만달러로 6월 497억3000만달러에 이어 월간 역대 두 번째 규모를 기록했다. 상품수지 흑자만 404억3000만달러였다. 1~7월 누적 경상수지 흑자도 2330억9000만달러에 달했다.
8월에도 수출은 982억5000만달러, 반도체 수출은 466억5000만달러로 역대 최대였다. AI 반도체 호황이 기업이 보유한 달러를 크게 늘리고, 수출기업의 네고 물량이 서울 외환시장에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구조다.
따라서 지금 원화 강세의 첫 번째 동력은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공격적으로 사기 때문이라기보다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달러 공급이 크게 늘어난 데 있다고 보는 편이 현재 데이터에 더 부합한다.
엔화도 힘을 보탰다. 엔화는 지난주 달러 대비 약 2% 강세를 보였고, Reuters에 따르면 시장은 9월 일본은행(BOJ)의 25bp 금리 인상 가능성을 97%까지 반영했다. 엔화 강세와 함께 원화 등 아시아 통화의 투자심리도 영향을 받았다.
일본은행의 차기 금융정책결정회의는 9월17~18일로 예정돼 있다.
한국은행이 8월27일 기준금리를 2.75%에서 3.00%로 0.25%포인트 올린 것도 원화에 우호적인 방향이다.
SK하이닉스 ADR 자금은 따로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265억달러 규모 ADR 발행 뒤 대규모 환전 기대가 원화 강세 심리를 키운 것은 사실이다. 다만 Reuters는 소식통을 인용해 외환당국이 이 가운데 약 200억달러를 외국환평형기금을 통해 장외에서 직접 매입했다고 보도했다. ADR 자금 전체가 현물환 시장에 쏟아져 환율을 떨어뜨렸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번 현상은 한국은행이 올해 제기했던 구조적 문제와도 대비된다.
한국은행은 지난 4월 보고서에서 2023년 2분기 이후 경상수지 흑자가 확대됐는데도 원화가 약세를 보이는 현상이 상당 기간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의 해외자산 축적이 공공 외환보유액 중심에서 민간 포트폴리오 투자 중심으로 이동했고, 주민의 달러자산 수요와 저축 확대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도 커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기록적인 수출과 상품수지 흑자로 발생한 달러 공급이 이런 구조적 달러 수요를 단기적으로 압도하는 모습이다.
지난주 체크포인트 결과
원화 강세와 외국인 매수의 재결합은 ‘실패’다. 환율은 1350원대로 내려갔지만 외국인은 주간 2조5141억원을 순매도했다.
반도체 수출 호조가 외국인의 대형 반도체 매수로 이어질 것이라는 가정도 ‘실패’였다.
반면 기업발 달러 공급이 환율 하락을 이끄는 흐름은 ‘강한 확인’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4일 하루에는 외국인이 코스피에서 5034억원을 순매수하며 6거래일 만에 매수 우위로 돌아섰다. 추세 전환인지는 다음 주 확인해야 한다.
다음 주 체크포인트
첫째는 원/달러 1350원선 안착 여부다. 장중 일시적 돌파보다 이 수준 아래에서 며칠 동안 버티는지가 중요하다.
둘째는 외국인의 삼성전자·SK하이닉스 수급이다. 외국인 주식 매수까지 원화 강세에 합류한다면 지금과는 성격이 다른 환율 하락이 시작될 수 있다.
셋째는 엔화다. BOJ의 추가 긴축 기대와 엔화 강세가 이어지는지 봐야 한다.
현재 데이터를 종합하면 한미일보는 적어도 연말까지 원화 강세 쪽의 힘이 조금 더 우세한 시나리오에 무게를 둔다. 기록적인 수출과 경상흑자, 수출기업의 달러 공급,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엔화 반등이 모두 같은 방향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이 곧바로 1200원대 복귀를 뜻하지는 않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해외 포트폴리오 투자는 2024년 670억달러에서 2025년 1403억달러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국내 자금의 해외투자 확대는 계속해서 구조적인 달러 수요를 만든다.
지금 확인해야 할 것은 “1400원대가 끝났는가”가 아니라 “환율의 중심축이 1300원대로 내려가고 있는가”다.
한미일보는 이번 주중 별도의 ‘환율 집중 데이터 리포트’를 통해 실질실효환율, 경상수지, 해외증권투자, 한미 금리차 등을 토대로 원/달러 1300원대의 지속 가능성과 1200원대 진입 조건을 따로 검증할 예정이다.
과도하게 단정하면 안 되는 점
경상수지 흑자 420억8000만달러가 그대로 외환시장에 공급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외화예금, 해외투자, 배당과 결제 일정 등에 따라 실제 네고 규모는 달라진다.
원화 강세가 장기 추세로 완전히 굳었다고 단정하기에도 이르다.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과 중동발 유가 상승은 언제든 달러 수요를 다시 키울 수 있다.
이번 주 환율의 핵심은 외국인이 한국을 샀다는 데 있지 않다. 외국인이 팔아도 원화를 밀어올릴 만큼 한국 기업이 벌어들이는 달러가 많아졌다는 데 있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분석을 위한 정보 제공이며 특정 금융상품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 참고자료: 한국은행 국제수지·BOK 이슈노트, 산업통상부 8월 수출입동향, 한국거래소·연합인포맥스, 일본은행, Reuters,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