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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난중일기] 1945년 8·15, 81주년의 날에
  • 방민호 서울대 교수
  • 등록 2026-08-16 15: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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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광복 81주년의 날 올공. Ⓒ한미일보 8·15의 날, 광복절은 한가로이 글을 쓸 수 없는 날이다. 1945년 8·15의 그날은 일제로부터 해방을 쟁취한 날이었다. 뜨거운 기쁨의 날이었으되 가슴 벅찬 자유 해방의 날이었으되 우리 혼자 힘으로 싸워 얻은 자유는 아니었다.

작가 채만식은 “여승(어지간히)” 꿈과 같았다고 했다. 1946년에 가서는 “글루미 이맨시페이션(우울한 해방)”이라고도 했다. 문학하는 작가들에게 해방은 많은 경우 치열한 싸움을 통해 쟁취하는 해방이다. 그러나 고대하고 기다리고 예견하던 해방은 되지 못했다. 

박태원 같은 작가는 해방 전날까지 ‘매일신보’에 장편소설 ‘원구(元寇)’를 연재하고 있었다. 원나라 도적이니, 원나라와 고려가 일본을 정벌할 때 이야기요, ‘가미카제(神風)’ 덕분에 정벌을 면할 수 있었던 옛날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것이었다.

필자는 채만식의 일제 말기 대일협력을 한없이 안타깝게 생각했고, 그가 해방 후 ‘민족의 죄인’과 ‘낙조’의 두 작품으로 두 번에 걸쳐 자기반성과 성찰을 시도한 것을 무척이나 다행으로 여겼다. 

김동리, 조지훈 같은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많은 문학인이 해방을 예기하지 못했던 것은 그들의 안목이 넓고 깊지 못했던 것도 큰 이유지만, 그만큼 당시 한국인들이 처한 상황이 ‘곤궁’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민족 독립운동의 지사들은 해외로 나아가 싸우지 않고는 지조를 지키기 어려울 만큼 국내 상황은 엄혹했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한국어 연구가 치안유지법 사건으로 험하게 다루어졌고, 이윤재, 한징 같은 분들이 고문과 옥고로 세상을 떠났다. 외솔 최현배 같은 분은 해방 이틀 뒤인 8월17일에야 함흥형무소에서 출옥할 수 있었다. 

해방이 되고 나서, 그렇다면 과연 한국의 현실은 밝았던가? 해방이 곧 38선 분단이 된 이 한반도에서는 3년 동안 좌우익 대립이 극심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끝내 1948년 8~9월 사이에 남북한에서 단독정부들이 수립되고 분단이 고착화되는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1945년 8·15광복으로부터 1950년 6·25전쟁 발발,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 체결에 이르는 과정은 그야말로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민족사의 또 다른 수난기였다. 이로부터 이 나라 대한민국이 비록 ‘반쪽’의 형태로나마 자유와 민주주의를 근본적 운영원리로 삼은 나라로 생존·번영할 수 있었던 것은 실로 천운이요, 신의 가호가 있으셨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영국의 비평가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역사와 행위(Making History, 1987)’를 통독하면서 깨달은 것 하나가 있다. 어떤 특정한 역사적 국면은 그에 처한 사람들 또는 집단들에게 절대로 모든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이를테면 이러한 가정, 1945년 8월에 한국인들이 분단되지 않고도 독립된 현대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것, 이런 것은 바람, 원망(願望)의 대상은 될지언정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그때 만약 한국인들이 지혜가 더 있었더라면, 더 훌륭한 지도자를 가질 수 있었다면, 미국이나 소련 같은 나라들을 더 잘 ‘이용’할 수 있었더라면, 우리는 완전한 자주독립국가가 될 수 있었다? 그런 것은 주관적 바람일 수는 있었어도 당시의 국제 역학의 ‘구조’에 비추어 볼 때 가능하지 않은 이상(理想)일 수 있었으리라는 것이다. 

