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은 대만과 다시 손잡을 때가 됐다. 한국은 1949년 중화민국과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한 뒤 40년 넘게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1992년 8월24일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 단교했다. 중국이 내세우는 ‘하나의 중국’ 원칙 아래 베이징과 타이베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했기 때문이다.
1992년의 선택에는 당시의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중국은 개혁·개방을 통해 거대한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었고 한국 기업에는 새로운 기회의 땅이었다. 북한 문제에서도 중국과의 외교관계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있었다.
실제로 수교 이후 한중 교역은 급속히 확대됐다. 당시의 선택을 오늘의 기준으로 비난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1992년에 필요했던 외교정책이 2026년에도 그대로 유지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30여 년 동안 중국은 크게 달라졌다. 경제성장과 함께 군사력을 빠르게 확대했고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에서 주변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다. 한국도 중국의 힘을 직접 경험했다. 2016년 사드 배치를 둘러싼 갈등 이후 관광·유통·문화산업 등에서 한국이 입은 피해는 경제적 상호의존이 언제든 정치적 압박수단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반면 대만은 자유로운 선거와 시장경제, 법치를 갖춘 민주사회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권위주의 체제를 거쳐 민주화를 이루었으며 세계 첨단산업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특히 TSMC는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압도적인 선두기업이다. 한국과 대만은 반도체에서 경쟁하지만 동시에 세계 첨단기술 공급망을 떠받치는 핵심 경제권이다. 이제 대만의 안정은 한국의 경제안보와도 직결된다.
대만해협 역시 남의 바다가 아니다. 이곳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면 세계 반도체 공급망과 동아시아 해상교통망이 동시에 흔들린다. 한국 경제도 충격을 피하기 어렵다. 중국이 무력을 통해 대만해협의 현상을 변경하려 한다면 이는 중국과 대만만의 문제가 아니다. 동아시아 전체의 안보와 경제질서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대만과 관계를 강화하자는 말만 나오면 먼저 “중국이 어떻게 반응하겠느냐”고 묻는다. 순서가 거꾸로다. 중국의 반응은 고려해야 할 외교적 변수이지 대한민국 외교의 최종 결정권자가 아니다. 한국 외교의 기준은 베이징의 허락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익이어야 한다.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 역시 중국의 국가적 입장이다. 대한민국이 중국과 외교관계를 유지한다고 해서 대만과의 정치·경제·기술 교류까지 중국이 정한 범위에 맞춰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도 중국과 수교하면서 동시에 대만과 긴밀한 실질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도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
우선 한·대만 관계를 실질적인 준외교관계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고위급 교류와 의원외교를 확대하고 반도체·AI·배터리·사이버안보 등 전략산업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중국에 집중된 공급망을 줄이고 미국·일본·대만 등과 경제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한국의 선택권을 넓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대만과의 국교 회복도 외교적 선택지에 올려놓아야 한다. 이것은 내일 당장 중국과 단교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국제환경과 중국의 행동, 대만해협의 정세가 달라질 경우 대한민국이 재수교까지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외교에서 선택지를 스스로 없애는 것은 좋은 전략이 아니다.
물론 대만과의 재수교에는 상당한 비용이 따른다. 중국은 강력하게 반발할 것이며 외교·경제적 압박도 예상해야 한다. 북한 문제 역시 고려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준비가 필요하다.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을 다변화하며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경제·안보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중국의 보복이 두려워 대만과의 관계를 스스로 제한한다면 중국은 한국에 압력을 가할 이유를 더 많이 갖게 된다. 반대로 한국이 다양한 외교적·경제적 선택지를 확보할수록 중국 역시 한국을 함부로 대하기 어려워진다. 외교적 자율성은 상대의 선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 능력에서 나온다.
1992년 대한민국은 중국과의 수교를 선택했다. 그것은 당시 대한민국의 국익에 따른 판단이었다. 그러나 국제질서는 변했다. 중국은 경제협력 상대인 동시에 동아시아의 세력 질서를 바꾸려는 강대국이 됐고, 대만은 자유민주주의와 세계 첨단산업의 중요한 축으로 성장했다.
‘대만과 국교를 회복하자.’
당장 실행하자는 구호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외교적 선택권을 되찾자는 주장이다. 중국과 협력할 것은 협력하되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대만과의 관계를 스스로 제한할 필요는 없다. 1992년에는 1992년의 선택이 있었다. 이제 2026년의 대한민국은 2026년의 국익에 따라 다시 판단해야 한다.

◆ 松山(송산) 정광제
시사 칼럼니스트이자 시인, 역사·철학 연구자. 이승만학당 이사와 철학포럼 리케이온 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자유주의작가회의 사무총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시집 ‘하다못해 가슴에라도’외 3권이 있으며 공역 ‘후크고지의 영웅들’과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 ‘문학의 세계와 사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