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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토 웜비어 제 발로 걸었는데”… 北 억류됐다가 극적으로 풀려난 김동철 목사
  • 임요희 기자
  • 등록 2025-12-12 22: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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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국민 포기 못 해”… 트럼프 정부, 협상 통해 김 목사 등 자국민 3명 구출
  • 김동철 목사, 2001~2018년 북한에 머물며 호텔 사업 그리고 CIA 첩보 활동
  • “북한 억류 한국인은 못 봐, 생사 불명…” “북한 속마음은 친미, 한국이 친중”

2015년 10월 북한 정부에 의해 간첩 혐의로 체포돼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10년의 노동형으로 감형돼 수용소 생활을 하던 중 미 정부의 구출 작전으로 2018년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김동철 목사. 임요희 기자 

 이달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새롭게 선 민주주의, 그 1년’ 외신 기자회견에서 국민은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한 외신기자가 대통령에게 북한 억류 한국인에 관한 질문을 던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자에게 돌아온 답변은 “그런 얘기 처음 듣는다”였다. 국가안보실장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며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이때의 일을 최보윤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의 9일 논평이 잘 말해주고 있다. 그는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 6명에 대한 외신기자 질문에 이 대통령이 처음 듣는다고 답한 장면은 그 자체로 국가 리더십의 붕괴를 보여줬다”며 “이 질문을 던진 외신기자는 본인의 개인 안전에 대한 ‘경고’를 받았고, 전직 문재인정부 관료로부터는 ‘가짜뉴스 유포자’라는 비난까지 들었다”고 전했다.

 

아울러 최 수석대변인은 “현재 북한에는 김정욱·김국기·최춘길 선교사, 고현철·김원호·함진우 씨 등 6명의 우리 국민이 10년 넘게 억류돼 있다. 통일부가 위로금을 지급하고 유엔이 여러 차례 석방을 촉구해 온, 국제사회에서 이미 공론화된 사안”이라고 했다.

 

여기서, 우리는 김동철이라는 이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53년생인 그는 한국계 미국인 사업가로 2015년 10월 북한 정부에 간첩 혐의로 체포돼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10년의 노동형으로 감형돼 수용소 생활을 하던 중 미 정부의 구출 작전으로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왔다. 

 

트럼프정부의 적극적인 자국민 구명활동

 

당시 김 목사가 북한에 억류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트럼프 1기 행정부는 분주히 움직였다. 그리고 마이크 폼페오 미 국무장관이 평양에서 김정은을 만나 북한에 억류 중인 미국 시민 3인의 사면을 약속받았다.

 

북한을 벗어난 김 목사는, 같은 미국인 김상덕·김학성과 씨와 함께 2018년 5월10일 새벽 3시 미국 워싱턴 D.C. 인근 앤드류스 공항에 도착했다. 17개월간 자국민의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애를 썼던 미국 정부의 노력은 그렇게 해피앤딩의 결실을 맺었다. 

 

그때의 감격을 어떻게 설명하랴. 당시 북한에서 풀려난 세 사람은 다음과 같은 공동성명을 냈다.

 

“저희를 고국으로 데려와 주신 미국 정부, 트럼프 대통령, 폼페오 국무장관, 그리고 미국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 저희의 귀환을 위해 기도해 주신 모든 가족, 친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 미국에 신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9일 서울 모처에서 만난 김동철 목사는 북한에서의 고문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가 불편한 상황이었다. 그는 북한 당국에 체포돼 6개월간 조사받는 과정에서 3회의 물고문을 포함해 총 8회에 걸친 고문을 받았다. 

 

김 목사는 “자국의 국민이 타국에 억류돼 있는데 대통령도, 담당 부처도 그것을 모른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내 국적이 한국이었으면 나는 아직도 그곳에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사명이 무엇인가. 자국민을 보호하는 것 아닌가”라며 한국 정부에 일침을 놓았다.

 

17년간의 북한생활 그리고 첩보활동

 

2018년 5월10일 김동철 목사가 북한에서 풀려나 미국에 도착했을 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직접 공항으로 그를 마중 나갔다.  연합뉴스

그는 북한에서 17년간 머물면서 미국 CIA와 한국의 국가정보원을 위해 첩보활동을 한 사실을 일본 NHK 방송에서 털어놓은 바 있다. 

 

김목사가 처음부터 첩보활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2000년 선교 활동을 위해 아내와 함께 중국으로 이주했다가 사업 가능성을 보고 북한에 입국 신청을 했고 2001년부터 나진경제특구에서 호텔을 운영했다.

