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오른쪽)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왼쪽) SK그룹 회장이 6월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기업 투자계획 발표 후 이재명과 손을 잡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세상의 모든 갈등과 비극은 스스로를 피해자로 규정하고, 타인을 가해자로 처단하려는 집착에서 비롯된다. 이를 불교에서는 업장(業障), 사회학에서는 집단적 피해자 의식 신드롬이라 부른다.
과거의 기억에 묶여 현재를 망치고 미래를 가로막는 이 해묵은 업장이 오늘날 대한민국, 특히 영호남의 국토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다.
급기야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럴 바엔 차라리 ‘호남공화국’이라도 독립시켜 나라를 쪼개자는 파멸적 한탄까지 터져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참으로 가슴을 치고 통곡할 망국적 징후이자, 우리 시대의 가장 어두운 자화상이다.
누구를 위한 반도체 프로젝트인가
최근 정치권이 내 놓은 이른바 ‘800조원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를 바라보는 수행자의 마음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팔을 비틀어 천문학적인 자금을 호남에 투입하겠다는 이 무리한 계획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친명계 핵심 인사의 당대표 출마를 위한 ‘정략적 카드’인가, 아니면 정권의 기반을 공고히 하려는 ‘정치적 거래’인가. 이재명 대통령은 이를 두고 “차별의 설움을 견뎌온 호남에 대한 역사적·국민적 보상”이라 강변했다.
참으로 오만하고도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이는 국가 균형 발전이라는 대의명분 이면에, 기업의 자율적 판단을 무참히 짓밟고 정치권력이 칼자루를 휘둘렀음을 스스로 자인한 꼴에 불과하다.
정부가 민간 기업의 목줄을 죄고 경영에 개입하는 이 국가주의적 구태야말로, 과거 호남이 목숨을 걸고 항거했던 박정희·전두환 군사 독재 시절의 잔재가 아닌가. 그 독재의 악습을 호남을 표방한 정권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역설적인 비극인가.
‘호남 홀대론’의 허구와 내재적 위기의 실상
과연 ‘홀대받는 호남’이라는 오랜 통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한 진실인가. 과거 군사 정권 시절, 국가 자원이 경부축에 집중되던 때의 호남 차별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특히 김대중 정부 이래 호남이 정책적으로 냉대받았다는 주장은 오늘날의 실상과 완전히 동떨어진 허구다. 도리어 호남은 균형 발전 예산의 최대 수혜자다. 1인당 도로·철도 연장은 전국 최상위권이며, 광주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대구와 부산을, 전남은 경남·북을 압도하고 있다.
2022년 기준 전남의 1인당 지역총생산은 전국 17개 시도 중 4위(5142만 원)에 달한다. 호남이 여전히 가난과 차별의 늪에 허덕인다는 주장은 데이터 앞에서도 무력한 감정적 선동일 뿐이다.
오히려 호남의 진짜 위기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존재한다. 나라에서 따낸 세금으로 지은 텅 빈 고속도로와 ‘고추 말리는 공항’은 이미 오래된 애물단지다. 국비 1조4000억 원을 쏟아부은 광주의 아시아문화전당은 매년 수백억 원의 적자를 내는 거대한 유령 건축물이 되었다. 과거의 피해 보상 심리에 사로잡혀 무조건 중앙정부의 예산만 따내고 보자는 의존적 거버넌스가 지역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더 뼈아픈 것은 기업을 쫓아내는 반(反)기업 정서다. 2015년 신세계 복합 쇼핑몰 유치가 지역 시민 단체와 민주당의 반대로 좌초된 이래, 광주는 5성급 호텔도, 창고형 할인매장도 없는 유일한 광역시로 남았다.
전교조 출신 교육감들이 수월성 교육을 죄악시하며 자사고와 외고를 없애버린 결과, 좋은 학교도 없고 문화생활도 즐길 수 없는 도시에 인재가 올 리 만무하다. 인재가 없으니 기업이 외면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호남의 침체는 국가의 차별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기업하기 나쁜 환경을 만든 내재적 요인과 ‘정치·이념 카르텔’ 때문이다.
권력이 된 호남, 망국적 인사 편중의 독점 체제
지난 30년간 대한민국을 통치한 6명의 대통령 중 무려 4명(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이 호남의 전폭적인 지지로 당선된 ‘호남의 아들들’이었다. 호남 유권자들은 90%가 넘는 맹목적이고도 전략적인 투표를 통해 권력을 쟁취해 왔다.
현재 이재명 정부 초기 장관 후보자 18명 중 12명이 호남 출신으로 채워졌으며, 청와대 장관급 3실장 중 국가안보실장(위성락)과 정책실장(김용범)이 모두 전남·광주 출신이다.
어디 이뿐인가. 대한민국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임명할 수 있는 공직과 공공기관 임원 등 7000여 명의 임명직 직위를 전수조사해 본다면 호남 인사의 편중성은 더욱 확연히 드러날 것이다. 요직이란 요직은 온통 호남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으니, 인사 면면만 보면 현 정부는 가히 ‘호남 정부’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이미 호남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기득권 권력이 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들이 차별받고 모욕당하고 있다며 끊임없이 사과를 요구하고, 800조 원의 역사적 보상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이러한 행태를 바라보는 타지역의 국민들, 특히 젊은 세대들이 어찌 위화감과 박탈감을 느끼지 않겠는가.
언제까지 5·18의 상처를 훈장처럼 달고 다니며 국가 전체를 볼모로 잡을 것인가. 부처님께서는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바라는 마음에 빠지지 말라. 과거는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하셨다. 매년 수십조 원의 세금을 쏟아부으며 대기업의 팔을 비틀어 얻어낸 인위적인 풍요는 결코 오래갈 수 없다. 그것은 지역의 자생력을 죽이는 독약이자, 타지역 국민의 가슴에 증오의 씨앗을 뿌리는 업장일 뿐이다.
영호남의 망국적 갈등이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파국의 임계점에 도달했다. 이제는 반목과 피해의식으로 점철된 해묵은 원망의 죽비를 내려놓고 진정한 해원(解冤)의 장을 열어야 한다.
필자는 불자들의 간절한 원력(願力)이 불단(佛壇) 위의 등불처럼 피어나, 이 땅의 어둠을 걷어내고 대화합으로 가득하기를 염원한다.

◆ 응천 스님
대한불교호국종 총무원장
호국승군단 초대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