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산업단지 전경. 글로벌 제조 기업들이 중국을 대신할 생산 거점으로 인도를 선택하고 있다. [사진=인도 RSC 그룹 돌레 홈페이지 캡처]
<목차>
① 왜 인도인가
② 자동차는 왜 먼저 인도로 갔나
③ 배터리는 이미 인도에서 답을 찾고 있다
④ 반도체의 다음 질문
⑤ 조선은 왜 중국을 벗어났나
⑥ 기업은 움직였고, 정부는 없었다
인도 전략의 정책 공백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결론은 단순하다.
기업은 이미 움직였고, 국가는 아직 설계하지 않았다.
중국을 전제로 한 성장 공식이 흔들리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중국 이후’를 모색해 왔다. 그 결과는 우연처럼 인도로 수렴했다.
그러나 이 흐름은 민간의 판단에 맡겨진 채, 국가 전략으로 정리되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는 가장 먼저 인도로 향했다.
전동화·전장·소프트웨어·AI가 동시에 도입되는 전환 시장에서, 한국 기업은 내수 중심 구조를 선제적으로 구축했다.
배터리는 전기이륜차를 중심으로 이미 현실적인 답을 찾고 있다. 중국산 저가 제품과의 경쟁 속에서도 품질과 신뢰를 무기로 입지를 넓히고 있다.
조선은 더 빠르다. 안보와 에너지 질서 재편 속에서 중국을 사실상 배제한 글로벌 발주 구조가 형성됐고, 한국은 그 중심에 섰다.
반도체만이 아직 질문 단계에 머물러 있다. 가능성은 분명하지만, 기업 단독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흐름은 하나의 사실을 드러낸다.
인도는 더 이상 실험 대상이 아니라, 이미 작동 중인 좌표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인도 전략은 여전히 외교·통상 문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중요한 파트너’,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이라는 수사는 반복되지만, 산업별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설계는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의지가 아니라 구조다.
지금의 정책 체계는 중국 중심의 공급망을 전제로 설계돼 있다. 중국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중국 이후를 새롭게 설계하는 데는 준비돼 있지 않다.
그 결과 자동차·배터리·조선처럼 시장이 먼저 열리는 산업은 민간이 알아서 길을 내고, 반도체처럼 국가 개입이 필요한 산업은 제자리에서 질문만 반복하게 된다.
인도 전략의 공백은 단순한 해외 진출 문제가 아니다. 이는 산업 정책의 방식에 대한 문제다.
한국의 산업 정책은 오랫동안 ‘선도 산업을 정하고 밀어주는 방식’에 익숙했다.
그러나 중국 이후의 세계에서는 이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특정 산업을 찍는 정책이 아니라, 어떤 좌표 위에서 기업이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설계다.
현대자동차는 1996년 인도 시장에 진출한 이후, 인도에서 두 번째로 큰 자동차 제조업체로 성장했다. [사진=현대차 홈페이지]
인도는 그 좌표 가운데 가장 현실적인 지점이다.
특히 인도를 둘러싼 국제 환경은 한국에게 불리하지 않다.
인도에서 중국은 경쟁자이지만 경계 대상이다.
반면 한국은 기술 경쟁자이되 정치·민족적 갈등 자산이 없다.
미국이 인도를 주요 중국 견제 축으로 키우는 전략까지 겹치면서, 한국은 인도에서 가장 부담이 적은 제조·기술 파트너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기회를 제도와 정책으로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이는 전략의 부재라기보다 기회의 방기에 가깝다.
이제 질문은 분명해졌다.
중국 이후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한국은 인도를 어떤 위치에 둘 것인가.
기업이 이미 선택한 좌표를 국가가 뒤늦게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그 좌표를 기준으로 산업별 전략을 재정렬할 것인가.
자동차·배터리·조선에서 나타난 흐름을 반도체로 확장할 것인지, 아니면 반도체만 또 하나의 예외로 남길 것인지도 선택의 문제다.
이 시리즈는 인도를 찬양하기 위해 쓰인 글이 아니다. 중국을 부정하기 위한 기획도 아니다.
다만 하나의 사실은 분명하다.
중국을 전제로 한 성장 공식은 끝났고, 그 이후를 설계하는 과정은 이미 시작됐다.
그 설계의 현장은 인도에 있다.
기업은 먼저 움직였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움직임을 전략으로 묶어낼 국가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