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3월19일 전향을 거부하며 장기수로 복역해 온 이인모 씨가 북으로 송환돼 가족과 만나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위험에 처한 대한민국을 보면 지금 이런 글이나 쓰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러나 나처럼 고향을 북한에 둔 비전향장기수들의 처지가 마음에 걸려 몇 자 쓴다.
지금까지 이재명 정부는 북한과 대화를 해보려고 별의별 아양을 다 떨었지만 김정은은 쌍욕만 퍼부을 뿐 아무 답이 없다.
그러자 이재명 정부는 얼마 남지 않은 비전향장기수들의 북송을 미끼로 대화의 문을 열어보려고 했다. 그래도 북한은 여전히 답이 없다.
더 웃기는 것은 어리석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장기수 노인들에게 여권을 주고 중국으로 보내서 북한으로 보낼 방법을 추진 중이라 한다.
그런다고 받아줄 북한이 아니다. 장기수 노인들은 눈물을 뿌리며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 일생 동안 김일성 가문에 충성을 바친 비전향장기수라고 해도 북한은 그들을 쓸모없는 시끄러운 존재로 여길 뿐이다.
북한에 고향을 둔 이 탈북자가 비전향장기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아무리 고향이 그리워도 제발 공산주의자들의 품으로 찾아가는 어리석은 실수는 범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래전에 북송되어 갔던 이인모 로인의 이야기를 알려드린다.
1993년 3월 처음으로 북송된 비전향장기수 이인모에 대한 북한의 관심과 배려는 대단했다. 최고급 단독 주택과 김일성 훈장, 영웅 칭호도 수여하였고 “신념과 의지의 화신”이라며 수령에 대한 충성의 산 모범으로 예술영화의 주인공으로까지 내세웠다.
그의 고향인 양강도 파발리 소학교를 “이인모 소학교”로 명하고 김씨 가문과 동등하게 “봉화진료소”에서 치료받는 것은 물론 미국에도 보내서 병 치료를 해주었다.
이인모는 김일성의 배려에 보답하기 위하여 충성을 독려하는 글과 당과 수령을 우상화하는 글들을 연속 써냈다. 그의 글들은 노동신문에 대서특필 되곤 했다.
40여 년간을 적들의 감옥에서 꿋꿋하게 지켜왔던 그의 충성심은 대단했다. 전체 간부들과 인민들은 이인모 따라 배우기 운동을 벌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인모는 북한의 “교화소”를 직접 보겠다고 했다. “이인모 동지가 요구하는 것은 다 해주라”는 김정일의 지시가 있었던지라 간부들은 그를 사리원의 “국제교화소”로 안내했다.
사리원 국제교화소는 죄지은 외국인과 항일투사 가족, 간부 가족만 받는 곳이다. 나름대로 시설도 좋고 죄수에 대한 대우도 괜찮다. 그래서 국제 인권단체들에게 서슴없이 보여주는 곳이다.
휠체어를 탄 인모는 국제교화소를 돌아보는 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사람 못 살 남조선”에서 오랫동안 감옥살이를 한 이인모가 감동을 먹은 모양이라고 생각한 간부들은 참관을 끝내고 나오자 “이인모 동지! 돌아보신 소감이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다.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던 이인모는 무서운 핵폭탄 발언을 터뜨렸다. “나는 이런 곳이었다면 34년은 고사하고 3년도 견디지 못했을 거야.”
그 자리에 있던 간부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이인모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이인모는 인사도 없이 그곳을 떠났다.
그 순간부터 30분도 채 되기 전에 노동당과 안전보위부, 인민보안성 3개의 통보선으로 이인모의 교화소 발언 내용이 김정일에게 직보되었다.
김정일은 분노하여 주먹으로 탁자를 내려치며 말했다. “역시 자유를 맛본 자들은 믿을 게 못 돼.”
그때부터 이인모는 “당과 수령의 신임을 저버린 쓸모없는 고깃덩이” 취급을 받다가 2007년 6월 누구도 찾지 않는 외로움 속에서 고독한 생을 마쳤다.
이것이 간첩이었던 자신을 살려준 자유 대한민국을 버리고 충성의 길을 택하였던 한 공산주의자에게 차례진 쓸쓸한 운명의 종말이었다.
그 후부터 이인모에 대한 선전은 완전히 사라졌다. 김씨 가문은 말 못 하는 그의 시신을 애국열사릉에 안치시키고 선전용으로 이용할 뿐이다.
비전향장기수들이 북한에 들어가서 가족들에게 해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가족들을 집중 감시의 대상으로만 만들 뿐이다.
나는 교도소란 곳을 가보지 못하였다. 도대체 남과 북의 교도소가 얼마나 큰 차이가 있기에 그렇게 이인모가 경악했는지는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자루 속의 송곳은 숨길 수 없듯이 자유를 한번 맛본 사람은 언론의 자유가 없는 북한의 독재사회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이러한 진리를 먼저 간 이인모가 증명해 주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나는 비전향장기수 어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려고 이 글을 쓴 것이 아니다. 북과 남 두 제도를 살아본 사람으로서 북한의 진실을 알려줄 뿐이다.

◆ 김태산 고문
한미일보 고문, 전 체코 주재 북한 무역회사 대표. 한국에서는 북한사회연구원 부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남북관계와 북한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과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