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 [연합뉴스]
한반도는 국제 진영 갈등이 집결하는 충돌 지대가 되었다. 북핵의 고도화, 미중 전략 경쟁의 장기화, 북·중·러의 밀착이라는 구조적 변화 속에서 한국은 지정학적 압력의 정중앙에 서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분쟁, 대만해협의 긴장이 서로 연동되며 세계의 균열이 한반도에 투영되는 상황에서, 한국의 안보 환경은 더 이상 지역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충돌의 무대가 되었다.
이런 가운데 2월 18일과 19일, 서해 상공에서 미·중 전투기가 대치한 직후,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이 주한미군에 항의했고, 주한미군은 한밤중에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발표했다. 주한미군은 대비태세 유지에 대해 사과한 적이 없다고 못 박았고, 한국군의 발표는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단순한 표현 차이가 아니다. 현 안보라인(국가안보실과 외교·국정원장·통일부 장관)의 구조적 취약성이 만든 한미 동맹의 균열 현상으로 보인다.
동맹 균열은 안보와 외교와 경제의 직격탄
주한미군의 서해 공중훈련은 사전에 통보된 정례적 훈련이었음이 밝혀졌다. 중국 전투기가 대응 출격해 미·중 전력이 서해 상공에서 대치, 고도의 긴장 상황이 있은 직후 안(安) 장관이 유감을 표시할 대상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었어야 했다.
본말이 바뀐 상태에서 국방부가 “미국의 사과를 받았다”고 발표하자, 주한미군은 즉각 “사과한 적 없다”고 반박한 것은 동맹 간 조율은 고사하고, 국가 생존마저 어렵게 만드는 게 아닌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은 한국의 안보 정책과 전략적 판단이 흔들릴 때마다 그 배경에 중국을 의식한 정치적 기류가 있는지부터 살핀다. 이번 사안은 현 정부가 중국으로 편향된 상태에 있다는 의심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베트남전에서 미군이 철수한 뒤 남베트남이 패망한 사례는 교훈을 준다. 동맹이 아무리 도와주려고 해도 국가생존의 최종 책임은 결국 스스로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동맹은 안보의 기반이지만, 자율적 안보 역량은 생존의 조건이다. 주적(敵) 개념이 혼미하고 적과 싸울 의지가 없는 군을 도와줄 나라는 없다. 만약 미국이 현 정부에 대해 한 단계 상향된 부정적 입장을 낸다면 우리 경제는 그날부로 요동을 칠 것이다.
안보 정책 혼선은 국가생존과 국익의 걸림돌
주한미군은 “비공개 고위급 논의 내용을 선택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동맹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국군의 메시지 혼선은 미국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목이다. 한국의 외교·안보 메시지 관리가 이미 위험 수위에 도달했음을 시사한다. 동맹 간 메시지가 흔들리면 판단이 흔들리고, 판단이 흔들리면 작전 환경 전체가 불안정해진다. 국민은 정치가 개입한 안보 메시지를 불신하게 된다.
특히 9·19 군사합의 복원과 비행금지구역 확대를 놓고 “한국군 스스로 대비태세를 제약하는 것”이라는 주한미군의 우려가 나온 것은 미국이 한국의 전략적 방향성에 의문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휘체계 불안은 안보 파괴의 결과
주한미군이 이번 입장문에서 지적한 치명적 문제는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에게 제때 보고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한국군 내부 체계가 어디에서 흔들리고 있는지 정확히 겨냥한다.
보고가 늦었다는 것은 단순한 행정적 실수가 아니라, 지휘체계의 기본이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다. 보고가 흔들리면 판단이 늦고, 판단이 늦으면 대응도 늦다. 군 조직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내부의 보고지연과 결심 지체다.
최근 반복되는 주요 직위자 인사 교체, 중견 간부 이탈, 지휘 공백은 작금의 ‘사과 논쟁’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여진다. 전투력은 장비가 아니라 사람과 조직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 조직의 뼈대를 이루는 상부 정치구조와 안보 라인이 국제 정세를 오판하고 뭔가에 잡혀서 흔들리고 있다면, 어떤 첨단 무기도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내부 체계가 불안정한 군은 외부 충격에 먼저 무너진다.
이번 사태는 동맹 조율의 균열, 동맹도 이해를 못하는 안보정책 혼선, 내부 지휘 체계의 불안정이 동시에 드러난 사건이었다. 국민과 국가의 생존 영역인 안보는 위정자 체면과 정치적 계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안보 라인은 뭉개진 체면 때문에 또 다른 악수를 두지 말고, 그동안 위험한 방향으로 기운 현상을 돌아보고 정확한 동맹 간 조율, 일관된 전략, 그리고 국제정세를 직시하는 냉정한 판단력을 챙겨야 한다.
군은 내부 질서를 안정시키고 일사불란(一絲不亂)한 지휘 체계 유지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군기와 사기 회복으로 중견 간부의 이탈을 막고, 지휘부가 일시적으로 흔들리더라도 작전 부대가 독립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자율·분산형 구조를 갖추는 것도 필수다.
민심과 군심은 정치적 아집과 독선이 빚은 안보 파괴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현 안보 라인은 이번 ‘사과 논쟁’의 책임을 지고 자발적으로 물러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의 예의다.
위정자와 주관적이고 정치적 문민통제의 모순을 인지하면서도 무기력하게 이용당하는 안보라인의 전면 교체를 촉구한다.

◆ 박필규 위원
한미일보 편집위원
육군사관학교 40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