캘리니코스는 구조(structure)와 ‘행위주체(agency≒subject)’의 관계를 연구하면서 이른바 주의주의(主意主義, voluntarism)적 편향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다 때가 있다’는 것은 이런 인식의 세속적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가 그때그때 사유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인간 주체의 지혜와 계획과 노선을 무시하려는 뜻은 전혀 아니다. 때로는 가능성 제로(0)의 지대에 우리가 서 있을 때도 없지 않겠지만 그런 상황에서라도 우리는 그때그때 최선의 길을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런 인식은 필자로 하여금 해방공간의 민족지사들, 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좌익과 우익 노선들을 날카롭게 재평가하도록 한다. 

문학인적 체질 때문에 필자는 천성적으로 집합적 운동에 합류하지 못하곤 하지만, 1945년에서 1953년에 이르는 해방 후 8년의 시대에 과연 북으로 간 사람들, 레닌에서 스탈린으로 이어지는 이념을 택한 사람들은 옳았다고도, 현명했다고도 할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옳았다, 현명하다의 차원을 넘어, 그러한 선택은 민족사의 씻을 수 없는 범죄요 죄악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당시의 시대로 돌아가 어떤 노선이, 어떤 정파가, 어떤 지도자가 절대적으로, 완전히, 옳았다고는 말할 수 없고, 나아가 문학인은 어떤 것도 완전히 긍정할 수 없는 단독자적 사유의 위치.

여기에서 과거사를 헤아릴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아니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사안들이 있고, 이때, 북쪽의 체제를, 좌익 노선을 긍정하고 나서는 인간의 생명과 자유, 평등 어떤 것도 옹호할 수 없다는 것이, 하나의 진실이라면 명백한 진실인 것이다. 

2026년 올해는 8·15광복 81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올해의 8·15, 광복절은 더욱 착잡하고 가슴 아픈 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나라는 지금 자유와 평등이 넘치고 있는가? 지금 이 나라는 선인들, 선배들이 꿈꾸었던 밝고 투명한 민주주의를 영위하고 있는가? 지켜내고 있는가? 이 나라는 벌써 자유 없는 나라에 팔려버린 것이 아닌가? 

하루 이틀 전에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이제 사람들은 자기 동네 아니면 진료를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자기 집에 주민등록을 두고 실제로 살지 않고 있으면 3년인가까지도 감옥살이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한두 달 전에는 정보통신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미국에서까지 이 나라의 표현의 자유의 위축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전달했다고도 한다. 종교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는 징후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목회자가 교회에서 한 발언으로 감옥살이를 했다고도 한다. 

만해 한용운은 3·1운동 때 쓰신 ‘조선독립의 서’에서 인간에게는 자유와 평화가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 나라의 부자유, 전체주의화, 대립과 상쟁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

다수결이란 원래 끔찍한 요소를 내포하지만 지금 이 나라의 다수결이 이토록 야만적이고 추잡한 것은 이 ‘다수’가 바로 가짜 다수인 때문이 아니던가? 가짜 다수가 모든 폭력과 전횡으로 권력을 탈취했기 때문이 아니던가?

필자가 생각하기에, 작금의 사태의 가까운 시작점은 2024년 4월10일 제22대 국회의원선거였다. 선거사 자료에 따르면 민주당과 더불어민주연합은 총 175석, 국힘과 국민의미래는 108석이었다. 이후 비례연합에 참여했던 정당 당선인들이 원소속 정당으로 돌아가면서 민주당 의석은 171석이 됐다. 

지금 부정선거 국면 와중에 공개된 선거관리위원회의 전산 수정 이력에 따르면 제22대 총선 당시 전국 선관위가 중앙선관위에 보고했던 시간대별 투표자 수를 수정한 사례가 65건이었다고 한다. 선관위와 관련된 모든 문제가 그렇듯이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투표자 수와 투표율은 가장 기본적이고도 근본적인 통계다. 당장 65건에 대해서도 누가 잘못 입력했으며, 언제 어떤 근거로 수정했는지, 수정 전 데이터와 수정 후 데이터가 서버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 밝혀야 하겠지만, 이런 조사·수사조차도 거기에 그치고 만다면 문제를 축소·은폐하는 행위일 따름이다.

