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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추적] 5·18 ‘광수 판결’의 치명적 부메랑… 지만원 박사가 투척한 ‘집단학살죄’ 폭탄
  • 허겸 기자
  • 등록 2026-07-05 06: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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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법부가 확정한 ‘71광수 박남선·73광수 지용’… 역(逆)고발의 전말 
  • 美 CIA 보고서 ‘인민재판’ 논란과 현장 사진의 엇갈린 진실 막전막후
  • “시민군이 시민 처형” vs “연행·인민재판 없었다” 법리 공방 예고 


지만원 박사 ©한미일보수십 년간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뜨거운 화약고였던 1980년 광주 5·18을 둘러싸고 법조계와 역사학계에 새로운 법리적 논쟁이 점화되고 있다. 


5·18 관련 연구로 옥고를 치르고 지난해 만기 출소한 지만원 박사(시스템클럽 대표)가 법무법인 추양 가을햇살(대표변호사 고영일)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과거 자신을 고소했던 오월단체 측 핵심 인물들을 상대로 정면 반격에 나선 것이다. 죄명은 공소시효가 배제되는 범죄인 ‘집단학살죄(genocide)’다.  


최근 <한미일보>가 입수한 고발장에 따르면 지만원 박사 측은 5·18 당시 촬영된 사진 속 인물들의 동선과 법원이 인정한 실제 인물들의 사망 인지 시점 등에 치명적인 모순이 있다고 주장하며, 사진 속 인물들을 경기 의왕경찰서에 고발했다. 과거 사법부가 지 박사에게 내린 명예훼손 유죄 판결의 논리를 역으로 들이받는 정밀한 법리적 반격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어 본지가 그 막전막후를 집중 추적했다. 


억울한 옥살이 끝에 찾아낸 사법부 ‘광수 판결’의 맹점 


지만원 박사는 지난 24년간 5·18을 학문적 틀 안에서 연구하며 17권의 역사책을 저술해 온 5·18 연구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육사를 졸업하고 베트남전 참전, 미 해군대학원 박사 학위 취득 및 교수직 역임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는 그는 특유의 집요한 분석력으로 5·18의 이면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진실을 향한 대가는 가혹했다. 지 박사는 1980년 5월23일 광주 현장 사진 속 인물들을 북한군 실세인 황장엽(71광수)과 오극렬(73광수)로 특정했다가 사진 속 주인공이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광주 시민 박남선씨와 지용씨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  


사법부는 3심 모두 광주 측의 손을 들어주며 “사진 속 인물은 박남선이고 73광수는 지용이 맞다”고 최종 확정 판결을 내렸고 이 때문에 지 박사는 2년간 교도소에 수감된 후 작년 1월 출소했다. 지 박사가 2년 형기를 마치고 만기출소하는 날은 공교롭게도 윤석열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출두해 수감되면서 반국가세력과 싸워온 역사 속 두 애국자의 명암이 엇갈리는 날이기도 했다. 


지 박사는 고통스러운 수형 생활 속에서도 반전의 카드를 준비해왔고, 그가 찾아낸 돌파구는 역설적이게도 그간 자신을 옭아맨 사법부의 확정 판결 그 자체였다. 



美 CIA 보고서와 현장 사진의 결합, 그리고 드러난 진실


지 박사 측이 제기한 법원 판결의 모순은 미 중앙정보국(CIA) 보고서와 언론매체 ‘뉴스와논단’의 추적 결과가 융합되면서 본격적인 논쟁거리로 부상했다. 


고발장에 따르면 1980년 5·18 당시 전남도청을 배경으로 촬영된 사진에는 이른바 ‘무장 체포조’로 보이는 장정들이 시민들을 도청 안으로 연행해 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재판부는 이 사진 속 ‘무장 체포조’의 총책을 박남선(71광수)씨로, 부우두머리를 지용(73광수)씨로 판결을 통해 공식 인정한 바 있다.  


