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논설위원·육사 40기국가의 안보는 나라를 지키겠다는 굳건한 사명과 동맹으로 월등한 힘을 만든다는 안보철학과 고도의 무기로 만든다. 그러나 우리의 안보는 늘 정치의 파도에 흔들려불안한 상태를 유지해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의 손에 국방정책은 방향을 잃었고 예산을 낭비했으며 군은 정쟁의 희생양이 되었다.
1980년대에는 군이 정치의 중심에 있었고, 1990년대 이후에는 정치가 군을 통제하며 그 반작용으로 안보의 균형이 무너졌다.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대화 우선”과 “강경 대응”이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했고, 그 사이에 국민은 혼란을 겪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햇볕정책’이라는 이름으로 군비가 줄었고, 2010년 천안함 폭침 이후에도 정치권은 원인 규명보다 정쟁에 몰두했다. 2018년에는 평화를 앞세운 9·19군사분야합의로 안보의 눈을 가리고 손발을 묶는 적의 졸개 짓을 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안보를 정치 무대에 올려놓고 흔들어 대고, 안보 조직을 정치의 속물로 삼고, 군마저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된 결과, 군의 사기는 흔들리고, 한미동맹은 약화되었으며, 국민의 신뢰는 무너졌다. 낌새를 챈 일부 부자들과 외국인이 탈출하고 있다.
1. 정치에 의한 전략적 안보 공백 현상들
오늘 대한민국의 안보는 두 개의 위기 축 위에 서 있다. 하나는 외부의 위협에 대처를 못 하는 전략적 공백과 내부에서 안보역사를 왜곡하고 군의 명예를 훼손하여 사기를 꺾는 정신적 공백이다. 이 두 공백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다가오지만, 결국 국가의 계속성과 국민의 생명을 위협한다. 적의 총탄이 날아오기 전에, 국가의 의지가 먼저 붕괴되는 현상을 보고 있다.
2025년 6월, 대한민국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신형 잠수함 ‘장영실함’이 진수됐다. 그러나 그 역사적 순간에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단순한 일정상의 불참으로 포장되었지만, 이는 세계가 지켜보는 자리에서 국가 안보의지의 공백을 노출한 사건이었다.
동북아는 지금 ‘해양 주도권 경쟁’의 시대로 들어섰다. 일본은 원자력 잠수함 도입을 검토 중이고, 북한은 핵추진 잠수함 시험 운항을 선언했다. 중국은 이미 원자력 잠수함과 항모를 앞세워 서해와 동중국해를 넘나든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외교적 부담’을 이유로 전략 자산을 공개적으로 자랑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그 직후 북한은 우리의 억제력과 안보의지 부재를 ‘약점’으로 해석했고 탄도 미사일로 도발했다. 적은 우리의 전략적 공백을 읽고 마음 놓고 도발을 반복하는 것이다.
주권 대응의 약화 현상: 공백은 바다에서도 이어진다. 중국이 서해 주권을 침해하는 불법 구조물과 잠수 활동을 벌이는 침탈 현장에 대해서도 '비례 대응' 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은, 단순한 행정 절감이 아니라 주권 포기 행위에 가깝다. 국가의 주권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한 번 물러서면, 상대는 그 후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정치가 외교적 유불리를 이유로 안보를 축소할 때, 주적과 가상의 적은 전략 공백을 날카로운 창으로 공격한다.
2. 안보 역사 왜곡에 의한 정신적 공백 현상들
전략적 공백이 안보와 외교, 정보와 대응이 따로 놀며 국가의 힘을 분산하고 파괴하는 현상이라면, 정신적 공백은 정치 논리에 휘말린 안보 역사 왜곡으로 군의 정체성과 사명과 사기를 무너뜨리는 현상이다. 외부의 공백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정신적 공백에 의한 싸울 의지의 상실과 붕괴다. 군은 국가의 마지막 방패지만, 최근 간부들의 조기 전역 신청은 국가 수호 방패로서의 자존심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다.
역사 왜곡과 정체성 혼란: 군의 역사는 단절이 아니라 계승이다. 독립군의 투혼과 국군의 헌신은 같은 뿌리에서 자란 정신이다. 그러나 최근 군의 정통성을 국가가 없었던 독립군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은 국군의 빨치산 소탕과 6·25 전쟁 때 공산군 저지와 대침투 작전 공헌을 폄훼하는 짓이다.
여순 사건 생존 장교 최석신 장군의 증언: “국민을 향한 총은 남로당이 겨눴다”며 여순 사건의 본질은 공산폭동이라 강조하는데, 여순 반란군의 항명을 정당화하는 발언을 했다. 이런 왜곡은 장병들의 사기를 꺾고 군의 정체성을 혼란에 빠뜨린다.
국정감사장에서 합참의장과 지작사령관은 “과거 군이 내란에 가담했다”고 발언하며 군 전체를 역사 논쟁 속으로 끌어들였다. 물론 정치적 압박에 의한 발언이었겠지만 그 한마디는 수십만 장병에게 “너희가 지킨 나라가 정당하지 않았다”는 자부심을 파괴하는 신호를 주었고, 상명하복의 신앙적 명령체계를 깨트렸다.
장병의 사기, 즉 ‘내가 왜 싸워야 하는가’라는 이유가 흔들릴 때, 군의 정신적 전력과 전투력은 급속히 약화된다. 무기보다 강한 힘은 신념이다. 그 신념이 정치의 언어로 흔들릴 때, 유사시 총을 잡아도 싸워 이기겠다는 의지는 사라진다. 정신적 공백을 치유하지 못하면 유사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수 없다.
과거의 잘못은 평가하되, 그 평가가 현재의 사명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군은 정치의 실험실이 아니라 헌법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다. 정신적 공백과 충격을 막는 길은 군이 정치권력에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 자존감과 명예를 지켜야 한다.
3. 군은 안보의 절대 성역을 확보하고 지켜라
지금 우리는 외부의 전략적 공백과 내부의 정신적 공백이라는 이중의 위기 앞에 서 있다. 정치가 계속 안보를 흔드는 순간, 국가는 내부 균열로 먼저 무너진다. 안보는 정권의 것도, 이념의 것도 아니다. 국가의 생존이 걸린 여야가 없는 절대 성역이다. 군인에게 안보 중립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안보 정책은 위정자의 정치적 계산이 아니라, 전쟁 방지와 국익과 국민의 생명을 기준으로 결정해야 한다.
통치자는 안보 행사를 통하여 전략 자산을 국민에게 당당히 보여야 한다. 외세의 도발에는 단호히 대응하고, 군의 정체성과 사기를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권은 군을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고, 군 스스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여 안보의 성역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대한민국 주권을 지키는 방어선이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다, 안보를 계속 간첩들의 농단에 맡길 것인가? 군이 위기를 직감하고 국가 생존의 사명감을 되살릴 것인가? 군은 근본적 물음 앞에 지혜로운 방안과 안보 소신을 찾아야 한다. 민심과 군심은 군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안전한 미래를 보장하는 튼튼한 조직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박필규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