나아가 주진우 의원은 2026년 8월 선관위에서 받은 22대 총선의 시간대별 투표자료를 분석한 결과 159곳에서 허위 입력이 의심된다고 했다. 서로 다른 투표구에서 여러 시간 동안 투표자 증가 수가 동일하게 움직이는 ‘쌍둥이 투표구’ 사례들도 함께 제시되었다. 

이에 대해서, 필자보다 치밀한 추리력을 갖춘 분들이 어련히 알아서 헤아리실까 하면서도, 그냥 한 번 상상해 보기에, 치밀하게 감추다 못해 삐져나오는 바람에 못 감춘 것이 159곳 아니었겠는가 한다. 

이렇게 해서 부정 출발한 제22대 국회는 출범 직후부터 다수에 의한 극심한 전횡과 폭력의 연속이었다. 이런 일을 말할 때는 수사법 가운데 특히 열거법이 유효적절할 것이다. 이 국회의원 부정선거 이후 불과 8개월 사이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는 이 글 뒤에 따로 첨부해 보이고자 한다. 

총선 뒤 약 8개월, 국회 시작 6개월 동안에 민주당은 중요 사안만 해도 20건이 훨씬 넘는 전횡을 저지른 긴 목록을 보유한다. 2024년 12월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이 극단적인 전횡의 한복판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대통령의 이 계엄 선포를 내란으로 몰아 탄핵까지 한 것도 불법 논란을 빚은 국회의 전횡, 거듭된 탄핵 시도였다. 

최근 며칠 사이에, 대통령 탄핵을 뒤로 하고 열린 2025년 6월3일 대통령선거 또한 부정선거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보고되었다. 2026년에 공개된 전산 기록에, 시간대별 투표자 수를 잘못 보고했다가 수정한 사례가 81건 확인됐다는 것이었다. 

주진우 의원은 별도로 109개 투표구에서 시간대별 투표자 수가 100명 단위로 반복 증가하거나 장시간 증가하지 않는 등의 현상이 나타났음을 지적했다. 이 모든 것은 한낱 모든 부정의 티끌 같은 사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국수본이든 특검이든, 다 믿을 수만은 없지만, 이 기관들을 그들대로 실상을 명명백백히 밝혀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그네들의 일일 것이고, 그렇다면 국민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청년학생들에게, 노인분들에게 이 사태를 맡겨놓아야 하는가? 

음식점의 YTN·연합뉴스 앞에서 팔짱 끼고 논평들만 할 것인가? 4·19 때 우리 선배들은 어떻게 했던가? 도대체 불교의 훌륭한 스님분들은 무얼 하고 계시는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이 민족의 스님들은 도량에서 나오셔서 나라를 구하려 하지 않으셨던가? 

껍데기는 가라고, 그러니까 가짜는 가라고, 신동엽 시인은, 먼저 그놈의 사진을 떼어다가 밑씻개로 쓰자고 김수영 시인은, 노래하지 않았던가? 총명한 문학인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22대 국회 시작에서 대통령 탄핵까지 정리

2024년 6월5일 국힘이 여야 합의 없는 본회의 개최에 반발, 불참한 가운데 민주당 중심으로 192명만 투표했고 189표로 국회의장이 선출되었다.

6월10일 국힘 불참 속에 민주당 중심으로 191명이 표결에 참여, 법사위 운영위 과방위 예결위 등 11개 위원장을 모두 민주당 의원으로 선출했다. 이후 원구성은, 법안의 본회의 진입에 결정적인 법사위, 대통령실 관할 운영위, 방송정책을 담당하는 과방위 등을 민주당이 모두 지배하게 된다.

6월14일 국힘이 불참한 민주당 중심 법사위어서 채상병 특검법이 소위에 회부되고 6월21일 입법청문회 개최와 증인 채택을 결정했다. 

6월21일 채상병 특검법이 법사위 민주당 중심으로 단독 청문회를 거쳐 단독 의결되었다. 

7월2일 민주당은 강백신·김영철·박상용·엄희준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민주당 의원 전원 명의로 발의했다.

7월4일 채상병 특검법이 국힘 의원 대부분 퇴장한 가운데 재석 190명, 찬성 189명, 반대 1명으로 가결되었다.

