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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松山] 8월15일, 일본의 항복보다 대한민국의 건국을 기억하자
  • 松山 작가
  • 등록 2026-08-16 13: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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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5년 8월15일만 바라보면 역사의 주인공은 일본과 연합국”

우리에게 8월15일은 1945년 일제 해방(광복)과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 날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건국을 선포하고 있다.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오늘은 8월15일이다. 우리는 이날을 흔히 일본이 패망하고 우리가 해방된 날로 기억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에게 8월15일은 일본의 항복을 기념하는 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8월15일은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이라는 자유민주공화국이 현실의 국가로 출범한 날이다.

1945년 8월15일 히로히토 천황은 이른바 ‘옥음방송’을 통해 포츠담선언 수락 사실을 일본 국민에게 알렸다. 일본군에 대한 전투 중지와 항복 절차가 시작된 날이다. 국제법적 항복 절차가 완성된 것은 9월2일 도쿄만의 미주리호에서 항복문서가 조인되면서였다. 

따라서 8월15일은 엄밀하게 말하면 일본의 항복문서 조인일이 아니라 일본이 항복을 국민에게 공표하고 전쟁을 끝내는 과정에 들어간 날이었다.

우리의 역사도 1945년 8월15일에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일본의 통치가 끝났다고 곧바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세워진 것은 아니다. 한반도에는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소련군과 미군이 들어왔고 남쪽에서는 미군정이 시작됐다. 

9월9일 서울에서는 조선총독부의 항복문서 서명이 이루어졌고 미군정 체제가 본격적으로 출범했다. 광복은 국가 건설의 출발이었지 완성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3년 동안 한반도에서는 어떤 나라를 세울 것인가를 둘러싸고 치열한 정치투쟁이 벌어졌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인가, 공산주의 국가인가. 시장경제를 선택할 것인가, 사회주의 체제로 갈 것인가. 신탁통치 문제와 좌우대립, 미소공동위원회의 실패와 남북 분단이라는 거대한 혼란을 통과해야 했다.

마침내 1948년 5월10일 총선거가 실시됐다. 국민이 대표를 선출했고 그 대표들로 제헌국회가 구성됐다. 제헌국회는 7월17일 대한민국 헌법을 공포했다. 제헌헌법은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규정하고 국민주권의 원리를 채택했다. 국회는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이시영을 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리고 8월15일 중앙청 광장에서 대한민국 정부수립 경축식이 열렸다.

이날 이승만 대통령은 정부수립 기념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에 지나간 역사는 마치고 새 역사가 시작되어 세계 모든 정부 중에 우리 새 정부가 다시 나서게 됨으로….” 핵심은 새로운 국가의 출발이었다. 이승만은 이날의 행사가 해방을 기념하는 동시에 “우리 민국이 새로 탄생한 것을 겸하여 경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8월15일을 기억하는 중심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1945년 8월15일만 바라보면 역사의 주인공은 일본과 연합국이 된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했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이 승리하면서 한일병합 체제가 끝났다. 한국인의 독립운동이 그 역사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지만 일본의 패전 자체는 태평양전쟁이라는 국제전쟁의 결과였다.

반면 1948년 8월15일을 바라보면 역사의 주인공은 대한민국 국민이 된다. 선거를 하고, 국회를 만들고, 헌법을 제정하고, 대통령을 선출하고, 정부를 구성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아래 국민주권과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새로운 국가가 현실의 정치체제로 등장했다.

광복절의 역사 자체도 이 사실과 떨어져 있지 않다. 1949년 정부가 국경일 제정을 논의할 당시 8월15일은 처음 ‘독립기념일’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됐고, 이후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서 ‘광복절’로 확정됐다. 따라서 광복절은 애초부터 1945년의 해방만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보기 어렵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의미 역시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여기서 ‘건국’과 ‘정부수립’을 끝없는 정치논쟁으로 만들 필요도 없다. 대한민국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정신을 계승한다. 1948년 제헌헌법 역시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독립정신을 계승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역사적·법통상의 계승과 현실 국가의 출범은 구별해서 볼 수 있다.

임시정부의 법통과 독립운동의 역사를 존중하는 것과 1948년 대한민국이 현실의 국가로 출범했다는 사실은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독립운동의 오랜 노력이 1948년 국민의 선거와 헌법 제정, 정부 구성으로 현실화됐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 의미에서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날짜 가운데 하나다.

나는 그래서 8월15일을 일본의 패망을 바라보는 날보다 대한민국의 탄생을 바라보는 날로 기억하고 싶다. 우리가 언제까지 8월15일의 주어를 일본으로 놓아야 하는가? 일본이 항복한 날, 일본으로부터 벗어난 날이라는 기억에만 머물면 우리의 현대사는 언제나 일본을 기준으로 설명된다.

이제 주어를 대한민국으로 바꿀 때가 됐다. 일본이 무엇을 잃었는가보다 우리가 무엇을 만들었는가를 기억해야 한다. 일본의 패전을 기억하는 것보다 그 패전 이후 우리가 어떤 나라를 선택하고 건설했는가를 돌아보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

1945년 8월15일 우리는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1948년 8월15일 우리는 대한민국을 세웠다. 벗어난 역사보다 세운 역사를 더 크게 기억하자. 오늘 8월15일의 중심에는 일본의 항복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건국이 있어야 한다.


◆ 松山(송산) 정광제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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