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13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여야 의원들의 설전을 지켜보다 눈을 감고 있다. 연합뉴스.
영국 BBC-TV 다큐멘터리 ‘Human Planet’ 초원편에 흥미로운 영상이 있다. ‘The tradition of intimidating the lions’(사자 겁주기)는 인간과 사자 간의 대결에서 용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국내에서도 다큐멘터리로 소개된 바 있다.
영상에 따르면 아프리카 케냐의 도로보족 사냥꾼들은 세 명 정도가 한 팀을 이뤄, 사냥을 마치고 식사 중인 사자 떼에게 망설임 없이 걸어 들어간다. 놀랍게도 이들은 아무런 공격용 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 그저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와 단합된 움직임으로 사자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한다.
사자들은 이런 인간들의 모습에 혼란과 위협을 느끼고, 결국 먹이를 포기한 채 뒤로 물러난다. 사람들은 사자의 먹이(주로 물소) 일부를 잘라낸 후 유유히 자리를 떠난다. 한 연장자는 말한다. “두려움 없이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면 되는 거다. 사자도 사람도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 다 행복한 방법이다.”
삼권분립의 한 축을 떠맡고 있는 사법부가 자칭 국회의원들한테 온갖 조롱과 협박을 받았다. ‘헌법은 개나 줘버려라’는 식의 이런 오만방자한 국민 무시 태도는 일차적으로 더불어민주당 소속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다. 하지만 그 다음으로 책임져야 할 당사자는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부다.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하는 대법원장은 인사말만 한 뒤 국감장에서 나오는 것이 관례였다. 사법부 독립성을 존중한다는 전통이다. 그러나 추미애 법제사법위원장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조희대 대법원장은 13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의원들의 뻘짓 공세를 받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한 의원은 조 대법원장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빗댄 합성 사진을 들고나왔다. 그러면서 ‘조요토미 희대요시’라고 모욕했다.
이것이 지금 우리 정치의 수준이다. 그럼 대한민국이 왜 이토록 심하게 망가졌을까. 그 원인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여권 의원들은 조 대법원장을 상대로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것이 대선 개입이라며 참언을 퍼뜨렸다. 바로 여기에서 모든 것이 출발한다.
사법부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대통령 선거 출마 발표가 있자마자 일제히 꼬리 말기를 시작했다. 지난 5월 15일로 예정됐던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파기 환송심 첫 재판이 당장 6·3 대선 이후로 연기됐다. 이 후보의 대장동 개발 특혜 등 의혹 사건을 심리 중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도 공판 기일을 대선 뒤인 6월 24일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아니나 다를까, 법원의 갑작스런 후퇴로 이 후보의 대선 전 사법리스크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 후 어떻게 됐나. 판결을 앞두고 벌벌 떨고 있던 좌파 세력은 대법원이 겁을 먹었다는 징후를 포착했다. 그러자 일제히 피 냄새가 나는 곳으로 몰려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을 대상으로 ‘사법부 대선 개입 의혹 진상규명 청문회’를 연다고 난리를 떨었다. 인터넷 매체 서울의소리를 비롯 검사를 검사하는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연구소 등 시민단체들도 조 대법원장을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의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공수처가 조 대법원장의 직권남용 혐의 수사에 착수했다.
애초 대법원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관해 파기자판 했어야 마땅했다. 단숨에 정의의 판결을 내리고 이재명에게 반격의 기회를 주지 말아야 했다 유죄취지 파기환송은 그 자체가 판결을 고법에 떠넘긴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사법부가 순진한 것인지 아니면 겁을 먹은 것인지 모를 일이다. 어찌 됐든 정치인 이재명은 이 나라 하늘을 온통 협박과 회유의 먹구름으로 뒤덮어서라도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 마는 인간형이다. 그런 인간 유형에게 겁먹은 표정을 짓는다는 것은 곧바로 물어뜯을 기회를 헌납하는 것이다. 맹수에게 뒤를 보이는 행위는 자신을 공격해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과 같다.
대법원이 파기자판 했더라면 국내의 모든 정치적 혼란은 일거에 정리됐을 것이고, 이는 대법원의 용기있고 정의로운 법집행으로 평가받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처한 정치적 위기를 해결한 대법원이라는 대한민국 민주실록도 남겼을 것이다.
대법원에게 아프리카로 가서 사자와 맞서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법치사회를 떠받치는 법률이 엄연히 살아 있으니, 법원은 양심에따라 그 법률을 정확히 인용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주어진 밥상을 포기한 채 쭈그리고 앉아 두려움에 떠는 이유가 뭔가. 다름 아니라 상상 속의 공포가 그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법원은 고등법원으로 책임을 떠넘겼고, 고법은 알다시피 ‘그 짓’을 했다. 이런 틈새를 간파한 이재명과 그 권력 집단이 자신에게 주어진 절호의 기회를 그대로 놓칠 리가 없었다. 그것이 13일 국회에서 저질러진 삼권분립의 붕괴 현장이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결국 불쌍한 우리 국민이다. 국민은 이제 분명히 깨닫고 있다. 독재자 앞에서 행정부 관료, 국회, 사법부 어느 한 곳도 국민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내가 누군데”라며 이 나라의 높은 자리들을 차지한 채 온갖 사회적 혜택을 향유해 온 수많은 사회 엘리트들이 평소의 잘난 척과는 달리 독재자 앞에서 얼마나 허약하고 겁이 많은 존재들인지도 새삼 목격했을 것이다.
국민은 이제 우리 사회 엘리트들 어느 누구 하나 믿고 의지할 수 없음을 절절히 깨달았을 것이다. 결국은 민초 한 명 한 명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네팔은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신우 前 문화일보 논설고문·‘부정선거와 내란범들’ 저자
이 기사에 3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천추에 오명을 남길 사법부, 지금 꽥소리라도 내고 죽으라.
한미일보는 신생언론사이나
필진들이 참 좋다,
혼돈의 시대에 국민 알권리에 충직하다
날카롭고 예리한 이 고문 칼럼도 그중하나다
어데 공직선거법 위반뿐인가? 유엔,미국 대북 제재위반
대북800만불 불법송금건도 있지않은가?법원이 못하겠으면
미국 법원에다 위탁판결을 요청해라, 그럼 아마도 미 법원은
신속하게 판결해 플로리다주의 악어 알카트라즈 수용소에
수감시킬것이다,