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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식 칼럼] 군사분계선 재확인 제안, 전략인지의 결핍과 외교안보 리스크
  • 주은식 한국전략연구소 소장
  • 등록 2025-11-20 06: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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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연합뉴스

주은식 한국전략연구소 소장1953년 정전협정 이후 한반도 안보질서는 군사분계선(MDL)을 중심축으로 유지돼 왔다. 군사분계선은 국제법상 영토 경계선과 동일한 개념은 아니지만, 정전체제 유지의 최소 안전장치이며, 남북 어느 측도 일방적 해석이나 변경을 주장할 수 없는 준(準)국제적 규범적 장치다. 그러나 17일 국방부가 남북 군사회담을 통해 “군사분계선의 정확한 위치 재확인 및 재표시”를 제안했다는 보도가 나오며, 이 제안이 과연 우리의 안보전략과 군사 현실에 부합하는지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김홍철 정책실장이 발표한 담화문에 담긴 발언은 순수한 군사기술적·현실적 조율을 의도한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실제 군사 및 심리전 차원에서는 전략적 오판과 북한의 심리·법리 공세에 스스로 문을 열어주는 행위가 될 위험성이 크다.


MDL 논란은 기술적 문제가 아닌 전략적·의도적 영역


일부 군 관계자는 노후화된 표식물, 산악지형, 수목 변화 등을 이유로 “현장 인식의 혼선 가능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의 MDL 침범 사례는 결코 임의적 표식 미확인이나 항법 오류에 의한 우발적 진입이 아니며, 대부분이 정보·의도 기반 도발, 기동성 평가, 경계태세 시험, 협상 지렛대 확보를 위한 심리전적 행위로 평가된다. 즉, 북한은 MDL을 몰라서 넘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 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MDL 재확인 협상 테이블에 의제를 상정하는 순간, 북한은 이를 영토·지위·군사력 인식전의 공간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며, 우리가 기대하는 “기술적 합의”는 시작 단계에서부터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북한은 기존선이 아닌 역사적·혁명전통·민족해방 투쟁논리를 근거로 주장하는 “새로운 기준선”을 들고 나올 것이며, 이는 추가 협상 지연, 국지적 무력시위, 심리전 방송, 비대칭 공세와 결합되어 장기적으로 분쟁성 지역 확대로 귀결될 수 있다.


바다의 NLL 사례는 오히려 경각심을 주는 선례


북한은 오랫동안 서해 북방 한계선(NLL)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이 설정한 “서해 5도 군사분계선”을 주장해 왔는데 이는 NLL무실화 책동의 일환이었다. 이 문제는 단순 표식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협상 테이블에서 잘못된 명분을 용인한 순간, 주장 영속화와 분쟁장기화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육상 군사분계선은 명확한 정전협정 문서가 존재하고 표식이 존재하며 실제 감시체계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이 “새로운 중앙선”을 들고 협상장에 나타나는 순간, 협상은 “기술재확인”이 아니라 “주장대립과 정당성 다툼”이라는 전형적 분쟁구조로 이동하게 된다. 이 문제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북한에 유리하게 작동한다.


전략적 오판과 군사·정치적 위험성


김실장이 상정한 안 국방 장관의 제안은 현실을 개선하려는 의도일 수 있으나, 전략적 맥락과 적성국의 행동방식을 간과한 위험한 정책 판단으로 평가될 수 있다.


① 북한의 전략 언어를 간과


북한은 합리적 협상자가 아니라 혁명·심리·기만전 전통을 가진 제도화된 군사독재체제다. 이는 "공산주의자는 어떻게 협상하는가(How communists negotiate)"를 쓴 찰스 터너 조이 제독의 책을 보면 금방 드러난다.


② 법적·정치적 비용의 위험성


MDL 재협의에 착수하는 순간, 북한은 자신의 주장을 문서로 남기려 하고 이는 국제사회 인식 프레임 굳히기로 이어질 수 있다.


③ 국내 정치 갈등 증폭 위험


군사분계선 문제는 단순 군정개선 문제가 아니라 정전체제 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④ 군사적 위기관리 능력 약화


오판을 하게되면 북한은 기동훈련, 특수작전 전진배치, 무력시위의 명분을 동시에 확보한다.


대안과 선택


첫째, 완전 비공개 비언론화 원칙


군사적 민감 사안은 언론 홍보성이 아닌 실무·정보 기반 접근이 필요하다.


둘째, 기술적 복원은 남측 단독 기술·감시체계 강화로 추진


GIS, 드론, 위성영상, 열영상 감지, AI 감시체계 고도화로 충분히 대체 가능하다.


셋째, 북한 도발 프레임 차단을 위한 정보전 전략 강화


북한의 주장을 인정하거나 논의 테이블에 올리는 순간, 이미 50% 이상 내준 셈이다.


결론적으로 군사분계선은 “표식물”의 문제가 아니라 군사적 억제력과 정치·심리전 지배권의 문제다.


안 국방의 제안은 군사기술적 문제를 전략·심리전 문제로 착각한 위험한 판단으로 보이며, 북한이 이 제안을 협상공간으로 활용하게 된다면 상징적·실제적 국방이익을 동시에 침식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협상 테이블이 아니라 억제력 기반 현실주의 군사전략이다.


우리 스스로 MDL, NLL 무실화(無實化)책동의 빌미를 주지 않아야 한다. 


주은식 한국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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