여기서 지 박사 측은 미국 정부가 기밀해제한 외교 전문을 근거로 제시했다. 2020년 5월11일자(현지시간)로 기밀 해제한 뒤 한국 정부에 이관한 CIA 문건에는 충격적인 문구가 포함돼 있었다. 


당시 주한미국대사관 또는 주한미군 측에서 보고했고 카터 행정부의 에드먼드 머스키(Edmund Muskie) 국무장관이 서명해 스위스 제네바에 있던 리처드 홀브룩(Richard Holbrooke)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에게 보낸 5월25일자 외교 전문에는 “광주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다. 온건파 시민위원회는 상황 통제력을 상실했고 급진파가 주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민재판이 열려 일부 처형이 자행됐다(People’s courts have been set up and some executions have taken place)”고 기록돼 있다. 


윌리엄 글라이스틴(William Gleysteen) 주한미국대사도 5월25일자 전문에서 “인민재판과 처형이 있었다(EVEN OF PEOPLE'S COURTS AND EXECUTIONS)”고 워싱턴에 보고했다. 


이에 대해선 중요한 후속 반전도 있었다. 본지 취재 결과, 좌파 성향의 미 탐사언론인 팀 셔록(Tim Shorrock)은 ‘광주 일지(Gwangju Diary)’ 155쪽에서 “그러나 이틀 후 머스키는 그 전문을 철회해야 했다(Muskie had to retract those statements)“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머스키는 홀브룩에게 보낸 후속 전문에서 “광주의 상황은 여전히 조용하지만 긴장이 감돈다”며 “인민재판이 설치돼 처형이 자행됐다는 이전 보고는 완전하게 확인된 것이 아니어서 신중하게 다뤄달라(An earlier report that the insurgents had set up people’s courts and had carried out executions had not been fully confirmed and should be treated with caution.)”고 요청했다. 


이는 기밀해제된 한국 상황 보고서 8번(KOREAN SITUATION REPORT NO. 8)을 근거로 한 것이다. 보고서는 하루 만인 26일 오전 7시 기준으로 인민재판이 충분히 확인되지 않았음을 홀브룩 차관보에게 알리는 내용을 담았다. 



“충분히 확인 안돼” 번복... 그러나 “혁명 논의 무장 급진파가 학생 대체” 


그러나 석연치 않은 점도 있었다. 


머스키 장관이 서명한 최초 25일자 외교 전문에는 ‘정체불명의 무장 급진세력(unidentified armed radicals)’에 관한 기록이 담겨 있었다. 또한 이들은 “혁명정부 수립에 대해 이야기했고 학생 시위대 대부분을 대체했다(Student demonstrators have been largely replaced by unidentified armed radicals who are talking of setting up a revolutionary government)”고 적시 됐었다. 


이뿐만 아니라 지 박사가 공개한 기밀해제 문건에는 “광주 소요를 주도한 핵심 극렬주의자들은 약 550명(지도부 50여 명, 추종자 500여 명) 규모”라고 적혀 있었다. 


이에 따라 ‘뉴스와논단’은 2024년 5월12일자 ‘5·18 광주와 인민재판의 여부(부제: 시민군들에 의하여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당시 무장 세력에 의해 도청으로 연행된 광주 시민들이 시민군에 의해 맞아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더해 지 박사는 현장 사진을 추가로 발굴·분석한 뒤 해남군민 김인태, 학원강사 김중식 등 총 4명의 대한민국 국민이 도청 안으로 끌려가 사망했다고 보고 있다. 


특히 뉴스와논단은 농부 김인태(당시 48세)씨의 사인을 ‘타박상’으로 기록한 문건과 김씨 비석에 적힌 유족 심복례씨 증언을 토대로 가해자가 시민군 측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남편 비석에는 “그가 연행되고 바로 숨을 거뒀는지, 구타에 시달리다가 버려지기 직전에 숨을 거뒀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극심한 구타가 사망의 원인이라는 점만 확실하게 알 수 있을 뿐”이라는 아내 심씨의 증언이 새겨져 있다. 


김중식(42)씨 사망 원인은 ‘미상’으로 기재됐다. 