7월9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민청원’ 청문회를 법사위 야당 단독으로 결정했다. 실제로 7월19일과 26일에 청문회가 열렸다.

7월26일 이른바 방송4법 중 방통위법이 재석 183명 전원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7월28일에는 방송법이 재석 189명 전원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7월29일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이 187명 전원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7월30일 EBS법이 재석 189명 전원 찬성으로 처리되었다. 이로써 방송4법은 5박6일 동안 ‘상정→필리버스터→24시간 경과 후 종결→야당 표결’ 방식으로 모두 통과되었다.

8월2일 전 국민에게 25만 원을 지원하는 법안이 찬성 186명, 반대 1명으로 통과되었다.

같은 날인 8월2일 취임한 지 이틀밖에 안 된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188표 중 찬성 186, 반대 1, 무효 1로 탄핵소추안 가결되었다. 이 위원장의 직무는 즉시 정지되었다.

8월5일 노란봉투법이 재석 179명 중 찬성 177명, 반대 2명으로 통과되었다. 

9월19일 영부인에 대한 특검법이 국힘이 본회의 자체를 보이콧한 가운데 재석 167명 전원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같은 날인 9월19일 다시 채상병 특검법이 재석 170명 전원 찬성으로 처리되었다. 이것도 대통령의 재의요구 후 재표결에서 폐기되기는 한다.

같은 9월19일 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하는 지역사랑상품권에 대한 국가 지원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재석 169명, 찬성 166명, 반대 3명으로 통과되었다. (지금 경기도는 재정 파산 상태라고 한다.)

11월14일 세 번째 영부인 특검법이 처리. 야당 의원 191명 전원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11월28일 대통령·가족 사건 상설특검 후보추천위원 7명 중 여당 추천 2명을 제외하는 국회규칙 개정안이 재석 281명, 찬성 179명, 반대 102명으로 가결되었다.

같은 날인 11월28일 예산안 심사 법정기한이 지나면 정부 예산안이 본회의에 자동부의되던 제도를 폐지하는 국회법 개정안이 야당 주도로 재석 272명, 찬성 171명, 반대 101명으로 통과되었다.

역시나 같은 날인 11월 28일 양곡관리법이 재석 254명 중 찬성 173, 반대 80, 기권 1로 통과됐고, 농수산물 유통·가격안정법, 농어업재해대책법, 농어업재해보험법도 야당 주도로 함께 처리되었다.

11월29일 정부가 제출한 677조4000억원의 예산안에서 4조1000억원이 감액된 673조3000억원 안이 민주당 주도로 예결위에서 처리되었다. 정부 예비비·검찰 특활비 및 특정업무경비·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 특활비 등이 모두 삭감되었다.

12월5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안이 재석 192명 중 찬성 188명, 반대 4명으로 가결되었다.

같은 12월5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과 조상원 4차장검사, 최재훈 반부패수사2부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동시에 가결되었다.

12월10일 야당 단독 수정 감액예산안이 최종 확정되었다. 정부 제출 예산안이 야당 단독 수정안 형태로 최종 확정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었다. (예산안은 대통령의 거부권 대상이 아니다.)

12월14일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두 번째 발의되어·가결되었다. 12월7일 1차 탄핵안이 195명만 표결에 참여해 부결된 것이었지만, 민주당은 임시 의회를 열어 300명 전원 참여, 찬성 204, 반대 85, 기권 3, 무효 8로 가결했다(국힘은 이때 사실상 탄핵 2중대 역할을 했다).


 

◆ 방민호 교수

문학박사, 서울대 국문과 교수. 계간문학잡지 ‘맥’ 편집주간(2022년~)이자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 ‘연인 심청’(2015), ‘통증의 언어’(2019), ‘한국비평에 다시 묻는다’(2021), 서울문학기행(202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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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jh171502026-08-16 15:14:52

    까꾸로 태극기 고거이 김일성 똥깨썅 노무스키가 인공기 맹글기 전애 처달고 댕겼당께로 그랑께 남조선 토착 주사파뻘 갱이 콜로라도 인민민주주의 구데기들 박멸해야 한당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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