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들에게 중동 해역 파병을 요구하면서 한국, 일본, 영국,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이 각기 다른 고민에 빠졌다. 한국은 이미 청해부대를 운용 중이지만, 호르무즈 해협의 높은 위험성과 국내 정치적 부담 때문에 추가 파병 여부를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은 평화헌법과 민감한 국내 여론 때문에 군사적 파병에 신중할 수밖에 없고, 다가오는 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복합적 상황을 맞고 있다.
영국은 미국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군대를 보내기보다는 해상안전 확보를 위한 다양한 방식의 기여를 검토하며 보다 유연한 접근을 선택하고 있다. 중국은 해협 안정에는 이해관계가 같지만, 미국의 요청을 수용할 경우 미·중 경쟁 구도에서 전략적 부담이 커지고, 거절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책임 회피 비판을 피할 수 없기에 외교적 발언만 반복하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우리에게는 단순한 외교적 선택 사안이 아니다. 우리 유조선을 지키는 해양산업 보호, 국제사회에서 중견국으로서의 역할 수행, 그리고 피를 나눈 동맹의 신뢰를 지키는 일, 동맹을 기반으로 하는 국익 창출 등 이는 서로 분리할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생존과 국익, 동맹의 신뢰, 군사적 역량 증진 등 종합적 국익이 걸린 중대한 전략 사안이다. 감정적 찬반과 국회 동의보다도 책임 있는 국가로서의 책무와 냉정한 현실과 국익의 관점에서 호르무즈 파병을 검토해야 한다.
국제 해상안보 참여는 우리 선박과 해양산업과 경제를 보호하는 일
2020년부터 대한민국은 청해부대의 작전구역을 공식적으로 확대하여 호르무즈 해협 일대에서 독자적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한국군 단독 지휘 아래 한국 선박 보호 임무를 수행 중이다. 파병은 우리에게 낯선 일이 아니다. 필요할 때, 국익을 위해 우리는 파병을 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에너지 수송의 핵심 요충지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와 가스의 상당량이 이 좁은 해역을 통과한다. 이곳의 불안정은 곧바로 대한민국 경제의 불안정으로 이어진다. 유조선이 안전하게 항해해야 산업이 돌아가고, 국민 생활이 유지된다. 따라서 이 해역의 안보에 기여하는 것은 남의 전쟁에 들러리로 개입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유조선 7척이 호르무즈 해협에 갇혀 공포에 떨고 있다. 호르무즈 파병은 우리 선박과 산업과 경제를 지키는 해상 안보다.
대한민국의 해외 파병은 국제사회에서 중견국으로서의 역할
대한민국의 해외 파병 역사는 길다.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베트남전 참전은 동맹 기여와 국익 확보라는 현실적 이유가 있었다. 이후 걸프전, 소말리아, 앙골라 등에서 국제평화유지 활동을 수행하며 책임 있는 중견국으로 자리를 잡았다. 2000년대에는 이라크 자이툰부대, 아프간 오쉬노부대가 재건과 안보 지원을 맡았고, 2009년부터는 청해부대가 아덴만에서 해적퇴치와 상선 보호 임무를 수행해 왔다.
현재도 대한민국은 레바논 동명부대, UAE 아크부대, 남수단 한빛부대, 그리고 아덴만 청해부대 등 다양한 지역에서 국제안보에 기여하고 있다. 이미 우리는 책임 있는 국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호르무즈 파병은 국제평화유지 활동의 연장선으로 검토해야 한다.
호르무즈 파병은 동맹 기반의 국익 창출
동맹의 관점에서 파병의 목적은 선명해진다. 동맹은 필요할 때만 찾는 편의적 관계가 아니다. 한미동맹은 전쟁과 위기 속에서 서로의 생명과 국익을 지켜온 피의 동맹이다. 동맹과 함께하는 것은 동맹의 신뢰를 회복하고 미래 안보를 확보하는 길이다.
국제정치는 냉정하다. 우리가 어려울 때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상대가 어려울 때 기여하는 것이 동맹의 기본 원리다. 어렵고 필요할 때 돕는 것이 진짜 동맹이며, 그 신뢰는 결국 우리에게 돌아온다. 동맹과 함께하는 것은 신뢰 회복이자 우리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 군사적 측면에서의 파병은 우리 군의 미래 전력을 강화하는 투자.
호르무즈 해협은 위험한 지역이지만, 고난도 작전 환경에서의 경험은 우리 군의 실전 대응 능력을 크게 향상시킨다. 연합작전 경험은 정보·정찰·방어 체계 공유 등 실질적 이익으로 이어진다. 이는 우리 군의 미래 전력을 강화하는 투자이기도 하다. 위험을 감수하는 만큼 얻는 것도 분명히 존재한다.
군 수뇌부가 먼저 현장 분위기를 살피고 파병으로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다면 파병 건의를 주저할 이유가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논쟁이 아니라 국익과 미래 동맹을 위해 통수권자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결단은 빠를수록 국론 분열을 막는다.

◆ 박필규 위원
한미일보 편집위원
육군사관학교 40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