뉴스와논단은 “시민군에 이끌려 김인태나 김중식 이외에 다른 사람들이 국가 유공자도 되지 못하면서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사망으로 끝난 것은 인민재판이 있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고 전했다. 


판결의 ‘외통수’가 된 노파들의 증언과 엇갈린 행적


법원은 그동안 사진 속 인물들을 북한 고위층(황장엽·오극렬 등)으로 지목한 이른바 ‘광수’ 주장을 허위로 보고 이들을 박남선·지용씨 등 광주 시민으로 판단해왔다. 


그러나 지 박사 측은 법원이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않고 무리한 판결을 내렸다고 정면으로 겨냥했다. 가장 치명적인 모순은 사진 속 인물들과 유족들의 실제 행적 차이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고발장. [법무법인 추양 가을햇살] 다음은 고발장에 따른 지 박사 측의 논리적 근거다. 


“법원은 ‘139번 광수’와 관련해 사진 속 인물을 80대 노파 신봉섭 씨로 판단했다. 그러나 신씨는 유족 증언록에서 5월30일에야 남편의 사망 사실을 알았다고 구술했는데, 법원이 인정한 사진은 5월23일 전남도청에서 남편의 관을 붙잡고 통곡하는 모습이라며 상식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법원은 ‘62번 광수’에 대해서도 90대 노파 김진순씨가 교도소 공격 중 사망한 아들의 시신을 확인하고 경찰로부터 통보를 받은 것은 6월30일이었으나 재판부는 김씨가 한 달 전인 5월23일 도청 앞에서 통곡하고 있는 사진 속 인물과 동일인이라고 인정했다.” 


지 박사는 또 영상학 및 안면 인식 전문가 분석 결과를 토대로 73번 광수로 지목된 인물에 대해 북한 오극렬의 특징인 하늘로 치켜 올라간 이른바 들창코 형상이 뚜렷하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광주 시민 지용씨로 인정해 버렸다고 문제 삼았다. 


지 박사 측은 이 같은 행적 불일치를 근거로, 사법부가 명예훼손죄를 성립시키기 위해 무리하게 사진 속 인물들을 광주 시민들과 매칭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1980년 5월 촬영 사진. [고발장 9쪽 발췌] 

“광주시민인가, 외부세력인가”… 외통수에 걸린 법리 


또한 별도의 연구를 통해 이들 광주 시민 4명을 연행하는 데 동원된 무장 괴한의 숫자도 총 34명에 달하는 것으로 지 박사는 파악했다. 이들 34명 중 신원이 알려진 우두머리 격 인물은 법원 판결대로라면 박남선과 지용씨 두 사람이다. 나머지 32명의 신원은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에 따라 지 박사 측은 이들 34명의 정체를 두고 사법부와 오월단체를 향해 명확한 답변을 요구하고 나섰다. 


사법부가 빠진 ‘외통수’ 법리가 발생한 지점도 이 대목이다. 


첫째 만약 숨진 4명이 광주 시민이라면 박남선·지용씨는 대한민국 국민을 무단으로 연행해 인민재판으로 즉결 처형시킨 살인 행위 가담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5·18 당시 함평경찰관들을 버스로 치어 숨지게 한 배용주씨가 사형 언도를 받았던 전례에 비추어 볼 때 이들 역시 엄벌을 받아야 마당하다는 논리다. 


또한 광주 시민이 광주 시민을 학살한 꼴이 되므로, 5·18을 ‘민주화운동’이라 부를 수 있는 논리적 근거가 뿌리째 흔들린다고 지 박사는 보고 있다. 


둘째 이들이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는다면 광주 시민이 아니라는 뜻이며 결국 외부에서 개입한 세력, 즉 지 박사의 주장에 따르면 ‘북한군’이라는 결론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게 된다는 게 고발장의 핵심 내용이다. 


우파 5·18 연구가들은 지만원 박사를 처벌하기 위해 “내가 사진 속 주인공”이라고 자처했던 박남선·지용씨의 법정 진술과 이를 받아들인 사법부의 판결이 결국 자신들의 목을 죄는 날카로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격으로 해석한다. 


