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애국시민이 투표함 반출을 저지해 온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에 5일 오전 경찰이 무력으로 진압해 투표함들을 반출했다. 경찰에 의해 질질 끌려 나가는 시민의 모습[사진=SNS]
지난 4월, 민주노총 산하 화물연대가 총궐기하는 모습. 당시 편의점 CU 물류센터를 무단 점거했던 당시 민주노총은 무려 ‘25일간’이나 물류의 혈관을 인질로 잡고 몽니를 부렸다. [사진=연합뉴스]
6월 3일 밤 10시. 선관위의 투표용지 수급 실패로 헌법적 주권을 거세당한 잠실의 시민들이 아스팔트 위로 나섰다. 내 표를 행사하게 해달라는, 주권자로서 너무도 당연하고 이성적인 항의였다. 그리고 6월 5일 아침, 국가는 대규모 경찰 기동대를 투입해 이들을 짐짝처럼 끌어내며 시위를 강제 해산시켰다.
시민들이 잃어버린 참정권을 돌려달라며 절규한 지 불과 33시간 만에 벌어진, 참으로 신속하고도 무자비한 진압 작전이었다.
이 서늘한 방패의 속도전을 지켜보며, 나는 불과 얼마 전 대한민국을 멈춰 세웠던 또 다른 시위의 현장을 겹쳐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4월, 민주노총 산하 화물연대가 편의점 CU 물류센터를 무단 점거했던 사태. 당시 민주노총은 무려 '25일간'이나 물류의 혈관을 인질로 잡고 몽니를 부렸다.
대체 차량의 출차를 물리력으로 저지하는 과정에서 트럭에 사람이 치이는 참혹한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격앙된 노조원들이 대형 차량을 몰고 경찰 바리케이드를 향해 돌진해 공권력을 무참히 짓밟았다. 이것은 시위가 아니라 명백한 폭동이었고, 타인의 막대한 재산권을 유린하는 거대한 폭력이었다.
그런데 당시 대한민국 공권력은 어떻게 작동했던가. 25일이라는 그 길고 끔찍한 무법의 시간 동안, 경찰은 돌진하는 트럭 앞에서도 극도로 몸을 사리며 방관자로 일관했다. 강제 해산은커녕 노동부 장관이 직접 심야 교섭장에 납셔 중재자를 자처했고, 결국 합법적으로 영업하는 기업의 팔을 비틀어 폭력 주동자들에게 '민형사상 면책'이라는 완벽한 전리품을 쥐여주었다.
자, 이제 두 개의 몽둥이를 차갑게 교차 비교해 보자.
'진보'라는 붉은 완장을 찬 권력의 핵심 카르텔이 무려 25일간이나 경제의 숨통을 조이고 경찰을 들이받을 때, 이 나라는 한없이 너그럽고 서윗한 협상가였다.
그러나 헌법기관의 파산으로 신성한 투표권을 도둑맞은 빽 없는 시민들이 거리에 나서자, 국가는 불과 33시간 만에 잔혹한 폭력 기구로 돌변해 기동대의 방패로 시민의 입술을 짓이겨버렸다.
폭력과 흉기를 든 자들에게는 25일의 치외법권을 허락하고, 맨손으로 헌법을 요구하는 주권자들의 절규는 단 하루 반나절 만에 수갑을 채워버리는 이 지독한 이중잣대. 이것은 치안 유지가 아니라 권력의 노골적인 사유화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권력은 법과 원칙이라는 보편적 저울이 박살 난 자리에, 살아있는 권력의 눈치를 살피며 내 편의 불법은 비호하고 남의 편의 정당한 권리는 진압하는 비루한 사병(私兵)으로 전락했다.
민주노총 앞에서는 비굴하게 무릎 꿇던 천사가, 만만한 주권자 앞에서는 곤봉을 든 괴물로 돌변하는 이 서늘한 광장. 내 편의 25일짜리 폭력은 눈감아주고, 남의 편의 33시간짜리 정당한 저항은 압살하는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이미 호흡을 멈췄다. 강제 해산된 잠실의 텅 빈 아침 아스팔트 위로, 우리가 그토록 경멸했던 파시즘의 그림자가 길고 짙게 드리우고 있다.
공권력을 이렇게 제 멋대로 행사하는 권력이 있었던가?

◆ 박주현 작가
작곡가, 음악감독, 칼럼니스트, 수필가. 페이스북에서 정치, 시사,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해 수많은 이의 공감을 얻고 있다. 에세이집 ‘폭풍의 바다를 건너다’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