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유리문과 철창문, 두 개의 문 앞에 선 한국. 자유의 질서로 나아갈 것인가, 통제의 질서로 후퇴할 것인가. 한미일보 그래픽
26일 치러진 아르헨티나 중간선거에서 우파가 압승했다. 그러나 페론주의 좌파가 남긴 상처는 너무 깊다. 그들의 정치적 유산은 경제를 마비시키고 사회를 복지의 환상 속에 가둬버렸다. 트럼프의 공개 지지에도 불구하고 회복 가능성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진단이다.
한때 남미의 번영을 상징하던 아르헨티나는 이제 포퓰리즘의 교과서가 되었다. 권력이 시장을 지배하고 정치가 경제의 질서를 대체했을 때, 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장이 되었다.
며칠 뒤 부산 해운대에서 한미정상회담이 열린다. 이재명 정권은 미국과의 무역협상 타결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국민이 궁금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방향이다. 정권 스스로는 미중 사이의 중간자라 주장하지만, 많은 국민은 이미 안다. 그들이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식 통제모델에 기울어 있다는 사실을. 외교의 언어로는 중도지만, 경제와 권력의 행태로 보면 분명한 친중 정권이다.
중국을 선택한다는 것은 ‘자유의 질서’보다 ‘통제의 질서’를 선호한다는 뜻이다. 세계사는 이미 사회주의적 통제 체제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줬다. 단 하나 살아남은 중국조차 미국의 시장, 기술, 금융 시스템 속에서 자라났다. 그것을 망각하는 순간, 우리는 20세기의 망상으로 되돌아간다.
AI 자본주의의 시대는 생산량이 아니라 알고리즘의 설계, 노동력이 아니라 데이터의 신뢰로 국가의 미래가 결정된다. GDP로 서열을 따지는 시대는 끝났고, 기술의 규칙을 누가 설계하느냐가 주권의 척도가 되었다.
한국이 미국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내가 선택한 이유는 5가지이다.
첫째, 자유의 질서는 불완전하지만 스스로를 고칠 수 있는 체제다. 미국식 민주주의는 언제나 시행착오와 비판 속에서 진화해왔다. 법이 권력을 제어하고 언론이 실수를 기록하며 시민이 다시 제도를 세운다. 반면 중국식 통제 질서는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류는 반역이 되고 반역은 소멸된다. 완벽해 보이지만 고칠 수 없는 체제보다, 불완전해도 스스로를 고치는 체제가 더 강하다.
둘째, 기술과 데이터의 규칙은 이미 미국이 만들고 있다. 인공지능, 반도체, 양자, 사이버보안의 표준은 워싱턴과 실리콘밸리의 언어로 설계된다. 중국이 공장을 세우고 물량을 늘려도, 규칙을 설계하는 힘은 미국이 쥐고 있다. 미국을 떠난다는 것은 시장을 잃는 게 아니라 규칙의 언어를 잃는 것이다. 산업주권의 언어는 기술표준이며, 그 언어는 워싱턴에서 쓰인다.
셋째, 동맹의 신뢰는 자본과 안보를 함께 지킨다. 한미동맹은 더 이상 군사적 조약이 아니다. 금융, 에너지, 데이터 네트워크를 포함한 산업·기술 동맹으로 확장됐다. 미국식 동맹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 자율적 협력 구조지만, 중국식 동맹은 경제를 미끼로 정치적 종속을 요구한다. 자본의 안전망과 국가의 자율성은 신뢰 가능한 동맹에서만 보장된다. 미국과의 동맹은 자본의 방패이자 주권의 울타리다.
넷째,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는 투명성이다. 데이터가 정치의 도구가 되는 순간 인공지능은 거짓을 학습한다. 중국의 통제형 AI는 국가선전의 엔진으로 작동하지만, 미국의 AI는 검증과 공개, 경쟁을 통해 신뢰를 얻는다. 투명성은 민주주의의 비용이 아니라 AI 시대의 생존 조건이다. 투명한 시스템만이 신뢰 가능한 인공지능을 만든다.
다섯째, 미국은 실패를 기록하고 다시 설계할 줄 아는 문명이다. 금융위기, 전쟁, 정치적 분열을 겪으면서도 미국은 늘 ‘개혁’이라는 언어로 복귀했다. 실패를 숨기지 않고 데이터로 남겨 다음 세대의 자산으로 삼았다. 반면 중국은 성공을 선전하지만 실패를 기록하지 않는다. 미래는 승리의 신화를 쓰는 나라가 아니라 실패의 데이터를 축적하는 나라가 차지한다. 실패를 인정하는 용기가 문명을 진보시킨다.
그들은 늘 국민을 말하지만, 국민을 믿지 않는다. 국민의 이름으로 권력을 세우고 국민의 뜻으로 통제를 정당화한다. 결국 그들이 택한 것은 국민이 아니라 국민으로 포장된 권력이다. 통제의 질서는 그렇게 탄생한다.
자유는 번거롭고 불확실하지만, 통제는 달콤하고 안전해 보인다. 그래서 권력을 탐하는 자만이 통제의 질서인 중국을 선호한다. 그곳에서는 비판이 사라지고, 진실이 설계되고, 권력이 안정된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인간은 사라지고 권력만 남는다.
자유의 질서는 시끄럽고 불완전하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 속에서 인간은 성장하고 사회는 스스로를 고친다. 우리는 어느 쪽의 질서 안에서 살고 싶은가. 자유를 택한다는 것은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용기이자, 인간의 존엄을 믿는 선택이다.
#한미동맹 #미국의선택 #자유의질서 #AI자본주의 #산업주권 #기술표준 #투명사회 #통제의질서 #중국모델 #페론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