1980년 5월 촬영 사진. [고발장 10쪽 발췌]

“공소시효 없는 ‘反인륜적 집단학살’로 엄벌 촉구”


이번 고발이 법조계를 긴장시키는 이유는 죄명에 있다. 현행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 3조2항과 국제형사재판소(ICC) 관할 범죄 처벌법 6조에 따르면 특정 집단을 파멸시킬 의도로 구성원을 살해한 ‘집단살해죄(genocide)’는 공소시효와 형의 시효가 모두 배제된다.


고발인인 지만원 박사는 앞서 지난 5월 <한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5·18 시위대 내부의 극렬분자들이 자신들의 방침에 반대하는 무고한 시민들을 인민재판으로 살해한 명백한 반인륜적 범죄”라며 엄벌을 촉구하고 “이 같은 판결이야말로 광주와 사법부를 스스로 옭아맨 치명적인 자기 올무가 됐다”고 지적했다. 


역시 6·25한국전쟁 76주기 당일인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구의 L비즈니스센터에서 개최된 현대사 역사 강연회에서도 미국 기밀해제 문서와 역사적으로 고증된 당시 전남도청 사진들 그리고 이와 동떨어진 사법부 판결의 모순을 지적했다. 


“판사들도 알고 있을 것”… 李정부가 만든 법 왜곡죄가 반격 무기로 


광주 오월단체와 사법부는 이들 두 사람을 처벌하지도 않았고 처벌할 의사도 없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처벌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냉철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 지만원 박사의 주장이다. 


그러고는 “이 모순을 법관들 스스로도 내심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이재명 정권이 만든 법왜곡죄를 언급했다. 박남선·지용씨가 실제 살인자가 아니라면 사진 속 인물들은 외부세력 가능성이 유력해지고 이를 알면서도 무리하게 유죄를 선고한 법관들 역시 국민적 심판대에 서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강연회 참석자들은 지 박사가 5·18의 가장 깊은 이면을 들추어낸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5·18 당시 전남도청 상황실장을 지낸 박남선 씨는 <한미일보>와의 통화에서 “인민재판은 없었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박씨는 “당시 연행됐던 사람은 군인 한 명, 김기범 병장이라고 상무대 소속이어서 상무대로 돌려보냈으며 그 외에 일반 시민들을 연행하거나 인민재판을 열었던 적도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나는 가짜 유공자를 밝히고 5·18의 진실을 알리려는 사람”이라고 선을 그은 뒤 뉴스와논단이 ‘죽어서 돌아왔다’는 유족의 언급을 인용한 점을 묻자 “유족을 통해 밝혀야 할 사안”이라고 했다. 이어 황규학 뉴스와논단 편집인에게 과거 ‘모르는 일’이라고 한 사실이 있는지 묻자 “아니다”고 역시 부인했다. 



박씨는 지용씨에 관해서는 “지용이는 당시 (도청) 밖에 있었다”며 현재 연락처는 모른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고발된 사실에 대해 “금시초문”이라며 “고발했으니 (피고발인) 조사를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 편집인(목사)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몇 년 전인가 박남선씨를 찾아가 만난 사실이 있다”며 “당시 끌려간 사람의 부인(심복례씨)이 남편이 죽었다고 인정한 데다 도청으로 끌려가는 사진이 있고 CIA 문건에서 처형이 있었다고 한 차례 언급됐으며, 사인이 타박상으로 기록된 점은 진상을 더욱 더 규명해야할 사안임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사법부가 자신들이 판 정밀한 덫에 걸려 ‘광주의 주역’들을 집단학살 피고인석에 세울지, 아니면 판결 오류를 자인할지 이 정밀한 법리 공방에 경찰과 사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허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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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lusive Investigation] The Fatal Boomerang of the 5·18 ‘Gwang-su Ruling’… The ‘Genocide’ Bomb Thrown by Dr. Ji Man-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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