 

북한은 외국인이 입국하면 일단 불러들여 면밀히 조사한다. 꼼꼼한 조사 끝에 어떤 혐의점도 없어야 그곳에서 일할 수 있다. 그렇게 북한 당국의 허락을 받고 중국을 넘나들며 사업을 하던 중 CIA 요원이 김목사에게 접근해 왔다고 한다. 첩보활동을 부탁한 것이다. 그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기에 그는 처음에는 거절했다. 

 

“좀처럼 설득이 안 되니 CIA에서 한국 국정원 기획실장을 동원해 애국심을 자극했습니다. 당신밖에 할 사람이 없다고요. 어떤 사람들은 공작금에 혹해서 제가 그 일을 한 줄 알아요, 하지만 저는 북한에서 호텔 사업을 크게 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전혀 어렵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비를 들여 첩보를 수집했습니다.”

 

김목사가 CIA의 제안을 수락한 것은 말 그대로 애국심 때문이었다. 모국인 한국과 그의 국적 국가인 미국, 양국에 대한 충정으로 일했다. 그는 “한국이 원하는 정보, 미국이 원하는 정보가 달랐다”고 전한다. 

 

“첩보활동을 하면서 북한 사회를 정밀하게 들여다보게 됐어요. 그런데 혼자서는 한계가 있었어요. 현지인의 도움을 받게 됐습니다. 그들이 정찰총국에 줄을 대 북한 동향을 파악해 주었어요. 민심도 전해주고, 군사 정보나 핵무기. 체제 관련해서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들 중 몇 명은 당국에 적발돼 사형당했다고 한다. 보위부에 들키지 않은 이들만 김목사가 함구했기에 아직까지 살아 있다. 

 

북한은 철저한 개인사회

 

최근 김동철 목사는 ‘경계인의 북한이야기’라는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그를 돕고 있는 김영일(왼쪽) 목사와 두 달째 진행 중이다. 임요희 기자

“북한 사람들은 개인 대 개인으로 움직입니다. 여럿이 무언가를 하지 않아요. 북한이 워낙 감시 사회다 보니 엉뚱하게 엮었다간 다 죽게 되기 때문이죠.”

 

북한에 억류된 한국인에 대해 묻자 김목사는 “북한에 한국인이 억류돼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만난 적은 없다. 국군 포로도, 북송 재일교포도 만났지만 한국인은 본 적이 없다. 생사는 물론 소식조차 알 수 없었다. 수용소에도 없다. 수용소에 들어가면 오히려 더 찾기 쉬운데 거기도 없는 것을 보면 안타깝지만 사망했을 확률이 높다”고 전했다.

 

김목사는 호텔 사우나를 놔두고 민심 파악을 위해 일부러 동네 목욕탕에 다녔다. 그곳에서 한국전쟁 때 잡혀간 국군 포로를 만났다고 한다. 그가 있던 나진에도 국군포로가 두 명이나 있었다.

 

“2009년인가 한국 들어왔을 때 국군포로 가족이 충청도에 살고 있다고 해 만나러 갔어요. 그의 사진을 보여주니 나이 먹은 여자가 자기 오빠가 맞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 여자분의 얼굴에는 경계의 빛이 역력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 오빠의 사정 이야기 듣고 생존 소식 알려주기 위해 온 것이다. 돈을 요구하러 온 것 아니다’ 해명해야 했죠.”

 

그는 대중목욕탕에서 북송선을 탔던 교포, 일본인과도 만났다고 했다. 납치된 이들까지 합쳐 7명이 나진에 살고 있었다. 아베가 그들을 구출하려 했지만 피격 사건으로 사망하면서 무산됐다.

 

김목사는 북한에 억류돼 있던 미국 청년 오토 웜비어와 마주친 일도 있었다.

 

“제 방 바로 앞 취조실에서 영어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막상 그의 얼굴을 보긴 힘들었어요. 그러다가 꼭 한 번, 운동(규칙에 따라)을 마치고 나오는데 키 큰 청년이 축 처져서 취조실로 들어가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웜비어는 자기 발로 걸었어요.”

 

김목사는 북한 보위부 지시로 이중스파이 역할도 했다고 고백했다. 

