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에는 역모와 고변이라는 단어가 수없이 등장한다. 내란 음모인 역모와 고자질을 다 합치면 무려 1,000회를 넘어선다고 한다. 역모와 탄핵으로 시작해서 역모와 탄핵으로 끝난 것이 조선 500년이었다. 그 가운데는 터무니 없거나 포복절도할 만한 고변도 하나 둘이 아니다.
선조 28년 (1595년) 음력 11월 초 의금부가 “곽희정 부자가 모반을 고변했습니다. 죄인을 신문해야 할 듯합니다”고 임금에게 아뢴다. 그런데 고변 내용이 코믹하다. 강효남이 “우리 나라에는 장수가 없다. 만일 능히 안개를 일으키고 목마(木馬)를 부릴 수 있는 자라야 진짜 장수다”라는 참언했다는 진술이 들어 있다. “이성남의 본명은 언남으로 정여립의 난 때에 성남으로 고쳤는데, 능히 안개를 일으키고 둔갑해 몸을 숨기며 노루나 사슴이 되기도 하니 그 몸의 있고 없는 것을 어느 곳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라는 죄인 진술도 있다고 첨언했다.
헐∼! 이쯤 되면 의금부가 알아서 사건을 종결시켜야 마땅했다. 요즘 말로 공소기각이나 각하다. 하지만 추국은 무려 한 달간 진행됐다. 11월 실록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럼, 그 끝은? 12월 1일에 가서야 ‘근거할 단서가 없음(終無端緖)’이라고 실록은 기록했다.
엉터리 역모와 고변 사건을 들어봤으니, 이번에는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인용’ 당시 복사·붙여놓기한 것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의 조선판 탄핵 상소 내용을 들여다 보자.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사망한 바로 그날, 이순신을 발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재상 류성룡을 대상으로 조정 신료들이 벌떼처럼 탄핵 상소를 올렸다.
“성룡은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질로 요령 있게 처신하여 남을 해쳐도 사람들이 모르고 세상을 속여도 세상이 깨닫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그의 평생 동안의 심사입니다…나라를 그르치고 백성을 병들게 한 죄는 하나뿐이 아니고 너무나 많습니다…어떻게 그 죄를 징계하여 백성에게 사죄하겠습니까. 삭탈관작을 명하소서.”(국역 선조수정실록, 선조31년 11월 1일)
선조는 삭탈관작만은 심하다며 파직으로 끝냈다. 전쟁 7년간 국가의 위기 극복에 신명을 바쳤던 충신의 등에 왕이 윤허의 칼을 꽂은 것이다. 당시 탄핵 상소의 주역들은 사간원·사헌부·홍문관 전부였다. 연상되는 것이 없는가. 지금의 국회와 수사기관들과 헌재와 언론이 윤석열 전 대통령을 탄핵하고 삭탈관작한 행위와 판박이다. 혐의 내용이 내란죄와 외환유치죄의 짬뽕이요, 비빔 범벅인 것도 판박이다. 시대는 변해도 인간성은 변하지 않는다.
‘방금 들어온 고변입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권력층 실력자들과 밤길 서초동 뒷골목 GS25 편의점 바깥 테이블에 모여 앉아 새우깡에 소주를 까면서 친위 쿠데타 음모를 꾀했다고 합니다.’
민간에서 처음 이런 고변이 나온 것은 지난 5월 10일이었다. 유튜버 정천수 씨는 열린공감TV에서 ‘취재 첩보원’의 제보라며 음성을 공개했다. 음성 속 인물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4월 4일 윤석열 탄핵 선고가 끝나고 조희대, 정상명(전 검찰총장), 김충식(김건희 여사 모친의 측근), 한덕수(전 국무총리) 4명이 만나서 점심을 먹었다. 그 자리에서 조희대가 ‘이재명 사건 대법원에 올라오면 알아서 처리한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밝혔다. 이것이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이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된 배경이라는 것이다.
나흘 뒤 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국회에서 이 녹취를 틀었다. 다음은 부승찬 의원. 지난 16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제보를 접했다”며 조 대법원장 수사를 촉구했다. 그러나 유튜브 ‘열린공감TV’ 측은 18일 “녹취 속 제보 내용은 전언(傳言)이고, (사실 여부가) 확인된 것이 아니다”라고 자진 고백했다. 이 유튜브 주장을 근거로 조 대법원장의 사퇴와 탄핵을 주장해 온 민주당은 “의원 개인의 의견일 뿐, 정확한 정보는 아니다”라고 발뺌했다. 그러면서도 조사는 계속해야 한다는 사족을 빼놓지 않았다. 일단 천하 제일검, ‘특검’ 과정을 통해 죽도록 괴롭히자는 꼼수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더불어민주당이 조희대 대법원장의 비밀 회동 의혹을 제기하면서 근거로 제시한 녹취 음성이 AI로 제작된 것이라며 “가짜 뉴스 선동”이라고 비판했다.
이 땅에서 가짜 고변은 끝을 모른다. 유치찬란함도 변함이 없다. “능히 안개를 일으키고 둔갑해 몸을 숨기며 노루나 사슴이 되기도 하니 그 몸의 있고 없는 것을 어느 곳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와 급수를 같이 할 정도다. 물론 서영교, 부승찬 의원은 검은 있지만 쓰지 않아도 이길 수 있는 경지 즉 무협지 속 ‘무극검법’으로 조희대 대법원장의 숨은 정체를 까밝힐 수 있었다고 자랑한다.
목불인견(目不忍見)이라고 했나? 보다 못했는지 우리 시대의 최고 어른이 직접 나섰다. 그분은 가짜뉴스는 “민주주의 적”이라고 질타한 후 “가짜뉴스에 기생하고 여기에 기대 나라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는 당의 역량을 총동원해 반드시 퇴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르신의 분노 게이지는 평소와 달랐다. 표현 용어조차 대단히 강경했다.
“뻔뻔스럽게 가짜뉴스를 유포하고 그 속에서 이익을 얻으면서도 가짜뉴스에 문제를 제기하니까 마치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처럼 반격하고 있다…온갖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진실을 가리는 부패하고 부정한 악인들이 마치 선인들처럼 세상 사람들 앞에 서 있다…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짜뉴스를 반드시 뿌리뽑아야 한다.”
물론 발언의 시간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지난 1월 13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이재명 현 대통령(당시 당대표)께서 하신 말씀이다. 서영교 부승찬, X됐다.
이신우 前 문화일보 논설고문·‘부정선거와 내란범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