 

“2014년경 나진 보위부가 단둥에서 활동하는 한국 스파이에 대해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북한에 억류된 이들은 2013~14년에 잡혔을 거예요. 단둥에 있는 조선족 식당에 들러 알아보았더니 이들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어요. 어떤 사람들이 붙들렸는지는 한국방송을 듣고 알았습니다. 단둥에 가서 보니 진짜 스파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쪽 한국인은 교회에서 파송 나온 선교사들인데 중국의 감시가 워낙 심하다 보니 제대로 된 선교 활동을 펼치기 힘들어요. 단둥은 변방이라 감시가 특히 심합니다. 아파트에서 보면 신의주가 코앞에 보여요. 보통 선교사들은 3개월 정도 머물다 성과 없이 돌아가곤 합니다.”

 

간혹 선교사들이 배 타고 나가 북한 쪽에 물건을 던져주는 일이 있다고 한다. 이때 배가 북한 영해로 넘어가기도 하는데 그것을 북한군이 데려다 스파이로 둔갑시켰을 것이라는 게 김목사의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 북한에 억류돼 있는 이들은 진짜 스파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2016년 3월 북한 최고재판소가 억류 중인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운데)에게 국가전복음모죄로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했다. 웜비어는 2017년 6월 혼수상태로 미국에 송환된 지 6일만에 숨졌다. AP 

 북한은 미국과 친해지기 원해

 

북한 주민들 이야기로는 김정일, 김정은 두 정권 중 그래도 아버지 대가 먹고 살기가 나았다고 한다. 하지만 김정은정권이 외형적으로 많이 세련되진 것은 사실이다. 특히 미국과의 관계 설정을 다시 하고 싶어한다고.

 

“제가 보는 북한은 간절하게 미국과 친해지기 원합니다. 중국이나 남한보다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 합니다. 한국의 주사파들은 대놓고 싫어해요. 취급도 안 합니다. 한국하고는 교류할 생각조차 없어요. 그들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미국만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북한이 미국과 가까워져야 동북아에 평화가 온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친미국가가 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김목사는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올 거라고 했다. 

 

김목사는 북한과 미국이 친해지는 것만이 “중국을 고립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실제로도 중국과 북한 국경의 담이 점점견고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은 중국을 안 좋아합니다. 김일성도 ‘중국과는 아무것도 거래하지 말라’고 유언을 남겼잖아요. 북한 정권은 중국에 대해 철저하게 문호를 막고 있습니다. 중국도 한동안 선린 우호를 내세우며 북한과 친해지려 노력했지만 북한은 꿈쩍도 안 했어요. 북한 땅에 중국인 한 명도 없습니다. 한국에만 바글바글하죠.” 

 

그가 보기에 한국이야말로 친중이라는 것이다.

 

“한국이 친미라는 것은 형식적으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에는 중국 유학생, 중국인 노동자, 중국 물건 할 것 없이 다 들어와 있어요. 중국이 거의 접수했다고 봐야 해요.”

 

김목사는 중국이 한국에 이렇게 적극적인 공세를 펴는 것에 대해 “한국을 통해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라는 대답을 했다. 중국은 태평양으로 나가는 길이 막혀 있어 한국을 경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목사는 “북한에 핵을 포기하라고 하면 절대 협상 무대에 안 나온다. 그보다 어떻게 하면 북한과 미국이 친해지게 만들지 고민해야 한다. 북한이 미국과 친한데 우리와 안 친할 수 있나. 그 정도되면 핵은 우리에게 위협이기보다 오히려 중국을 견제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목사는 26세에 도미해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2001년부터 2018년까지 17년간 북한에 있는 동안 호텔 사업을 통해 노력훈장도 받았으나 2015년 10월 보위부에 간첩행위로 붙들려 3년간 강제노동수용소 생활을 했다. 극과 극을 오간 그 시절 이야기는 그의 저서 ‘경계인’(2019·예랑출판사·품절)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서 경계인이란 남·북·미·중 4개국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자유진영과 사회주의 국가의 정치, 사회 체제, 생활, 사상, 경제, 군사, 인권을 온몸으로 경험한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최근 김동철 목사는 ‘경계인의 북한이야기’라는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그를 돕고 있는 김영일 목사와 두 달째 진행 중이다. 그의 방송활동은 한국사회가 북한 사회를 다면적으로 바라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게 그를 아는 사람들의 말이다. 

 

또한 주변의 도움으로 ‘경계인’을 영화로 만들기 위한 노력도 진행 중이다. 이처럼 김동철 목사는 북한을 한국사회에 이해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 땅에 평화가 깃들 날을 기대하면서…. 

 

임요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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